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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다시, 함께라는 이름으로

by 글린더

"신랑 신부 입장~"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폭죽이 사방에서 터진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은 땀이 흥건하고 걸음도 삐그덕 삐그덕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보노라니 근육통이 느껴질 지경이다.


"어렵게 돌고 돌아 다시 잡은 이 두 사람의 발걸음에 큰 용기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신랑신부 행진!"


드디어 길고 긴 주례사가 끝나고 한차례 전쟁 같은 결혼식이 끝났다. 마주 앉은 오영과 이영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이내 조용히 손을 맞잡는다.


"오영씨 오랜만이에요~ 와줘서 고마워요"

민영의 친구가 하객들 사이사이를 돌며 인사를 한다.

멋쩍게 웃음 지으며 민영이 가르쳐 준 대로 인사를 한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인사하면, 네 잘 지내셨죠?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라고만 해'를 떠올리며 배운 대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민영이 슬며시 엄지를 척 세워준다.


어느새 민영의 친구들의 결혼식 참석도 가족들 모임에도 짐짓 어색하지만 조금씩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었다. 걱정으로 매섭게 쳐다보던 민영의 가족들도 이제는 조금씩 따뜻하게 맞아주는 듯하다. 더 이상 무섭지가 않아 졌다.

민영은 부쩍 오영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영은 그렇게 조금씩 경험들이 채워져가고 있었다.


민영이 처음으로 우리 딸 지혜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낸 이후로 둘의 관계는 조금 바뀌었다. 크게 뭐가 어떻게 달라졌다 할 수는 없었지만 공기가 바뀐 듯했다. 같은 말도 같은 행동도 더 이상 그날 이전과는 같은 무게가 아니었다.


오영은 민영의 도움으로 작은 스튜디오에서 제품 촬영을 하는 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진에 대한 반응이 좋아 종종 개인적으로 촬영의뢰가 들어오는 일이 늘고 있다. 오늘도 민영의 친구결혼식 촬영의뢰를 받고 민영과 함께 예식에 참석한 거였다. 비록 비용은 얼마 안 받기로 했지만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었기에 신랑신부의 미세한 떨림들이 티가 나지 않게 찰나를 잡아내려 집중했다. 중간중간 확인하며 민영의 서포트를 받는다고 같이 있다 보니 민영의 친구들이 계속 인사를 한다. 배운 대로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전하고 다시 촬영에 집중하는데 그 몇 번의 미소만으로도 얼굴에 근육이 땅기려 한다. 신랑신부의 노고가 확 와닿는다.


"와, 이건 진짜 두 번은 못하겠다. 보는 것도 지치네 어휴"

말하며 문득 우리 결혼식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민영을 바라보니 친구와 수다삼매경에 빠져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웃음이 터진다. 역시 민영은 웃는 게 참 예쁘다.

다시 일에 집중하는 오영을 민영이 바라본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뒷모습이 왠지 듬직하고 멋있어 보인다.


어느새 어린아이 같던 오영이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보다. 조잘거리며 연신 민영만 바라보던 오영은 언제부터인지 민영의 투덜거림과 하소연을 조용히 잘 들어주고 있었고

그런 오영 앞에서 칭얼거림은 민영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민영과 오영은 시원한 맥주한팩과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아파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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