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분명 사랑이다. 나를 가장 크게 흔들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치이자 존재는 분명히 사랑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 지나간 사랑에 대해 두세 개의 짧은 글을 쓰긴 했지만, 그 글들을 읽고 사랑을 감응한 이는 없었을뿐더러, 사랑을 말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으니 사랑 타령은 아니라고 해두자.
지금 사랑을 하지 않는 이가 사랑에 대하여 떠들어 대는 행위는 커다란 결례다. 사랑이라는 선 안에 있는 상태와 선 밖에 있는 상태는 명백히 다르다. 그래서 사랑의 선 밖에 있는 나는 사랑을 말할 수가 없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죽음이라는 선을 넘어가지 않은 이가 어떻게 그 세계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랑도 그렇다. 물론 사랑은 죽음과 다르게 경험할 수 있고,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선을 넘었다가 다시 그 선을 넘어왔다. 그리고 모두 잊어버렸다. 마치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저승에 있는 전생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다리를 건넌 것처럼 말이다.
사랑으로부터 기인했던 달콤함과 황홀, 쾌락과 흥분, 실망과 우울, 그리고 설렘과 슬픔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일 뿐이지.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 어떤 건지 안다는 이들을 믿지 않겠다. ‘난 사랑이 무언지 알아’라는 이가 과연 있을까. 그런 이들은 우주를 안다는 이들과 같다. 마치 달에 우주선을 보냈다고 정복이라도 한 모양새다. 하늘 멀리 우주에 있는 우주인들조차 우주를 모른다.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들로 차고 넘치는 우주를 전부 아는 이는 없다.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을 느낄 뿐,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을 안다는 이들은 사랑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단정 지은 이들일 테다. 호들갑스러운 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겠다.
사랑은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사랑을 알아간다는 건 우주를 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행성과 은하, 별들과 생소한 이름의 물질들, 그리고 우주 널리 퍼져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물질이 우주를 구성한다. 사랑도 앞서 말한 설렘과 달콤함, 우울 따위의 요소들과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의 합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우주에 대해 모두 아는 것과 사랑에 대해 모두 아는 것 모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알지 못하겠지. 만약 살아있는 동안 사랑에 대해 누군가 완벽히 밝혀낸다면, 남은 생을 사랑을 공부하는데 쏟아붓겠다고 맹세하겠다. 사랑에 대한 학위도 받아낼 테다.
난 사랑 타령은 하지 않거니와 사랑에 대한 글도 잘 읽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무지 뱉어낼 수도, 소화를 시킬 수가 없다. 덕분에 사놓고 아직 열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사랑을 말한 책들이 침대 머리맡에 널브러져 있다.
언젠가 나도 그 상투적이고 진부한 사랑 타령을 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