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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날 Dec 13. 2023

달리다가 개에게 물릴 뻔했다



러닝 트랙 위에서 몸을 사늘하게 감싸고 지나가는 실바람을 느꼈다. 내가 주로 달리는 동네 강변의 트랙이 있다. 견주들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길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면 그곳은 개와 산책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겨울치고는 유난히 날이 좋았던 그날 역시 동네 강변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달렸다. 사람들을 추월하는 쾌감을 느끼고 있으니 몸이 힘든 줄도 몰랐다. 발을 굴리면서 왠지 오늘 하루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직선 코스 저 멀리서 하얀 개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큰일 만드는 걸 싫어하는 나는(누군들 안 그러겠냐마는) 개와 견주에게 위험하지 않은 러너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그들이 다가오는 방향과 거리를 벌려 트랙의 오른쪽으로 바짝 붙었다.


하얀 개는 주인과 함께 그대로 얌전히 걸어가나 싶었는데 나와 거리가 좁혀지자 우렁찬 소리로 짖으며 내게 덤벼들었다. 그 하얀 녀석의 용맹한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는 내심 억울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용맹스런 모습은 나를 주눅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침부터 개에게 벼락같은 야단을 맞다니. 오늘 하루가 좋을 것 같은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행히 개에게 물리진 않았고 견주에게는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 개를 나무라는 주인을 뒤로하고 달리기를 이어갔다.


그 뒤로 어쩐지 몸에 힘이 들어가서 기록이 평소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방금 같은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개들이 잘 안 다니는 코스로 바꿀까, 하는 잡념에 빠졌다. 달리는 동안 자세와 호흡에 집중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이번 기회에 달리면서 마주치는 개에 대처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말해보겠다.






1. 개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원숭이와 호랑이 등 많은 짐승은 낯선 존재와 눈을 마주치면 경계심과 적대감을 보인다고 한다. 개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달리다가 개를 만났을 때는 개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거나 잠시 반대쪽을 보는 게 이롭다. 개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아무리 사람을 반기는 개라고 한들 집채만한 존재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험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2. 성급히 개를 추월하지 않는다


물론 러너에게 기록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달리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길을 막고 있는 개를 빠른 속도로 추월하는 행동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게 못 된다. 러너와 개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가 진로를 막고 있다면 잠시 속도를 줄이고 뒤따라가거나 견주에게 길을 터줄 것을 부탁하자. 달리는 도중에는 성급한 판단으로 순식간에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안전은 내가 먼저 챙긴다


달리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함께 조심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전의 제1원칙은 ‘내가 먼저 조심하는’ 것이다. 방어 운전의 원칙과 비슷하다. 부주의한 운전자가 많은 도로에서 그들을 전부 교정하면서 운전할 셈이 아니라면 결국 나부터 조심해서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개와 견주가 많은 곳에서 달릴 때는 평소보다 주의력을 높이고 눈에 불을 켜도록 하자. 개보다 지능이 높은 스마트한(?) 러너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위의 수칙은 전문가의 의견은 아니고 내가 달리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야매 수칙이다.


내 기준에서는 2,000km 남짓 달릴 동안 이것들만 지키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안전한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다. 앞서 말한 개가 짖은 사건은 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물리지는 않았다. 마음의 상처는 사고로 치지 않겠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밖에 나가 걷거나 달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부디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취미 활동을 이어가길 바란다. 개 조심, 차 조심, 안전제일!




이미지 출처: Marvelous D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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