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51년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유리동물원>과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은 1960년대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그린 현대 멜로드라마의 대표 작가이다.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몰락한 남부 귀족 가문의 블랑시 두보아를 주인공으로, 환상과 현실 사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탕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초연 당시 855회나 공연하는 등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p12)
내가 지금 말한 건 동물적인 욕망, 그냥 욕망일 뿐이야!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프렌치쿼터 지역을 쿵쿵거리며 달리는 저 낡아 빠진 전차 이름 말이야.... (p79)
블랑시는 과연 욕망의 여인이었던가? 오히려 그녀는 아픔이 있었던 것이고, 현실에 있어서 그녀는 친절에 의지하려고 한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p180)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고,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오히려 스탠리의 행위(겁탈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블랑시의 내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실주의는 싫어요. 나는 마법을 원해요! (미치가 웃는다) 그래요, 그래. 마법이요! 난 사람들에게 그걸 전해 주려고 했어요.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게 죄라면 달게 벌을 받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p144)
이 작품의 배경은 뉴올리언스의 빈민가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는 하지만, 골목만 돌면 블루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강가에서는 훈풍이 불어오는, 안온함과 서정성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미군 특무 상사 출신의 외판원인 스탠리와 부유한 남부 귀족 집안 출신의 스텔라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날, 연락도 없이 찾아온 스텔라의 언니 블랑시에 의해서 두 남녀가 살던 작은 집은 평온이 깨어진다. 블랑시는 동성애자 남편의 자살 이후 낯선 사람들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고등학생까지 유혹해 직장인 학교와 고향에서 추방된 상태였던 것이다. 스탠리의 폭로로 블랑시는 교제하던 미치와도 헤어지게 되고 극도의 정신 혼란 상태에서 스탠리에게 겁탈당한다. 결국 스텔라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고 아이를 낳은 스텔라는 언니가 떠나는 것을 애통해하면서도 스탠리에게 남는다. (p189)
극의 제목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실제로 뉴올리언스에서 운행되는 전차 이름이다. 블랑시는 남편과 친척의 연이은 죽음의 반대 축으로 ‘욕망’을 택했지만, 결국 ‘묘지(죽음)’의 기차를 타게 된다. 더 큰 아이러니는 블랑시가 도착한 곳이 결코 ‘극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p192)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욕망에 매달린다. 돈, 명예, 권력, 사랑, 행복. 등등. 하지만 욕망은 충족되지 않고,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더 큰 욕망이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에게 욕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