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Feb 26. 2024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영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2002년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Xiao cai feng, Balzac and the Little Chinese Seamstress)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다이 시지에 감독의 2002년 드라마, 멜로/로맨스, 코미디 영화이다. 저우쉰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리즈 페욜르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다이 시지에(Dai Sijie)는 영화 <중국, 나의 고통>(1989), <달의 수영선수>(1994), <11세기의 당나라>(1998)등의 감독을 맡았으며,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촌장의 눈빛에 충직한 공산당원다운 경계심이 나타나면서, 어조가 적대적으로 변했다.

“네가 연주할 노래의 제목은 무엇이냐?”

“노래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건 소나타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제목을 물었다!”

촌장이 내 눈을 쏘아보면서 고함쳤다.

또다시 그의 왼쪽 눈에 맺힌 핏멍울 세 개가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모차르트…….”

나는 망설였다.

“모차르트 뭐라는 거냐?”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P11)     


재교육에 관해 몇 마디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68년 말 어느 날,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이자 혁명의 기수인 마오쩌둥 주석은 나라를 일대 변혁하는 운동을 벌였다. 모든 대학이 휴교했고 ‘젊은 지식인들’, 다시 말해 중등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농촌으로 추방되었다(그로부터 몇 년 후, 그 전대미문의 아이디어는 아시아의 또 다른 혁명 지도자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고, 좀더 야심 차고 더 급진적인 캄보디아인은 노소를 막론하고 수도의 ‘전 주민’을 농촌으로 보냈다).

마오쩌둥이 그런 결정을 내린 진정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자신의 감독을 벗어나기 시작한 홍위병들과 손을 끊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혁명가의 환상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 뤄와 나는 음모자들처럼 비밀리에 그 이유에 관해 자주 토론하곤 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마오는 지식인을 미워한다고.           (P13)   

  

가장 끔찍한 것은 똥지게를 지고 날라야 한다는 것이다. 원통 모양의 나무통들은 인분이나 짐승의 똥을 나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날마다 그 나무통에 똥을 채워서 아찔하게 높은 곳에 위치한 밭까지 등에 지고 날라야 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통속에서 똥물 출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뚜껑에서 조금씩 새어나온 구린내 나는 똥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면서 몸통을 따라 흘러내리곤 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차마 넘어지는 장면은 생략하련다. 발을 헛디뎠을 경우에 일어날 결과는 여러분이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기에.         (P24)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평소처럼 가랑비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 위, 지붕의 기와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할 만큼 거센 비였다. 그것 때문에 뤄는 훨씬 더 우울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재교육을 받을 운명이었다. 공산당 관보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노동자나 지식층 혁명당원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이는 재교육 기간을 이 년으로 끝내고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갈 행운이 백 퍼센트였다. 하지만 ‘인민의 적’으로 분류된 집안의 자식들에게는 천 명 중 세 명이 될까말까 할 정도로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희박했다. 간단히 말해서 뤄와 나의 삶은 끝장난 셈이었다.          (P27-28)     


그 집에는 재봉틀이 두 대 있었다. 하나는 재봉사가 마을을 돌 때마다 언제나 갖고 다니는 오래된 재봉틀로서, 상표도 제조업자의 이름도 지워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상하이에서 만든 새 재봉틀인데, ‘바느질 처녀’로 알려진 자기 딸을 위해 점포에 놔두었다. 마을로 출장을 나갈 때는 절대로 딸을 데려가지 않았는데, 현명하지만 무정하기도 한 그의 결정은 그녀의 마음에 들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산골 청년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P33-34)     


우리는 <꽃 파는 처녀>를 이야기해주기로 결정했다. 용징의 농구장에서 우리가 보았던 세 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북한의 신파극으로, 주인공 이름이 ‘꽃 파는 처녀’였다.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주었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나는 일부러 목구멍을 약간 진동시켜서 감정적이고 비장한 변사를 흉내내는 것처럼 마지막 대사를 발음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풀이 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꽃 파는 처녀가 들인 정성은 충분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 효과는 영화관에서만큼이나 컸다.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 모두 눈물을 흘렸고, 그토록 매정하게 굴던 촌장마저 핏멍울 세 개가 맺힌 왼쪽 눈으로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P51)   

  

“서양 문학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어느 날 뤄가 내게 물었다.

“별로....... 우리 부모님이 그분들의 직업 이외의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의학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으셔.”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전에는 고모가 중국어로 번역된 외서 몇 권을 갖고 계셨어. 아주 웃기는 늙은 기사의 이야기를 그린 ‘돈키호테’라는 책에서 고모가 읽어주셨던 몇 구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지금은 그 책들이 어디 있는데?”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렸어. 홍위병들이 그 책들을 압수해서 고모가 사시는 건물 바로 밑에서 공개적으로, 가차 없이 불살라버렸거든.”             (P72)     


내가 물었다. 

