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May 01. 2024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영화 <위험한 유혹As I lay Dying>  2013년

네 명의 아들과 딸 듀이 델(Dewey Dell), 남편 앤스(Anse)가 추구하는 여행의 표면적인 목적은 장례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 다알(Darl)과 사생아 쥬얼(Jewel)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의 여행 목적은 따로 있다. 남편 앤스는 의치를, 장남 캐쉬(Cash)는 라디오를, 막내아들 바더만(Vardaman)은 장난감 기차를 얻기 위해, 그리고 임신한 듀이 델은 낙태를 하기 위해 여행을 지속한다. 여행의 본래 목적은 여행이 진행되면서 점차 노골적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이 여행을 통해 인물들 저마다의 욕망은 물론 인물 간의 관계, 그리고 그 갈등이 드러난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톱질 소리가 멈춘다. 톱밥이 어지럽게 널린 마당에 서서 캐시는 널판자 두 개를 맞추고 있다. 주변이 어두워서 널판자는 황금판처럼 노랗게 보인다. 부드러운 황금빛이다. 널판자의 측면은 손도끼날 자국이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다. 훌륭한 목수지, 캐시는 말이야. 그는 선반 위에 두꺼운 판자 두 개를 놓고, 다 만들어진 상자의 한 모서리에 가장자리를 맞춘다. 무릎 꿇고 가장자리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내려놓고 손도끼를 집어 든다. 훌륭한 목수야. 엄마는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 죽어 누워 있기에 캐시의 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관은 엄마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들어간다. 손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를 들으며. 탁, 탁, 탁.             (P8-9)     


방 안은 더웠지만 애디는 두 손과 얼굴만 밖으로 내민 채, 턱까지 이불을 덮고 있다. 베개 위로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그녀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다. 캐시가 손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와 톱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귀먹었다 해도, 애디의 얼굴 표정만 보면 캐시가 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캐시에게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앙상한 얼굴에는 피부 밑으로 뼈가 하얀 선처럼 드러나 있다. 그녀의 눈은, 촛농이 녹아 흘러내리는 두 개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영원한 구원과 은혜는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다.        (P12-13)     

 

“엄마는 우리 마차로 가길 원하듯, 관도 필요로 했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관이 훌륭하고, 또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면 더욱 편안히 쉴 수 있지 않겠니. 엄마는 본래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니까. 너희들도 알지?”

“그렇다면 더욱, 정말 남 앞에 나서지 않게 해야지요.” 주얼이 말한다. “도대체 저렇게 시끄럽게 하면서 어떻게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단 말인가요?” 주얼은 창백한, 나무 같은 눈으로 아버지의 뒤통수를 쏘아본다.

“물론 관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너희 엄마는 잘 버틸 수 있을 게다. 모든 것이 준비될 때까지. 그리고 엄마 스슬로가 편안하게 느낄 때까지. 길이 이 상태라면, 엄마를 읍내로 옮기는 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하고 버논 아저씨가 말한다.     (P25)     


번드린 부인은 외로운 여자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그냥 참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고 있을 때,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거만함 때문에 외로운 여자였다.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40마일이나 떨어진 먼 땅에 자신을 묻으라고 주문할 만큼 유난스럽다. 번드런 가족과 함께 묻히는 것이 싫었던 거지.             (P29-30)     

“그런 말 마세요.” 내가 말했다. “여자의 자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이에요. 내가 죽을 때 당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앨라배마 주로 가서 묻힌다면 좋겠어요? 잘되거나 못 되거나 내 운명은 당신에게 맡겨야지. 그렇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은 아니잖소.”

