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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아침

오영, 눈을 뜨다

by 글린더

아침이다.


암막커튼사이 미처 막지 못한 틈새로 햇살이 들어온다.

눈이 부셔 실눈을 뜨며 오늘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하루를 시작한다.


오영의 아침은 매일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끊어진 기억의 혼란스러움도, 새로운 기억으로 덮여가며 가끔 이마저도 현실이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이제는 잃고 싶지 않은 민영이 사라져 있을까 차마 바로 눈을 뜨지 못하고 더듬더듬 민영의 흔적부터 찾는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빛이 새어 들어오는 커튼 쪽으로 가 들려있는 커튼자락을 내린다. 그리곤 새근거리는 민영이 깨지 않게 조용히 거실로 향한다.

어느새 아침엔 커피 한잔이 편안하고 익숙해져 있다.

어제 찍은 사진과 영상들의 폴더를 정리하며 커피 한 모금을 삼키다 잠시 눈을 감는다.


'지금 이게 현실인거지? 꿈이 아닌 거지?'

깊이 들이 쉰 호흡을 길게 내뿜으며 이번엔 커피 향을 길게 들이마신다. 진한 커피 향이 코안 깊숙이 들어온다.


어느새 우유보다는 커피가 익숙하고 엄마보다는 민영과 있는 시간이 더 안정된 시간들이 되었다.

간밤에 지난 끊어진 기억 이전으로 돌아간 꿈을 꾼 통에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민영의 권고로 주 2회 상담 치료를 받으며 사라진 기억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부터는 종종 오늘같이 꿈을 생생하게 꾸는 일이 종종 생겼다.


여전히 사라진 몇 십 년의 기억이 완벽히 돌아오진 않았지만

끊어진 필름처럼 군데군데에 구멍 난 사건들이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며 매일 조금씩 성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게 시간들이 채워져 가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의사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마음이 기억을 뒤죽박죽 섞어버린 것 같다 했다.

다행히도 안정을 찾아가며 신체를 담당하는 기관들은 다시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어 기억을 하지 못해도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상황들이 늘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졌다. 간혹 생기는 곤란한 상황도 민영 덕분에 잘 넘겨 주변에서는 어머니를 비롯한 친한 가족을 제외하곤 오영의 상태를 크게 이상하게 보지 않게 되었다.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린애 같은 행동도 민영이 귀여운 애교처럼 받아주니 크게 시선을 끌지 않았다.


익숙해져 가다가도 한 번씩 꿈이 심하게 생생한 날이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치며 아침이 두려움으로 가득해진다. 심장 박동이 잦아들 때까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주변을 최대한 다양한 감각으로 인지한다.

눈을 감은채 잠든 민영을 확인한 후엔 서서히 감각을 진정시킨다.


민영이 새벽에 출근했던 날 아침 오늘처럼 생생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깨 민영이 없음을 느낀 날은 진정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래서 생긴 루틴이 모닝커피다.


어른의 상징, 커피.

아이의 기억만 남아있을 때는 입에도 못 댔던 커피가 어른의 기억이 돌아오며 어느 순간 너무 향이 좋아졌다. 깊고 진한 향이 콧속 깊숙이 들어오면 불안과 의심이 진정되곤 했다.


따뜻한 진한 향이 가득 채워지니 심장도 조금 진정됐다.


휴.. 다행이다

여전히 어른들의 생활이 이해 안 되는 게 너무도 많지만 민영이 있는 지금 시간임에 안심이다. 민영이 그랬다. 본인도 여전히 온전한 어른이 된 거 같지 않다며 오영과 하는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했다. 그 말에 오영은 친절하고 착한 민영에게 잠시 빈정대기는 했지만 안심했다.

많은 시간을 놓치긴 했지만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민영은 오영에게 용기였다. 어린 기억의 오영에게 엄마가 안심이었다면 지금의 오영에게 민영은 살아갈 용기가 되었다.

불확실한 것 투성이지만 못해볼 것도 없지 싶은 생각까지 도착하면 됐다. 오영은 그제야 눈을 뜬다.

남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다시 사진 폴더로 눈을 옮긴다.

A컷과 B컷들을 나누며 폴더를 정리하다 보니 민영이 부른다.


"응, 가~!!"

미처 마무리 하지않은 폴더 그대로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어느새 걷힌 커튼 너머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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