“아니, 귀가 울려서 그래. 심하지는 않아.”

채롱 안에 쌀을 모두 주워담고 보니 내 외투 소맷자락에는 얼어붙어서 울퉁불퉁하고 딱딱해진 눈이 잔뜩 달려 있었다. 

“이제 슬슬 출발해볼까?”

나는 뤄에게 물었다. 

“그래, 채롱을 지게 도와줘. 꽤 추운데, 등에 무거운 걸 지면 따뜻해질 것 같아.”

뤄와 나는 오십 미터마다 교대하면서 육십 킬로그램의 쌀을 창고까지 날랐다. 우리는 기진맥진했다.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자, ‘안경잡이’가 너덜너덜하게 낡은 얇은 책 한권을 건네주었다. 발자크의 소설이었다.          (P78)     

“옛날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지?”

노인이 우리에게 물었다. 

“네. 중요한 기관지에 낼 겁니다. 영감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명의 낭만적 감정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드러낸 노래입니다.”

뤄는 솔직하게 말했다. 

“낭만적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해보던 뤄가 하늘에 대고 맹세를 하는 증인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건 감정과 사랑입니다.”

노인의 뼈마디가 튀어나온 손가락들이 기타처럼 들고 있는 악기의 현을 퉁겼다. 첫째 음이 울리고 나서 노인은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흥얼거렸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노인의 음성과 멜로디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완전히 신비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복부의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배를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사실 바짝 마른 노인에게 복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부분의 쭈글쭈글한 살가죽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잔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노인이 노래를 부를 때, 볕에 그을려 울긋불긋 얼룩진 배에서는 잔주름들이 흡사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고, 그에 따라 허리띠 삼아 매고 있는 새끼줄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어떤 때는 새끼줄이 물결 같은 주름 속에 휩싸여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조수의 흐름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다시 의연하게 떠오르곤 했다. 실로 경이로운 새끼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윽고 방앗간 노인의 약간 쉰 듯하면서 깊게 울리는 목소리가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노인은 뤄와 나의 얼굴에 때로는 다정한 공모의 눈초리를, 때로는 약간 혼란스런 눈초리를 보내면서 노래했다. 

노인이 부른 노래는 이런 것이었다. 

말해봐.

늙어빠진 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뭐지?

끓는 물,

끓는 물을 두려워하지.     

그럼 젊은 비구니가

두려워하는 것은 뭐지?

늙다리 중을 두려워하지

오직 늙다리 중만.                    (P102-104)     

'하늘긴꼬리닭‘ 산에 도착한 이후로 ’안경잡이‘의 입술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날씨는 무더웠다. 그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히고 안경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두 번이나 떨어져 깨질 뻔했다. 그런데도 그는 소금국물과 화주와 석유가 온통 지저분하게 얼룩진 종이에 받아 적어온 방앗간 노인의 노랫말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노랫말은 모두 열여덟 편이었다. 신발이고 옷이고 벗을 기운이 없을 정도로 파김치가 된 뤄와 나는 침대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우리는 새벽녘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야수의 으르렁대는 울음소리에 쫓기다시피 하면서 대나무숲을 지나 거의 밤새도록 산속을 걸어왔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진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경잡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온통 추잡한 것들만 적어왔잖아!”

그가 우리에게 외쳤다. 

고함치는 그의 모습은 꼭 노발대발한 지휘관 같았다. 나는 그의 말투가 언짢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리가 ‘안경잡이’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임무를 수행한 데 대한 보답으로 책 한두 권 정도를 빌려보는 것뿐이었다. 

“우리한테 산골 사람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노래를 부탁했잖아.”         (P106-107)     


우리는 가방 쪽으로 다가갔다. 가방은 굵은 새끼줄을 십자 모양으로 둘러 단단히 묶인 상태였다. 우리는 새끼줄을 풀고 조심스레 가방을 열어보았다.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가방 안에 가득한 책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이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맨 위에는 우리의 오랜 친구 발자크의 소설 대여섯 권이 놓여 있고, 다음으로 빅토르 위고, 스탕달, 뒤마, 플로베르, 보들레르, 로맹 롤랑, 루소, 톨스토이,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그런가 하면 디킨스, 키플링, 에밀리 브론테 같은 영국 작가들의 책도 있었다.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나는 환희의 안개 속에서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P138)  

   

잠시 침묵하고 있던 나는 가방을 열었다. 