난 그렇게 할 것이다. 하느님과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해왔다. 기독교인인 남편의 명예와 평안을 위해서. 아이들을 사랑스럽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죽게 되면 사랑했던 가족의 작별키스를 받아야 한다. 오만과 뼈아픈 슬픔을 숨긴 채 홀로 죽어가는 애디 번드런과는 달라야 한다. 죽는 편이 차라리 낫지. 그녀는 고개를 바싹 세우고 누워 아마도 캐시가 관을 잘 만드는지 감시하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비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기 전에 서둘러 3달러를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 짐 더 벌목하여 돈을 벌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먼저 마차에 이불을 깔고 번드런 부인을 태우고 강을 건너가, 기독교인에게 걸맞은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룰 시간이 있으련만.            (P30-31)     


“아내는 죽어가고 있소.” 그가 말한다. “본인이 죽으려고 작정하고 있소.”

사실상 여자에겐 이곳 생활이 고되다. 어떤 여자들에겐 더욱 힘들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는 일흔이 넘도록 사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밖에서 일하시고, 막내가 태어난 이래로 단 하루도 앓아누우신 적이 없었다. 마침내 어느 날, 사십 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고 장롱에만 넣어두었던 레이스 달린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기곤, 눈을 감으셨다. “너희들 모두 아버지를 잘 돌봐드려라. 이제 피곤하구나.”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앤스는 손으로 무릎을 문지른다. “하느님의 뜻이겠지요.” 그가 말한다. 모퉁이 너머에서 캐시가 톱질하고 못 박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이다. 더 진실한 말이 또 있겠는가. “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내가 말한다.        (P37-38)     

빌어먹을 길이로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 이렇게 서도 훤히 보이는 것 같다. 이놈의 비가 벽처럼 아이들을 가로막고 있겠지. 그 때문에 내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고. 어떤 일이든지 내가 맘먹은 일엔 최선을 다하는데...... 빌어먹을 아이들 탓이다. 

길이 바로 집 옆으로 뚫린 탓에 온갖 불운이 어김없이 들락거린다. 언젠가 애디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길바닥에 있는 모든 불운이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그러나 애디는, 여자들이 늘 그렇듯이. “벌떡 일어나 이사하지 그래요.” 라고 말했다. 길이란 여행을 위하여 하느님이 무엇인가를 계속 움직일 목적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길이나, 말, 혹은 마차처럼 앞뒤로 길게 뻗어야 한다. 그런데, 한자리에 머물도록 만든 것이라면, 나무나 사람처럼 위아래로 뻗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위아래로 쭉 뻗은 사람이 길에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길과 집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집이 먼저 세워져 있는데 그 옆에 길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절대로, 마차를 타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현관에 침을 뱉는다면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편히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나무나 옥수수처럼 한곳에 머무르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사람이 계속 움직여야 하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면 하느님은 사람을 뱀처럼 길바닥에 쭉 뻗어 기어다니는 모양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분명히 그렇다.              (P43-44)     


사람들이 자신의 불운을 저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거야 그들의 죄가 커서다. 난 저주를 받을 만큼 죄진 일이 없으니 내 운명을 저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신심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평화다. 암 그렇고말고. 내 삶이 남들이 내세우는 삶보다 더 훌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나쁘지도 않다. 하느님은 최소한 들판에 떨어지는 참새만큼은 날 염려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곤궁한 사람이 길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은 좀 너무하다.             (P46)      


듀이 델은 침대 옆에 서서 애디에게 부채를 부쳐주고 있다.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애디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렇게 열흘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죽음이 일종의 변화라면 그 변화를 막는 일조차 오랫동안 앤스의 몫이었다. 난 어릴 적, 죽음을 단순히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허무주의자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죽음이란, 가족 또는 세들었던 사람이 집이나 마을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애디는 눈만 끔뻑거리며 우리를 바라본다. 그 눈은, 감각이나 시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호스에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월에게 닿은다. 그러나 호스꼭지가 뿜어내는 물줄기의 충격이 미치는 순간, 마치 물줄기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나를 바라보고, 그런 다음 막내아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이불 밑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앙상하다.               (P53) 

        

