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지 한달이 지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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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지독하게 힘겨운 나날이었다. 아빠가 사고난 걸 알고 허겁지겁 귀국길에 올랐던 이틀, 아빠가 병원에 누워있었던 삼일, 아빠의 장례식 삼일, 아빠가 남기고 간 것들을 정리하는데 걸린 몇 주의 시간들. 너무 큰 사건들이 빠른 시간에 일어났다.
어느 덧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일상은 어느 정도 회복된 듯 했지만 여전히 허기진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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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빠의 부재는 믿어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8년이 넘는 시간을 아빠와 함께 살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빠와 같은 동네에서 지냈다. 우리는 집에서 만나지 않아도 동네에서 줄곧 마주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이곳 저곳엔 여전히 아빠가 어려있었다. 집 근처 슈퍼 군고구마 기계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고 놀이터 앞 어린이용 트램폴린에서도 아빠는 거기서 뛰는 게 운동이라도 되는 듯 뛰고 있었다. 고개를 다시 저어보면 어디에도 아빠는 없었지만 왠지 이 동네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빠의 긴 팔다리를 휘저으며.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재열을 따라다니는 그의 어린 자아가 있었다. 장재열은 그 자아가 실제로 옆에 있는 듯이 대화를 나눴다. 드라마를 볼 당시에는 그런 느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줄곧 아빠가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상상을 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아빠가 내게 해줄 것 같은 말이 들렸다. 내가 슬퍼하고 있을 때면 아빠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뭘 그런 거가지고 우노. 괜찮다.'하며 말하는 듯 했고 내가 우왕좌왕걸릴 때는 옆에서 '바보같은 기'하며 핀잔을 주는 듯 했다. 한달 내내 아빠는 내 옆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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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오빠는 꿈에서 아빠를 만났다고 했다. 엄마는 꿈 속에서 아빠가 여느 아침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아빠는 무언가 잃어버리고 간 듯이 허둥거리면서 집에 뛰어들어왔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뭘 두고 나갔냐며 소리쳤다고 했다. 엄마는 그게 꿈인 줄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생생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아빠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무언가를 두고 나가는 바람에 자주 집으로 뛰어들어오곤 했었다. 아마 그런 기억들 때문에 꾼 꿈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생생함이 부럽기도 했고 마주하기 두렵기도 했다.
오빠는 꿈 속에서 아빠가 자기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오빠에게 인생에 대한 한 마디 조언을 해주고는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했다. 아빠를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오빠의 상상이라고 하기엔 기이하게도 느껴지는 꿈이었다. 난 아빠가 장남이 걱정되어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간 거라고 믿었다.
아빠는 여전히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줄곧 아빠의 최애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는데 나에게만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 나는 아빠가 내 꿈에 나타나줬으면 하면서도 아니기도 했다. 아빠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싶기도 했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그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상상만해도 먹먹하기만 한 그리움의 감정이 지금의 내 마음에는 벅찰 것 같았다.
어떤 날엔 복권 집 앞을 지나가면서 아마 아빠가 나한테 복권 번호 알려주러 올텐데 아직 안온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농담도 던졌다. 남편은 아버님이 복권 번호 어렵게 알아내서 이미 니 꿈에 나오셨는데 니가 자다가 까먹은거 아니냐며 내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아빠가 언제 내 꿈에 나올지 모르니 볼펜을 머리 맡에 두고 자기로 결심했다. 평소의 아빠 같으면 분명 복권 번호를 알아다 주고는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을 것 같아 길에서 혼자 키득거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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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면 줄곧 아빠의 사고 장면을 떠올렸다. 내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가지자 경찰서에서는 아빠의 사고 CCTV를 보여주었다. 당시엔 아빠가 사고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했었다. 내가 받을 충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영상은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어떤 날은 영상 속 사고를 당한 직후의 아빠를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스스로 마지막이란 걸 알았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준비되지 못한 죽음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를 떠올렸다. 그리곤 구급차 안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는 아빠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고모는 구급대원과 통화할 때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었다. 아빠는 살기 위해 큰 병원으로 가달라고 외쳤다고 했다. 그 새벽 나는 내가 듣지 못한 그 마지막 목소리를 떠올렸다.
또 어떤 날엔 가해자를 생각했다. 가해자는 사고를 내고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변호사 뒤에 숨어 최소한의 금액으로 합의하려 알량거리는 그 양심에 분개했다. 그런 새벽에는 당장이라도 그를 찾아가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집 앞을 찾아가 욕설이라도 퍼부으며 그 인생에 저주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나면 '아빠가 원하는 건 내가 그렇게 사는 게 아닐 거야.'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렇게 나는 매일 새벽 다른 방식으로 아빠의 사고를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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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삶은 이어졌다. 세상은 나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 굴러갔다. 아빠는 더이상 세상에 없었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냐는 듯이 세상은 평온했다. 아빠의 존재는 우리 가족만 알고 있는 비밀같이 느껴졌다. 아무도 그런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살아내기 위해 애썼다. 엄마를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엄마가 무너질까봐 두려웠다. 엄마는 아빠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던 사람이었다. 아빠의 사고 당일까지 아빠의 저녁을 차려준 엄마. 따로 아빠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또 아빠의 부재를 가장 크게 느낄 엄마. 그런 엄마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내야만 했다. 엄마를 보며 애써 웃었고 용기를 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누워만 있었던 평소의 내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쩌면 이건 엄마가 나를 지킨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를 지켜가며 한달을 보냈다. 서로 밥을 챙겨주었고 함께 아빠를 떠올리며 애잔해하고 때론 농담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시간이 더욱 많은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