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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Feb 05. 2023

아빠의 라면

아빠에 대한 기억 조각 다섯

  아빠를 그렇게 잃고 나서 많은 이들이 우릴 걱정해 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는 의외로 잘 챙겨 먹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버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텅 빈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이 사람을 허기지게 만들었는지. 오히려 매 끼니 거르지 않고 먹었다. 어떨 땐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오늘은 티비에서 연예인이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는 바로 라면을 끓여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마주하고 있으니 다시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의 주특기는 콩나물라면이었다. 아빠는 자신의 라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라면은 내가 잘 끓이지.” 어린 시절 엄마가 요리하기 싫은 일요일 점심이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라면이 먹고 싶네.”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아빠는 의기양양하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본인만이 진정한 라면 맛을 낼 수 있다는 듯이. 평소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아빠가 자신 있게 불 앞에 섰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엄마는 “요리하기 싫어서”라며 나에게 찡긋 표시를 냈고 나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키득거렸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으면 방에서 놀던 오빠까지 거실로 나와 다 함께 아빠 표 라면을 먹곤 했다. 아빠표 특제 라면은 우리를 챙겨 먹이느라 지친 엄마의 요리 해방구였으며 우리 가족만의 주말 별미였다. 어쩌다 엄마가 집에 없는 날에도 아빠는 라면을 끓여 우리의 끼니를 챙기곤 했다. 아빠의 유일한 메뉴였다.


  아빠는 눈대중으로 대충 물을 잡아 라면을 끓이다가 계란, 대파, 마늘, 콩나물을 듬뿍 넣어 완성하였다. 간단한 레시피였다. 신기하게도 그 라면은 물을 많이 잡으나 적게 잡으나 비슷한 맛이 났다. 라면 수프 맛보다 각종 재료 맛이 느껴지는 국물 맛이었다. 아빠는 국물 좀 더 먹어보라며 우리 그릇에 국물을 더 떠주곤 했다. 라면 국물이 뭐가 그리 몸에 좋겠냐만서도 그렇게 먹고 나면 대충 때웠다는 생각보단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퇴직한 후에 요리 학원을 다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아빠는 가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포부를 이야기하곤 했었다. 미싱을 배워서 직접 옷을 수선해서 입고 싶다고도 했고 각종 사업 아이템들도 우리한테 제안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요리학원도 그중 하나였다. 콩나물 라면에 대한 자부심 덕분인지 요리에 꽤나 로망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라면 외엔 어떤 요리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우리는 실현 가능성을 굉장히 의심스러워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아빠는 퇴직 후에 그 로망을 이루려고 애쓰진 않았다. 오히려 아빠는 요리하거나 미싱을 배우는 일보다 돈 버는 일에 더 시간을 썼다. 퇴직하고도 오로지 일! 돈! 진정한 워커홀릭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우리는 아빠의 다른 요리를 맛볼 수 없었고 라면만이 유일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오늘의 라면을 앞에 두고 아빠의 라면 국물 맛을 떠올렸다. 입안엔 얼큰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차올랐다. 앞으로 그 맛을 또 먹어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절대 그 맛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빠의 레시피대로 계란과 대파와 콩나물과 마늘을 듬뿍 넣는다고 해도. 그래도 난 그 맛을 찾아 평생을 헤매겠지. 벌써부터 아빠의 라면 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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