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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Feb 09. 2023

아빠와 디지털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여덟

  아빠 역시 또래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문화를 낯설어했다. 엄마는 '아예 못하는 건 안 한다'는 주의로 아날로그 방식을 밀고 나갔다면 아빠는 '어려워도 도움 되는 건 해야지'라는 주의였다. 인터넷 뱅킹도 사용하고 주식어플도 줄곧 이용했다. 그래도 컴퓨터나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것에는 영 서툴렀다. 아주 기초적인 한글 문서작업도 아빠에겐 큰 도전과제였다. 아빠는 혼자서 한참을 끙끙 앓다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야속한 딸은 '좀 있다가 해줄게.' '나 지금  뭐 하고 있잖아.' 하며 짜증내기 일쑤였다.


  아빠의 디지털 생활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조금 더 어려움에 처했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이 살던 때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나를 불러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내가 결혼한 후에는 바로바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때면 아빠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휴대폰과 관련된 것들이 안되면 무작정 휴대폰 매장에 들어가서 도와달라고 하고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땐 옆자리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저씨는 아빠가 그런 부분에서 많이 힘들어하셨고 본인이 그런 부분을 옆에서 많이 도와드렸다고 이야기했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네가 주고 간 컴퓨터 안되는데 좀 와봐라."

나 "나 지금 막 잠들었었는데 조금만 있다가 갈게."

아빠 "아니 급하다. 그냥 지금 좀 오면 안 되겠나."

나 "조금 있다가 간다고."

아빠 "좀 와서 해주고 가라고."


  아빠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엔 입이 닭발로 튀어나와선 집을 나섰다. '지금 달콤하게 잠들려는 시점이었는데 왜 하필 지금 오라는 거야.' 하며 짜증 제대로 난 상태로 출발했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아빠가 오라고 계속 그래서 집에 가고 있어."

엄마 "그래 안 그래도 너네 아빠가 하도 혼자서 욕하고 하길래 뭐가 영 안되나 보다 싶어서 너한테 전화하게 놔뒀다. 나도 웬만하면 너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번엔 좀 힘든 것 같더라."

나 "그래. 집에 가서 봐."         


  그렇게 친정집에 도착했더니 아빠가 민망한 듯 웃으며 "전화 끊고나서 어찌했더니 해결되어 버렸네. 엄마 만두 사러 갔다. 엄마 얼굴이나 보고 가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힘들다고 오라고 해서 왔더니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니. 허무했다. 아빠는 "내 덕분에 엄마 얼굴도 보고 만두도 먹고 좋잖아." 하며 미안한 마음을 슬며시 내비쳤다. 그 표정에 짜증났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오죽 힘들었으면 전화했을까 싶었다.


  지금 당시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더 다정하게 해결해 줄걸 그랬다. 아빠가 부탁하기 어렵지 않도록 해줄걸. 후회만 남는다. 지금 후회해도 소용은 없겠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아빠 휴대폰을 볼 일이 많아졌다. 아빠 대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네이버 어플에 눌러보았다. 우연히 들어간 아빠의 네이버 검색창에서 울음이 터지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의 최근 검색어였다.

브론치 앱
브런치
솔과학
출판사


  온통 나와 관련된 검색어 뿐이었다. 작년 12월 내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아빠는 굉장히 기뻐했다. 브런치 어플을 잘 몰랐던 아빠는 네이버에서 이런저런 검색어로 내 글을 보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서툰 검색 실력으로 철자도 틀려가며 말이다. 그런 아빠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초록색 창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장례식 이후에 엄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아빠한테 더 잘해줄걸. 틱틱거리지 말걸 그랬어."

나의 말에 엄마는 대답했다.


"너네 아빠는 네가 틱틱거릴 때마다
'저게 내 닮아서 저런다'라고 그랬어.

아빠는
네가 잔소리하고 까칠하게 굴 때도
 다 이해했어."

 



   그런 엄마의 말이 위안이 되었지만 그래도 영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빠는 모든 걸 스스로 잘 해냈지만 유독 디지털과 관련된 부분에서만 힘들어했었다. 그런 아빠에게 나의 짜증과 까칠함이 더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아빠를 서럽게 만들진 않았을까. 아빠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사람처럼 착각했었던 내 모습이 후회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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