“아니에요. 돈 때문이 아니었어요.” 앤스가 말한다. 난 그냥, 아내가 좋아질 거라고..... 그렇지 않나요? 계단 꼭대기에 앉아 있는 꼬마는 유황빛 태양 아래서 더욱 작아 보인다. 이 고장에서는 바로 그게 문제다. 날씨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너무 오래 머물러 탈이다. 강이나 땅처럼 불투명하고, 느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것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으로 천천히 인간의 삶을 형성하고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난 알고 있었지요.” 앤스가 말한다. “또렷하게 늘 알고 있었지요. 아내는 늘 죽을 생각만 했단 말이오.”               (P54) 

        

주얼, 내가 부른다. 잿빛 투창이 날아가 태양을 가린 것처럼 해가 밋밋한 잿빛으로 변한다. 빗속에서 노새는 입에 김이 서리고, 진흙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바깥쪽의 노새는 갑작스럽게 도랑 윗길 구석으로 미끄러진다. 기우뚱한 통나무는 물에 젖어 누런 빛으로 번들거리고, 도랑 속에 가파르게 기울어져 부서진 바퀴로 납덩이 같은 무게가 쏠린다. 망가진 바큇살과 주얼의 발목 근처에서, 물인지 흙인지 알 수 없는 시냇물이 소용돌이치고, 흙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황토색 길을 돌아, 하늘인지 땅인지 알 수 없는, 검푸르게 흐르는 덩어리 속으로 휩쓸린다. 주얼, 다시 부른다.            (P59-60)     

“돌아가셨군요.” 캐시가 말한다. 

“그래, 우리 곁을 떠났구나.” 아버지가 말한다. 캐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관은 다 만들었니?” 아버지의 물음에 캐시는 대답하지 않고, 톱을 든채 방안으로 들어온다. “빨리 완성해야 할 거다. 다른 아이들은 멀리 있으니 네가 최선을 다해 봐라.” 아버지가 말한다. 캐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내려다볼 뿐, 아버지가 하는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캐시는 침대에 다가가지 않고, 톱밥과 땀이 엉겨 붙은 손으로 톱을 든 채, 중간에 멈춰 선다.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만약 어려운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내일 와서 도와줄 거다. 버논도 도와줄 거야.” 아버지가 말한다. 캐시는 듣고 있지 않다. 마치 어둠이야말로 궁극적인 죽음의 전조인 양, 황혼 속으로 스러져가는 엄마의 평화스러우면서도 엄격한 얼굴을 바라다본다. 마침내 어머니의 얼굴은 황혼에서 떨어져 나와, 낙엽의 그림자처럼 가볍게 두둥실 떠다니는 듯 하다. “너를 도와줄 교우들이 많이 있을 거다.” 아버지가 말하지만 캐시는 듣지 않는다. 잠시 후 캐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을 나간다. 조금 있으니 다시 톱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슬픔에 빠진 우리를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아버지가 말한다. 

끊임없이 서두르지 않은 채, 꺼져가는 태양 빛을 휘젓는 톱질 소리에 어머니는 마치 다시 깨어나 그 소리를 하나 둘 세듯 열심히 듣고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쳐다본 후, 침대 위에 엎드린 듀이 델의 검은 머리카락과, 빛바랜 이불 위에 부채를 움켜쥔 채 꼼짝 않는 그녀의 팔을 바라본다. “듀이 델, 일어나서 저녁상을 차려야지.” 아버지가 말한다. 

그러나 듀이 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서 일어나 저녁을 지으란 말이다.” 아버지가 말한다. “먹고 힘을 내야지. 피바디 선생도 여기까지 오느라 무척 배가 고플 거다. 그리고 캐시도 얼른 먹고 제시간에 일을 마쳐야지.”

