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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09.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9. 주제(subject)는 무엇이며, 소재(object)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주제主題로 사진을 찍을 것이며, 그 소재素材(대상)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아름다운 장소의 멋진 풍경이 될지, 아름다운 미모의 모델이 될지, 우리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이며 전시한다. 셔터를 누르기 이전에 작가는 자신의 미적 감수성과 세계관으로 주제와 소재를 선택한 이후에 사진을 찍는다. 5W1H에 의해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쓸 때처럼 사진 또한 사진을 찍게 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렇게 구상하고, 기획함으로써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뭘 찍어야 할지?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주제의식 없이 이쁜 소재들, 이쁜 사진들을 찾아서 헤메게 된다. 그냥 이리저리 뛰어 다녔지 정작 무엇을 담아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단순히 소재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주제를 정해야만 첫 단추를 풀수 있다. 어떤 주제를 정해야 할지는 늘 항상 던지는 고민이다. 일단 주제를 정하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일관성있게 긴 시간동안 작업하는 것도 작가의 자세이다. 한 주제를 1년 이상 꾸준히 찍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든, 예술 사진가이든,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몇 년을 작업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스타일과 작가관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할 때 소재와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 소재는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특정 상황, 인물, 행동 등이지만, 주제는 그를 통해 드러나는 의미라 할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소재로 선택한 구름이나, 화이트가 선택한 고드름은 소재일뿐 주제는 아니다. 이들은 이것들을 통한 제 3의 무언가를 의미하고, 이것은 작가의 의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사진이 잘 못나오면 소재만 탓하고 사진 잘 받는 소재만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해석하고, 소재를 대하는 주제의식이라는 점이다. 주제를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강한 주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사진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의 주제의식은 그의 의도, 작가정신이고 그의 예술적 신념이다. 


위의 사진들은 2005년부터 2007년에 장애인(長愛人)을 주제로 작업을 했었다. 1년은 장애인들의 스포츠를 취재했으며, 1년은 어린이, 1년은 예술가들을 취재했었다. 장애인을 주제로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기존의 장애인에 대해서 비참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 접근하고자 했었다.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없이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대상에 대한 나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소재가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라면 주제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고, 또 소재가 구체적이고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것이라면 주제는 추상적이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진에서 사용하는 ‘오브제’의 의미는 무엇일까? 카메라 혹은 사진가가 만나는 ‘대상’(세계)을 흔히 오브제Object와 피사체(被寫體)라고 한다. 소재를 통해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사물(오브제)이나 인물(피사체)을 통해 주제를 상징하고 은유하게 된다. 무엇(주제)을 전달하기 위해서 무엇(소재)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이 소재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주변에는 많은 소재들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나 개념예술주의자들은 소재로서 오브제를 다룬다. 

     

윌리엄 웨그먼(William Wegman)은 비디오와 사진을 매체로 Man Ray라는 개를 주인공(소재)으로 작품을 만든다. 바이마라너(Weimaraner)종인 만 레이와 위그만은 20년동안 함께 작업한 대상이다. 그후 그의 작업은 Fay Ray라는 개와 그 강아지들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 개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의 사진은 대상을 단지 촬영을 위해 작가가 직접 구성해서 연출한 구성된 사진(fabricated photography)이다. 신디 셔먼이 영화의 배우처럼 의도적으로 계획된 장면을 연출하는 것과 같다. 사진가는 대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그의 주제의식에 달려 있다. 그는 대상을 웨그먼이나 셔먼처럼 기획하고 구성할수도 있지만, 그 전에 대상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대상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소재(대상)를 찾아다니며 카메라를 폭력적으로 들이댄다. 피사체에 대한 이해 없이 사진을 찍는 것은 아마도 피사체에 대한 착취일 것이다. 

     

1994년 ‘수단의 굶주리는 소녀’를 촬영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사진을 찍기 전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1994년 7월 28일 친구와 가족 앞으로 편지를 남긴 채, 33살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 피사체에 대한 윤리적인 면도 사진가의 행위에 대해서 생각의 여지를 준다. 광고사진, 상업사진, 예술사진등은 이론상 진실성보다는 창의적 이용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대상을 조작, 왜곡, 대체, 손상, 낭만적 묘사등 작품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상에 대한 몰이해는 부정적인 행위를 낳을 수 있다. 작가를 주체(subject)로 본다면 주체가 객체(object)인 대상에 대한 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주체로서 세상의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주체에 맞추어 바꾸는 데카르트식의 서양철학은 주체의 죽음, 주체와 객체간의 철학적 물음으로 발전한다. 객체를 타자로 본다면, 레비나스는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주체중심의 사유에서 타자중심의 사유를 시작해야한다고 사유틀의 전환을 제기한다. 나는 주체로서 나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나를 발견하고 내가 무의식중에 억압하고 함부로 다루었던 객체인 타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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