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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16. 2023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1959년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1959년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알랭 레네는 서둘러 영화를 완성해 출품했지만 칸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개봉 뒤 영화는 극과 극의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혹평이 있는 반면에 〈카이에 뒤 시네마〉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당시 프랑스에는 새로운 영화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1959년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와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이 개봉했고 곧이어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가 개봉했다. 이른바 누벨바그의 시작이었다. 고다르나 트뤼포, 로메르, 샤브롤 등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한 누벨바그 그룹과 비교해서 레네와 아녜스 바르다, 크리스 마르케, 조르주 프랑주 등은 좌안파 그룹(Left Bank Group)으로 불렸다. 그들은 파리의 센강을 기준으로 좌안(Left Bank) 지역에 살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중도 우파의 누벨바그 그룹과는 달리 좌파의 입장을 표명했다.       

   

흔한 이야기, 매일 수없이 일어나는 이야기. 일본 남자는 기혼, 아이들이 있다. 프랑스 여자도 기혼이며 역시 아이가 둘 있다. 그들은 하룻밤의 연애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히로시마에서.

남녀가 서로를 안는 그토록 흔하고, 그토록 일상적인 일이 일어난 곳이 바로 세상에서 그 일을 가장 상상하기 어려운 도시, 히로시마이다. 히로시마에는 그 무엇도 그냥 ‘주어져 있지’ 않다. 모든 몸짓, 모든 말마다 본래 의미에 덧붙여진 또 다른 의미가 특별한 후광으로 드리워져 있다. 이 영화가 지향하는 중요한 목표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다. 즉 끔찍한 참상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것은 일본인 자신들이 다 했으니 이제 그만두고, 분명 특별하고도 ‘놀라울’ 사랑 안에 이 끔찍한 잿더미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 참혹함이 새롭게 태어나게끔 하는 것이다.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 생겨난 사랑보다, 죽음이 잘 간수되지 못한 그런 장소에서 일어난 사랑에 사람들은 더 믿음을 가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로시마 내 사랑, P11-12>     

그녀는 느베르에서 1944년, 스무 살에 삭발을 당했다. 그녀의 첫사랑은 독일인이었다. 프랑스 해방 때 살해된.

그녀는 삭발당한 채 느베르에서 지하실에 머물러 있었다. 히로시마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는 지하실에서 나와 기쁨에 들뜬 군중에 섞일 수 있을 만큼 그럭저럭 흉하지 않은 몰골이 되었다. 

이런 개인적 불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그 불행 역시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의 공식적인 적군을 사랑했다고 해서 한 여자애를 삭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끔찍한 짓이자 절대적으로 우매한 짓이다.

호텔 방 장면에서 등장한 적이 있듯이 느베르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느베르와 사랑이 뒤얽히고, 히로시마와 사랑이 뒤얽힐 것이다. 모든 것이 미리 생각한 원칙 없이 뒤섞일 것이며, 처음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수많은 말을 주고받는 곳이면 어디서나 늘 그렇듯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서로 섞여 들어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  (P15-16)  

   

 

프랑스에서 당신에게 히로시마는 뭐였어요?

그녀

전쟁의 끝, 그러니까, 완전한 끝이요. 사람들ㅇ이 그런 일을 감히 하려 들었다는 게.... 경악스럽고.... 그 일을 정말 해냈다는 게 경악스러웠어요.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공포의 시작이기도 했죠. 그리고 또 무관심, 무관심에 대한 공포이기도....   (P55)     


몇 년 후, 내가 당신을 잊었을 때, 그리고 지금 우리 이야기 같은 일들이 또 그렇게 다시 일어나게 될 때, 나는 당신을 사랑의 망각 그 자체로 기억할 겁니다. 나는 끔찍한 망각을 생각하듯 이 이야기를 생각할 거예요. 벌써 그걸 알아요.   (P124)   

  

[정확한 시간의 경과를 아는 것. 때로 어떻게 시간이 빨라지는지 아는 것. 그다음에는 또 시간이 쓸데없이 서서히 느려지는 것을 아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함을 아는 것. 그건 또 아마 지혜를 배우는 것. (토막토막 끊어서, 반복, 횡설수설)]    (P129)    

 

시간이 흘러갈 거예요. 오직 시간만이. 그리고 시간이 오겠지요. 시간이 올 거예요. 우리를 이어 주는 것이 무언지 우리가 더 이상 그 이름을 댈 수 없게 되는 시간이. 그 이름은 우리 기억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갈 거예요. 그런 다음 완전히 사라지겠지요.   (P136)     

뒤라스의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가 만난 것은 <연인>에서만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이 영화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 감독이 되어 여러편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 영화들은 대중에게는 외면받았지만 영상과 문학이 하나로 어우러진 독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 <히로시만 내사랑>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와 <모데라토 칸타빌레> 사이에 위치한다. 소설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다른 감독이 각색한 이 두 작품과 달리 <히로시마 내사랑>은 처음부터 작가와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협동 작품이다. 1950년 후반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를 대표하는 알랭 레네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할 작가로 뒤라스를 선택했고 줄거리를 비롯한 세세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오랜 논의와 협업 끝에 작품이 만들어졌다. 레네와 뒤라스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처참한 이미지 위에, 글을 낭독하는 듯한 메마른 목소리의 시적 내레이션을 싣고, 과거와 현재, 평온한 풍경과 폐허의 영상을 교차편집하여 보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뒤라스는 이전에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문체가 사라진 것을 치명적 결함으로 꼽았는데 이번에는 레네와 더불어 매우 독특한 영화의 문체를 구축해 낸 것이다.  (P188)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유럽의 참상과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한 평범한 여자의 비극은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뒤라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그런 불가능성에 관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히로시마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폐허 속에서도 새로 피어난 꽃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잿더미에서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원폭 피해의 상징 도시가 온통 꽃 천지가 되었다는 것을 놀라운 생명력과 희망의 메시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작가가 강조하려는 것은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여전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우매함이다. 단 9분 만에 사망자 20만명, 부상자 8만명을 낸 참사를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재건된 히로시마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고 사람들은 기껏해야 관광버스를 타고 박물관에 들러 과거를 잠시 둘러보며 눈물지을 수 있을 뿐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평범한 모습을 마주하고 과거의 참상을 끊임없이 똑같은 강도로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역사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기억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프랑스 여자는 자기 인생의 어떤 결정적인 사건을 통과하며 절대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 희미해지는 체험을 한다. 그녀는 잊지 않기 위해서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망각의 막강한 힘은 그 너머에 있다. 잊지 않으려는 대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왜 그것을 기억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마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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