듀이 델은 천천히 일어선다. 그러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베개 위에 놓인 얼굴은 빛바랜 청동 주상 같고, 오로지 손만이 생명을 간직한 것 같다. 무기력하나 뭔가 삐뚤어지고 꼬부라진 느낌. 모든 게 소진되었으나 아직도 경계하는 그 무엇 때문에 피로, 기진맥진, 고통이 미처 떠나지 않은 듯하다. 어머니의 손은 마치 죽음 이후 영면의 현실성을 의심이라도 하듯이, 결코 지속되지 않을 정지의 순간, 즉 죽음을 경계하려는 듯하다.            (P60-61)     


캄캄하다. 나무 소리가 들린다. 침묵의 소리. 그러나 살아 있는 소리가 아님을 난 알고 있다. 말이 내는 소리조차 살아 있는 소리가 아니다. 어둠이 말을 녹여버려, 킁킁거리는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로 흩어진 듯하다. 차가운 살과 암모니아 털 냄새. 얼룩빼기 말이 엉덩이와 단단한 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마리 말이 된다는 것은 환상인가. 서로 갈라졌으나 내밀하고 친숙한 또 하나의 존재는 나라는 존재와 과연 다른가. 말이 녹아내린다. 다리, 휘둥그레진 눈, 차가운 불꽃과도 같은 현란한 얼룩으로 각각 나뉘어, 마침내 희미하게 흐느적거리며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모든 것은 한 덩어리로서만 있지 제각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저마다 따로 존재한다면 한 몸체일 수 없다. 난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소리가 말을 휘어 감고, 껴안으려, 그의 단단한 몸집을 둘러싸는 것이 보인다. 발굽 뒤의 털, 엉덩이, 어깨, 머리로 굽이 감긴다. 냄새와 소리까지도. 난 두렵지 않다. 

“요리를 해서 먹는다고. 요리를 해서 먹는단 말이지.”              (P68-69)    

  

뒷문에서는 헛간이 보이지 않는다. 캐시의 톱질 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온다. 마치 집 바깥에 서서 집 주위를 뱅뱅돌다가, 누군가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로든 쫓아 들어오는 강아지와도 같다. 레이프는 나보다 더 걱정이 많다고 한다. 당신은 걱정이 뭔지 몰라. 난 걱정하는 게 아니고 걱정하려 애쓸 뿐이다. 그러나 걱정할 만큼 오래 집중해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부엌으로가 불을 켠다. 불규칙하게 조각난 물고기가 팬 안에서 조용히 피를 흘리고 있다. 조각난 물고기를 찬장에 집어넣고 복도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엄마가 몸져 누운 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 엄마는 자신이 죽었는지도 아직 모를 것이다. 어쩌면 캐시의 일이 다 끝날 때까지, 혹은 주얼이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찬장에서 야채가 담긴 접시를 꺼내고, 차가운 스토브에서 빵 굽는 펜을 꺼낸다. 그러곤 문쪽을 지켜보며 가만히 선다.       (P71)  

    

하늘은 경사면 아래로 비밀스러운 숲 속에 납작하게 깔려 있다. 언덕 위에서 번개가 번쩍이다 사라진다. 죽은 바람은, 마찬가지로 죽은 듯한 어둠 속에서 죽은 땅을 훑고 지나간다. 눈이 미치는 곳보다 훨씬 멀리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땅은 죽은 채 누워 있다. 온기가 나를 감싸며 내옷을 뚫고 속살에 닿는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걱정이 무엇인지도 몰라. 나도 모른다. 난 내가 걱정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걱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올 줄도 모른다. 내가 울려고 애쓰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뜨거운 흙 속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젖은 씨앗이 된 것 같다.                (P76-77)     


아버지는 이리저리 오고 간다. 그의 그림자도 함께 오락가락한다.

엄마가 아니었다. 내가 거기서 보았다.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다른 사람이 거기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가버렸다. “엄마는 읍내로 멀리 가버린 걸까?” “읍내보다도 훨씬 멀리 떠난 거야.” 토끼나 주머니쥐를 만든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기차도 만들었다. 엄마도 토끼와 다르지 않다면, 왜 저마다 다른 장소로 가야 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이리저리 걷는다. 그의 그림자도 따라서 걷는다. 톱은 이제 잠들어 버린 것처럼 들린다.             (P79)      

