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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Mar 13. 2023

아버지께 띄우는 마지막 편지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마지막 장

  아버지가 계신 곳은 편안하신가요? 이곳에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 않던 혹독하던 계절도 결국은 지나가네요. 지난겨울은 마음이 많이 추웠습니다. 낯선 추위에 몸과 마음이 아린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또 봄은 오네요. 


  아버지는 제가 궁금하시겠죠? 저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괜찮지 않은 것도 같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남편과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저의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티비를 보며 하루종일 뒹군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집 앞 놀이터를 바라보다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집이 아닌 놀이터에서 아버지와 마주쳤던 어떤 하루가 떠올라서였습니다. 창문 밖 매화를 보고도 눈물이 쏟아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도 제가 괜찮은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아버지의 많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글을 써내면서 아버지 생각이 아주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들도 떠올랐고 모질게 대했던 나쁜 기억들도 생각났습니다. 기억들을 되뇌며 눈물을 자주 찔끔거렸고 내 글을 읽을 아버지를 상상하며 또 혼자 웃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새삼 감사함을 많이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그것 외에도 아버지와 이별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알려주신 것들이라 생각하려 합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주신 가르침을 적어보려 합니다. 


1.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실입니다. 저는 그간 어린아이처럼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명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일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수십 년 후의 일이라고 아득하게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요. 또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요. 살면서 그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내내 최선을 다해 살아내겠습니다.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 없도록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후회 없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다정하게 지내보려 합니다.  


2.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철없이 먼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가족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슬픔의 끝엔 결국 가족이 내 옆을 지키더군요. 

  그리고 누군가를 함께 잃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엄청난 위안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오빠에겐 '아버지'인, 어머니껜 '남편'인, 고모들에겐 '남동생'인 아버지인 존재를요. 나만이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를 함께 잃었다는 공통의 슬픔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장례식이 치러지는 내내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아파하며 눈물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서로를 공유하던 사이였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 삶 속에 그런 존재가 있음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3.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와 이별을 겪기 전 저는 모든 것이 서툰 아이 같았습니다. 상실을 겪은 사람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그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가 그들의 아픔을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을 내뱉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경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려 입을 닫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당사자가 되고 보니 그 어떤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 써주는 한 마디가 고맙더군요. 그런 마음이 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아픔을 겪고 보니 나보다 먼저 아픔을 겪은 이들을 찾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며칠 후, 누군가 자신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말을 제게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눈이 그분께 돌아갔습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그 아픔을 어떻게 다 견뎌왔는지 묻고만 싶어 졌습니다. 그 슬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먼저 아파본 이들이 안갯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나에게 알려줄 것만 같아 그 뒤를 바라보게 됩니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썼다는 '애도일기'가 읽어봐야겠습니다.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은 이 상실감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 배우고 싶어 집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저는 마냥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아무래도 이 역시 아버지가 남기신 가르침이겠죠.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요. 생각지 못하게 무거워진 어깨에 버겁기도 하지만 열심히 버텨보려 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말은 아버지는 여행을 떠나신 거라고 생각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 여행을 가면 그가 그 여행지에서 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지 않지 않냐고. 그러니 아버지는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난 거라고 생각하자고. 그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버지가 긴 여행을 떠나신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제가 저의 모습을 지키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삶이 힘들어지면 아버지를 떠올리겠습니다. 언제든 매화의 모습으로, 강아지의 모습으로, 구름의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나주세요. 우리의 여행이 끝나는 날 다시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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