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의 의미에 대하여
불어가 풍기는 특유의 나른함과 간질거리는 기운이 느껴지는 단어인 랑데부. 사실 이 단어를 검색하면 생각지도 못한 의미가 나온다. 『우주라는 공간에서 두 물체가 만나는 일』이지만, 랑데부는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한 상자 사주고만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 랑데부가 아니라 피쑝이라던지, 기저후 따위의 이름이었다면……>
저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마주하는 일은 분명 낭만적이다. 이곳저곳에서 각자가 가진 존재를 발하는 별과 행성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어두컴컴한 공간을 모두 메우지 못한다. 무언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들이 채우고 있는 그 공간을 말이다. 그런 우주라는 공간에서 두 물체가 혹은 두 우주선이 혹은 두 우주인이 만나는 일은 동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이나 기적 같은 일이다.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에서 약속하고 친구를 만나는 일만으로 엄청난 신기함을 느끼는 우리인데 무언지도 모르는 시꺼먼 무언가를 헤쳐나가 기어코 서로를 찾아내 마주하는 일은 신기함을 넘어 가히 감동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랑데부는 남녀 간의 약속을 의미한다. 어떤 이유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마카롱을 사주고 싶은 사람은 분명 낭만적인 사람임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 사랑하는 이들의 만남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마주하는 일만큼이나 기적적인 행위다. 불교에서는 500 겁의 인연이 쌓여 옷깃이 스친다고 한다. 그의 배가 넘는 인연이 쌓여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만난다. 우주에서의 랑데부도 그에 못지않게 힘든 만남이다. 개미보다도 작은 아주 작은 수치의 움직임이라도 틀어지면 랑데부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주라는 공간을 헤쳐나가 만나는 일과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연을 쌓아 만나는 일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이점 속에서 퍽 힘들게 닿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랑데부’라는 단어를 애정한다.
언젠가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의 랑데부를 본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며 서로의 합을 맞추는 두 존재를 기억한다. 티브이 속의 랑데부는 중간중간 아나운서와 과학자의 나래이션이 들렸지만 분명 고요했다. 영화 속 사랑하는 이들의 만남도 가는 도중 중간중간 음악이 섞이지만, 서로 마주한 순간은 고요하다. 참으로 나른하며 또 간질거리는 장면이다. 극적으로 마주한 주인공들에겐 BGM 따위보다 숨이 턱 막힐듯한 정적이 더 잘 어울릴 테니. 요란한 음악은 랑데부하고 난 뒤에나 어울린다.
문과적 감수성이 뛰어난 내게<사실 수학을 못 하고 싫어하여> 우주에서의 만남은 나에겐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은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라 기대한다. 그러니 함부로여서는 안된다. 외계인일지 우주 해적일지도 모르는 이와 함부로 랑데부할 수는 없으니.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언제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차분히 기다리겠다. 당신과의 랑데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