난 다시 소름이 끼쳤다. 이따금 누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슬픔과 상흔에 대해서. 마치 번개처럼 언제 어디서나 닥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것들로부터 안전하려면 하느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 때로 코라는 다른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가까워지려고 다른 사람을 밀쳐낼 만큼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탈이긴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아내가 하는 일이 옳다. 난 그녀를 따라야 한다. 그녀가 늘 말하듯이, 항상 거룩하고 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있어서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이따금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다. 그래야 좋거든. 하느님은 사람을 행동하도록 만들었지 생각만 하라고 만들지는 않았다. 머리는 기계와 같아서 너무 많이 쓰면 견디지 못하거든. 늘 하던 일만 하고 불필요한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며,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늘 말했고, 지금도 말하는데, 달의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달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애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바르게 잡아줄 배필이라는 코라의 말이 맞다. 내 생각엔, 결혼이 유일한 해결책인 사람은 이미 가망이 없는 경우다. 코라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이 여자를 만든 이유란, 남자들은 옳은 것을 봐도 그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니까 여자들이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지.            (P84-85)  

   

마지막 못을 박아 관을 완성하여 집 안에 다시 들여놓았을 때 이미 동이 트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창문이 열려 있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애디 위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앤스는 두 번이나 하품을 했다. 너무나 졸려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얼굴은 한동안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막 파온 크리스마스 가면 같았다고 코라가 말했다. 그러자 앤스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바람은 더 이상 애디의 시선을 건드리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방에 들어와 보니, 앤스는 거꾸러진 수소처럼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었고, 관 뚜껑엔 수없이 많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캐시가 새로 산 송곳은 마지막으로 뚫린 구멍 속에 부러진 채 꽂혀 있었다. 관 뚜껑을 열자, 애디의 얼굴에도 두 군데나 송곳 구멍이 나 있었다.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하느님은 다른 할 일이 많았을텐데 이런 하찮은 일에까지 신경 쓰시다니. 다른 중요한 일이나 돌보셔야 한다. 어차피 앤스는 자기 자신 외엔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이다. 사람들이 나지막이 그를 욕할 때에도 난 그가 그리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오래 버티지 못했겠지.

정말 너무했어. 어린아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오라고 해놓고는 어린 꼬마가 이토록 잔인한 일을 저지르게 하다니. 코라가 말하길, “내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이지요. 나를 지키시고 뒷받침해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이들을 낳았어요. 우리에게 아들이 없는 것은 하느님의 지혜 안에 뜻하시는 바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 앞에서도 난 떳떳해요.”

아내는 옳다. 하느님이 마음 편히 모든 것을 맡기고 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코라임이 틀림없다. 주인인 하느님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든지, 코라는 자신의 의지대로 조금씩 변화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람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우리는 그 변화를 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우리는 그 변화를 환영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평소대로 살아갈 것이고, 코라가 만드는 변화에 상관없이 잘 살고 있는 척해야 할 것이다.                 (P86-87)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려면 네 자신을 모두 비워야 한다.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을 비우기 전엔 넌 네 자신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자신을 비우면 그때는 더 이상 네가 아니다. 완전히 잠들어 버리면 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내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른다. 주얼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주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또한 그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을 비울 수 없다. 불이 꺼진 벽 너머로 비가 마차를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톱에 잘려 쓰러진, 마차 안의 통나무는 이젠 그들 소유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돈 주고 산 사람들 소유도 아니고, 또한 우리들 소유도 아니다. 통나무 짐에 부딪히며 바람과 비가 내는 소리는 오로지 주얼과 내게만 들린다. 잠을 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비와 바람은 과거 속에 존재했던 것이므로 통나무 짐은 우리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주검을 싣고 갈 마차는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마차가 과거로 사라져버려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마차를 타고 가야할 애디 번드런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얼은 살아 있다. 그래서 애디 번드런도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도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낯선 방에서 내 자신을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비워질 수 없다면, 난 존재하는 것이다. 

비오는 날, 낯선 지붕 밑에서 집을 생각하며 누워 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P95-96) 

      

“약속을 했다는군. 애디가 원했다고 해. 그녀가 그곳 사람이어서 고향에 묻히겠다고 고집을 부린 모양이오.”

