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여섯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난 어른이 되기에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일들을 뚝딱뚝딱 해내던 아빠완 다르게 아빠의 뒷정리가 하루하루 벅찬 것 보면 말이다. 인터넷 명의 변경부터 은행 업무까지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버렸다. 행정적이고 건조한 일들임에도 나는 소진된다고 느꼈다.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생전 아빠는 이런 날 보고 애가 아무것도 모른다며 혀를 찼다. 그러고선 엄마한테 "당신이 애들한테 뭐든지 다 해주고 하니까 애들이 약하잖아. 강하게 키워야지"라며 한 마디 했다. 그러곤 항상 오빠와 내가 걱정이었다. 세상 험한 줄도 모르고 해맑은 우리가 아빠 기준엔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빠도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자 공부나 하고 돈 버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만류했다. 직장인이 된 후에도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빠한테 도움을 청하기 일쑤였고 아빠는 "네가 하면 되지. 해봐라."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다 나서서 해결해 줬었다. 내 자동차 보험도, 정비도, 각종 세금 문제도 어려운 건 아빠의 몫이었다.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것이 모토였던 아빠도 딸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아빠의 모토 따윈 관심 밖이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를 잃고서야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아빠는 우리가 자라오는 내내 우리를 걱정해 왔다. 특히 오빠의 학업 문제가 가장 어려운 숙제였던 것 같다. 오빠가 재수, 삼수를 거듭하면서 아빠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미술을 전공했던 오빠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까 봐 아빠는 전전긍긍했었다. 아무래도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장남의 앞날이 쉽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을 것이다.
엄마의 후일담을 이야기해 보자면, 오빠의 입시 발표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집에 도착해 보니 아빠는 이미 집에 와있었다고 했다. 아빠 신발은 있는데 집이 어둠 컴컴한 채로 인기척이 없길래 엄마가 방문을 열어보니 아빠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큰일이 생긴 줄 알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빠의 대답은 아들이 너무 걱정되어서 울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로선 정말 놀라운 에피소드였다. 평소 아빠는 감정표현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MBTI로 치면 ISTJ 성향이었을 것 같은데(이건 내 예상이지만 거의 100% 확률일 것 같다) 극도로 현실적이고 냉정하기도 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런 아빠가 불을 다 꺼놓고 혼자 앉아서 울었다고? 놀랄 노자였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장남이 걱정되어서 견딜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오빠는 그런 아빠의 우려를 딛고 대학에 입학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오빠는 자기 자리를 제대로 잡았고 아빠에게 든든한 아들로 자라주었다.
최근 아빠의 가장 큰 고민은 나였다. 돈 때문이었다. 나는 아파트를 청약받은 상태였지만 나의 주머니 사정으로선 자금을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비 빚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금리가 점점 올라가면서 아빠는 날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쇼핑할 때마다 "돈도 없는 기 그렇게 쓰고 다니면 되겠나."라며 엄마한테 걱정을 토로하곤 했댔다. 엄마는 애 기죽는다고 애한텐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아빠는 나만 보면 온갖 걱정들이 새어 나오곤 했다.
이번 겨울이었다. 엄마는 군고구마를 엄청 좋아하신다. 나는 운동을 갔다가 오는 길에 엄마 줄 군고구마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왔다. 군고구마를 안고 오면서 행복해할 엄마를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5000원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니. 그렇게 군고구마를 엄마에게 건네는 날 목격한 아빠는 바로 한 마디 했다.
돈도 없는 기 그런 거 뭐 하러 사오노.
돈 모을 생각은 안 하고
바로 빈정이 상했다. 돈 없으면 군고구마 한 봉지 못 사 온단 말인가 싶었다. 큰돈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오천 원이었다. 물론 아빠는 작은 돈도 쉽게 쓰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이었겠지만 실제로 돈이 없는 나는 아빠의 걱정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입이 툭 나와서는 "앞으로 절대 안 사 올 거다. 아빠 간식 내가 이제 사 오나 봐라."하고 친정집을 뛰쳐나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남편한테 다 일러주고 있었던 참이었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곤 미안했나 봐. 너 좋아하는 술 사들고 너네 집 쪽으로 가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곤 10분쯤 지났을까. 집 밖에 나가봤더니 멀리서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아빠와 엄마가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편의점 맥주를 손에 가득 사들고 오고 있었다. 아빠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까지 한 건 좀 미안하대.
그래서 맥주 사 왔잖아
그렇게 화해를 청해왔다. 평소 자기 잘못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날 저녁, 아빠의 쑥스러워하면서도 미안해하는 표정은 여전히 내 눈앞에 선하다.
아빠는 그렇게 살아있는 내내 자식들을 걱정해 왔다. 때론 우리가 더 강인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으며 때론 자신이 어찌해줄 수 없음에 답답해져 눈물짓기도 했다. 거기에다 잔소리는 덤이었다. 그런 아빠의 부재 앞에 나는 막막하고 두렵기만 하다. 내 앞을 버티고 있던 커다란 나무가 사라진 느낌이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할 것만 같다.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날 걱정해 줄 아빠는 이제 없어 오늘도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