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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06

by 자오

옷에 관심이 있다. 잘 입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것저것 사 모았고, 나름대로 입고 다녔다.


지난 1~2년 동안 의류잡화에 돈을 꽤 썼다. 조금 후회가 된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고 있다. 돈 벌지 못하는 자, 사지도 마라. 그런 거다. 지금의 나는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돈 벌지 못하는 자, 벌레 따위가 되어라. 물론 가족들이 나를 벌레 취급하는 건 아니다. 내 심리 상태가 그렇다는 말이다.


아래 사진들은 모두 내가 대학생일 때의 모습이다.

4학년을 책임진 뉴발란스 2002.
잘 입고 다녔던 프렌치 워크자켓과 따뜻했던 목도리.
나홀로 부산여행 때 입고 갔던 데님 셔츠.

나는 셔츠를 즐겨 입었다. 대충 걸쳐도 깔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멀하게 입지는 않았다. 난 후리(?)한 게 좋았다. 그 편이 입고 다니기도 편하고 보기에도 편했다.

장발이었을 때는 주로 볼캡을 쓰고 다녔다.


이 조합을 참 좋아했었다.

언뜻 보면 블랙이지만, 진짜 블랙 앞에 서면 잉크빛을 내는 셔츠.

코튼 나일론 혼방의 얇은 카고팬츠.

구두인 척하는 스니커즈.


그러나 이제 저 신발은 신을 수가 없다.

족저근막염이 있는 사람에게 저런 신발은 사치다.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부산 여행.

저 때 입었던 셔츠는 린넨 셔츠이다.

여름밤의 해풍이 시원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셔츠가 오늘로 할인 마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매욕이 또 발동됐다.

그런데 빠르게 식었다.

'입고 나갈 일도 없잖니.'

'네가 돈 벌어야 할 입장이지, 돈 쓸 입장이니?'

이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구매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그래, 어차피 옷을 사고 나면 반짝 행복했다가 금세 불행해질 걸 알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자! 고 또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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