“그리고 앤스도 고집을 부리고 있소.” 퀵이 말한다.

“맞아. 만사 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사람이 다른 사람 고생시킬 일은 꼭 하려 드는군.” 빌리 할아버지가 말한다. 

“관을 끌고 어떻게 강을 건널지 모르겠군.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앤스는 건널 수 없을 거요.” 피바디가 말한다.

“이번에도 하늘이 도울 거요. 오랫동안 그렇게 하늘은 앤스를 돌봐오지 않았소.” 퀵이 말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요.” 리틀존이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도와줬으니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겠지요.” 암스티드가 말한다.

“하늘도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아니겠소. 너무 오래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없단 말이오.” 빌리 할아버지가 말한다.

캐시가 나온다. 깨끗한 셔츠로 갈아입고, 머리가 아직 젖었지만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눈썹 위에 가지런히 빗겨 있다. 우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로 와서 꼿꼿하게 앉는다.

“날씨가 어떤지 알고 있나?” 암스티드가 말한다. 캐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뼈가 부러진 사람은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지. 즉 비가 올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네.” 리틀존이 말한다. 

“다리만 부러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될 뻔했지. (....)”                 (P105)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작고 더러운 코를 훌쩍거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까지 모두 떠나버리면, 난 집으로 가는 대신에 언덕 아래 우물가로 가서 조용히, 마음껏 아이들을 미워하곤 했다. 샘물이 퐁퐁 솟아나고, 햇볕이 조용히 나무들 사이로 기울고, 축축하게 썩는 나뭇잎과 새로운 흙냄새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특히 생명이 움트는 이른 봄은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그냥 기억났을 뿐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하루하루 저마다의 비밀과 이기적인 생각, 서로 낯선 피를 가진 아이들을 마주 대하면서, (....)                     (P195) 

    

“그럴까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래서 난 앤스를 받아들였다. 캐시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고, 임신이 바로 그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말이란 전혀 쓸모없다는 사실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말하려고 하는 내용과 내뱉어진 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캐시가 태어났을 때, 모성이란 말은, 그 단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는 그런 단어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공포라는 말도 공포를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존심이란 말도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내가 매질한 것은 아이들이 더럽게 코를 흘리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온 줄로 대들보에 매달려 흔들리고 스스로 꼬이면서도 서로 닿는 법이 없는 거미들처럼, 말을 통해 서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회초리를 휘두름으로써 내 피와 그들의 피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독이 매일 되풀이해서 깨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캐시가 오기까지 나의 고독이 한번도 깨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앤스와 나눈 밤 역시 나의 고독을 깨지는 못했다.

그도 단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 그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P198)   

  

그리고 주얼이 말했다. “지금 데려갈까요?”

“데려가다니?” 아버지가 말한다.

“지금 잡아 묶어버린단 말이지요.” 주얼이 말한다. “젠장, 그럼, 달이 이 빌어먹을 노새와 마차에 또 불을 지른 다음에나 잡아둘 셈인가요?”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 소용없어.” 내가 말한다. “엄마를 땅에 묻을 때까지 기다리자.” 평생 병원에 갇혀 살 운명이라면, 갇히기 전 최대한 즐기도록 해주어야 한다.

“달은 병원에 가야 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아, 정말 내겐 시련의 연속이군. 한번 시작된 액운이 끊이지 않는단 말이야.”