“몇 권만 가져간다면 알아채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전부 다 읽고 싶어.”

뤄가 딱 잘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뤄는 다시 가방을 닫고, 그 위에 한 손을 올려놓으며 기독교인이 맹세라도 하듯 이렇게 선언했다. 

“이 책들로 나는 바느질 처녀를 딴사람으로 만들어놓겠다. 그애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산골처녀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P140)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재교육 기간 동안에 있었던 한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이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채롱을 등에 진 뤄가 ‘빨간부리까마귀’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양쪽이 아득한 낭떠러지로 깊이 파인 폭 삼십 센티미터 가량의 통로를 네 발로 기어갔다. 꼬질꼬질하지만 튼튼한 대나무 채롱에는 중국어로 ‘고씨 노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발자크의 책 <고리오 영감>이 감춰져 있었다. 뤄는 비록 얼굴은 예쁘지만 아직 미개한 산골여자에 지나지 않는 바느질 처녀에게 그 책을 읽어주러 가는 길이었다.            (P151)     


로맹 롤랑에 대해서 몇 마디하고 넘어가야겠다. ‘안경잡이’의 가방에는 네 권으로 된 <장크리스토프> 전집의 제1권만 들어 있었다. 그 작품은 한 음악가의 생애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 자신이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를 생각한다>를 비롯한 여러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있는데다 그 작품이 발자크의 번역가인 푸 레이의 번역이어서 나는 장난 삼아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그 책을 대강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그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P152-153)    

 

나도 몇 달 후에 설날을 맞자 그 선물로 발자크의 소설 세 권 <고리오 영감>, <외제니 그랑데>, <위르쉴 미루에>에 각각 헌사를 써주었다. 나는 그 헌사 밑에 한자로 된 내 이름 석 자를 뜻하는 세 개의 그림을 그렸다. 첫 자로는 울음소리를 내며 바람에 갈기를 휘날리며 신나게 달리는 말을, 둘째 자로는 정성껏 다듬은 골제 손잡이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날카로운 장검을, 셋째 자로는 가축에 매다는 작은 방울을 그렸다. 나는 그 방울이 외부에 도움을 청하려고 딸랑거리기라도 하듯 방울 주위로 많은 빛살이 퍼져나가도록 그렸다.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든 나는 그 서명을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위에다 내 피를 몇 방울 떨어뜨릴 생각까지 했다.           (P154)     


‘안경잡이’의 비밀가방에서 금지된 과일을 맛보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중국이나 북한, 심지어는 알바니아 영화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나의 교양과목이었던 공격적 프롤레타리아의 사실주의를 그린 그 영화들은 이제 나에게는 인간의 욕망과 진정한 고통, 특히 삶과는 아주 동떨어져 보여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이야기하는 고생을 할 만큼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얼마 전에 다 읽은 소설이 떠올랐다. 발자크에 푹 빠진 뤄는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P170)     

“한 가지 제안을 하겠어요. 제 여자친구를 도와주시면 그애는 평생토록 선생님께 고마워할 거예요. 대신 제가 선생님께 발자크의 책 한 권을 드리죠.”    

아주 외딴 고장의 관할 병원에서 손가락이 몽땅 잘려나간 환자의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가 난데없이 발자크라는 이름을 들었으니, 그 의사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의사는 잠시 머뭇대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넌 좀전에 거짓말을 했어. 그러니 발자크 책이 있다는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양가죽 점퍼를 벗어 뒤집은 다음, 털이 없는 부분에 내가 옮겨 적은 문장들을 보여주었다. 잉크로 쓴 글자들은 전보다는 좀 흐려졌지만 아직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의사는 글을 읽으면서, 아니 그보다는 감정을 하듯 들여다보면서 담배를 꺼내 내게도 한 개비를 주었다. 그러곤 담배를 피우며 거기에 적힌 글을 모두 읽었다. 

“푸 레이 번역이군. 그분의 문체를 잘 알지. 그 역시 네 부친처럼 인민의 적이 됐지만.”

그가 중얼거렸다. 

의사의 말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물을 억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은 바느질 처녀 때문도, 내 임무가 완성된 것이 기뻐서 나온 눈물도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발자크 번역가를 향한 눈물이었다. 어쩌면 그 눈물은 한 지식인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경의, 가장 큰 감사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P235-237)     


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창백한 얼굴로 불가에 앉은 그는 하소연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뤄는 책을 불사르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가버렸구나.”

내가 말했다. 

“응, 대도시로 가겠대. 그애가 발자크 얘기를 했어.”

뤄가 대꾸했다. 

“뭐라고 했는데?”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P251-25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