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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Feb 12. 2023

나의 결혼식과 아빠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열

  결혼식에 대한 별다른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나라 결혼 문화를 따르긴 싫었다. 세상 화려한 주인공이었다가 1시간 후면 같은 장소에서 사람만 바뀐 채 똑같은 행사가 이루어지는 결혼식 문화가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탓에 수많은 사람 앞에서 행진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 결혼식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도 싫었는데 특히 결혼식을 빙자하여 온갖 돈을 뜯어내는 결혼 업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처럼 예쁘게 하려면 추가 옵션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도 열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결혼을 할 거라면 내가 원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작은 식장을 빌려 친분이 깊은 사람들만을 초대하고 그들과 식사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남편과 엄마는 내 뜻을 존중해주었다. 아빠가 문제였다. 아빠는 내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빠는 가까운 친척과 친구만 부르겠다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기가 직장생활하며 뿌린 돈이 얼만데 자식 두 명 중 한 놈만은 제대로 결혼시키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자식 한 놈이 왜 내가 되어야하냐며 내 결혼식을 빙자하여 수금할 생각이냐면서 분노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빠와 냉전기를 가졌다.


  

  코로나가 기회였다. 그 무렵 코로나가 극심해진 시기였고 사람들을 결혼식에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나는 이 때가 내가 원하는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 뜻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 준비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아빠는 니가 원하는 뜻대로 알아서 준비하고 결혼식에 초대만 해달라고 농담식으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준비한 결혼식은 이랬다. 스몰웨딩을 하는 식장을 빌려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만 초대했다. 나는 내가 준비한 웨딩용 원피스를 입었다. 식전엔 나와 신랑이 함께 입구에 나와 손님들을 맞이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과 얼굴 맞대고 인사할 수 있어 좋았다. 신부 입장 때에는 아빠가 아닌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다. 아빠가 남편에게 나를 넘겨주는 듯한 퍼포먼스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식순은 보통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게 준비했고 남편은 나를 위해 축가를 불러줬다. 식이 끝나고는 손님들께 식사를 대접했고 우리는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름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을 할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부모님 얼굴을 보고 울음이 터지는 것이었다. 결혼식에서 오열하고 싶진 않았다. 남의 결혼식에서도 슬픈 음악이 깔리며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종종 눈물이 흘렸었다. 그러면서도 내 결혼식은 오죽할까 싶었다. 나는 담백하고 유쾌한 결혼식을 원했다. 신파는 싫었다. 결혼식장 측엔 슬픈 노래깔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얼굴은 잘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날 부모님의 표정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결혼식이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었다.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
니 뒤엔 내가 있다."



  결혼 전에 "넌 이제 출가외인이야."하며 장난스레 선을 긋던 아빠의 태도와 사뭇 달랐다. 갑작스러운 다정한 메세지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메세지에 마음이 한껏 든든해졌다. '결혼 생활이 힘들면 꼭 참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빠가 돌아와도 된다고 했어.'하며 앞으로의 삶이 두렵지만은 않았고 그런 메세지를 보내준 아빠한테 너무 감사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아빠의 영정사진으로 좋을 만한 것을 찾았다. 엄마는 결혼식 날의 가족 사진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만들어드린 결혼식 앨범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그날 아빠는 나의 인사를 받고 나와 포옹하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세상 쑥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가장 밝은 미소였다. 그렇게 내가 결혼식 문제로 아빠를 애 먹이기도 했지만 아빠는 그날 내 결혼식에서 그렇게 행복했었나보다.



  남편은 우리 가족이 모일 때마다 나와 엄마가 짝지어 노는 걸 보고는 "내가 장인어른 편 해드려야겠다"며 내게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다. 엄마와 내가 함께 아빠를 잔소리로 공격할 때면 남편이 아빠 편을 들어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면 아빠는 사위의 지지로 우쭐해하기도 했었다. 엄마와 내가 쇼핑다닐 때면 사위가 아빠 옆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자기 편 한 명 새로 만들어놓고는 야속하게 먼저 떠나버렸다.



  그래도 내 옆에 남편이 있어 아빠가 나를 너무 걱정하며 떠나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어려울 때면 그 생각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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