가끔씩 난 확신할 수가 없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미치거나, 완전히 정상일 수는 없을 거다. 마음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는 것이 쉽진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주얼은 달에게 너무 매몰차니까. 하기야, 그날 밤 엄마를 읍내로 나르기 위해 주얼의 말을 팔았으니...... 달이 태워버리려 한 것은 결국 주얼의 말이나 다름없지. 그러나 강을 건너기 전이나 후에도 여전히 난 이렇게 생각했다. 하느님이 엄마를 우리 손에서 깨끗하게 없애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그분의 축복일 거라고 말이다.             (P268)     

그래서 우리는 마차에 앉아 기다렸다.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에게 축음기가 없는 것은 차라리 다행스럽다.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따금 듣는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피곤한 저녁에 음악을 조금 들을 수 있다면 피로가 확 풀릴 것 같다. 손잡이가 있어서 마치 가방처럼 여닫는 축음기를 본 적이 있다. 원한다면 어디든지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아버지는 안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주얼이 말한다. “내가 갔다면 지금쯤 열 번은 왔다 갔다 했을 텐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신 모양이지.” 내가 말한다. “아버지는 너처럼 민첩하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왜, 내가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까? 어서 형의 다리를 고치고 내일이면 집으로 가야 할 텐데.......”

“시간은 충분해.” 내가 말한다. “할부로 사면 저 기계 값이 얼마나 될까?”

“할부로 무엇을 사는데?” 주얼이 묻는다. “뭘 사려는 건데?”

“사람 일은 알 수 없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슈레트한테서라면 5달러에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버지가 돌아온 다음 우리는 피바디에게 갔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이발소에 가서 면도를 하겠다고 나가 버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볼일이 있다면서 외출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우리의 눈길을 피하면서도, 머리는 단정하고 매끈하게 빗어 넘겼고 냄새를 풍겼다. 내버려 두라고 내가 말했다. 어쨌든 음악을 좀 더 들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다시 어디론가 나갔다가 돌아왔다. 마차를 풀고 떠날 채비를 하라고 말한 뒤, 곧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식구들이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너, 돈 좀 있니?”

“피바디 의사가 여관 숙박비만큼만 돈을 주었어요.” 내가 말했다. “이제 돈 들 일이 없잖아요?”

“맞아.” 아버지가 말한다. “이제 돈이 필요 없지.”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필요한 것이 굳이 잇다면, 피바디 선생이 다시 도와 줄 겁니다.”

“아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모퉁이에서 기다려라.”

주얼은 나를 마차에 태우고 광장을 가로질러, 아버지와 만나기로 약속한 모퉁이로 갔다. 듀이 델과 바더만은 바나나를 먹으며 마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죽은 어머니가 알면 별로 기분 내키지 않을 뭔가를 저지른 사람처럼 아버지는 대담하면서도 비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주얼이 묻는다.

“저 사람이 누구죠?”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 것은 손가방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주얼이 말한다. “이를 해 넣으셨군.”

사실이었다. 새로 해 넣은 의치는 아버지의 머리를 반듯하게 세워줘서, 놀랍게도 키가 30센티쯤 더 커 보이게 했다. 그래서 더욱 당당하면서도 동시에 비열하게도 보였다. 그의 뒤에는 한 여자가 보였다. 오리같이 생긴 여자가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가방을 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하게 윽박지르려는 듯이 툭 튀어나온 눈을 하고 있었다. 듀이 델과 바더만은 먹던 바나나를 손에 쥔 채 입을 반쯤 벌리고 쳐다보았다. 여자는 아버지의 뒤에서 나와 우리를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에 들린 가방은 소형 축음기였다. 이 모든 것은 이제 변할 수 없는, 그러나 그림처럼 예쁘게 틀에 박힌 사실이었다. 이제 우편으로 주문한 새 음반을 틀어놓고, 겨울에는 집 안에 앉아 음악을 듣게 되겠지. 달이 그 음악을 즐기지 못하다니, 참 안된 일이다. 그러나 그편이 낫지. 이 세상은 달의 세상이 아니고, 이곳의 삶은 그의 삶과는 다르니까.

“이쪽이 캐시이고....... 주얼........ 바더만.......... 그리고 듀이 델이오.” 비열하면서도 당당하게, 우리를 바라보지 않은 채 아버지가 우리를 소개한다. 그는 이제 의치도 있고 모두 다 가진 듯하다. “얘들아, 새엄마, 번드런 부인이다.” 아버지가 말한다.                               (P297-299)  


이전 04화 헤르만 코흐의 <디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