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개장일에 받은 상추 모종을 심고 열무씨앗도 골고루 뿌리고, 바질씨앗을 흙으로 잘 덮어두었다. 바질 씨앗은 3년 전 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오래되어 자라지 않을 수 있어서 씨앗을 물에 불려 놓았다가 뿌렸다. 깨 보다 작은 검은 씨에 반투명 보호막이 생겼다. 봄비가 때맞춰 와서 지금까지는 크게 신경 쓸 일 없이 밭을 가꾸고 있고, 저번주에는 어린 열무를 수확해서 열무물김치를 먹고 있다. 바질이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은 큰 기대였다.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며 새싹들을 살폈다.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지나도 싹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하며 뒤늦게 씨앗을 새로 사서 심었다.
그러다 밭의 경계 고랑, 통로에서 바질로 추정되는 떡잎을 발견했다. ‘그럼 그렇지. 자랄 줄 알았어!’ 조심히 삽으로 깊이 떠서 밭의 좋은 자리로 옮겨주었다. 첫날 두 개를 찾았고 그 다음 날도 두 개를 더 찾았다. 보호구역을 만들어놓고 살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하다. 색이 연하고 자랄수록 잎의 형태가 다른 것 같은데, 오랜만이라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며칠 더 지켜보았다. 이건 바질이 아니다, 연둣빛과 도드라저 보이는 잎맥, 잎가장자리의 들쑥날쑥함이, 깻잎 같 달까. 확인을 위해 작은 잎을 두 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향을 맡아보았다. ‘이것은 깻잎입니다.’ 바질인 줄 알고 애지중지 키운 새싹은 깻잎으로 밝혀졌다. 본잎이 자라자 확연히 구분되었다. 작년 이 구역의 주인은 깻잎을 많이 심었던지 심지 않은 깻잎의 싹이 많이 난다. 이제부터는 기준이 생겼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쉬워진다.
(구)바질은 자라지 않았지만 다시 뿌린 바질 씨앗들은 힘을 내어 자랐고, 진하고 통통하게 윤나는 떡잎을 띄웠다. 깨 심은 데 깨 나고, 바질 심은 데 바질 난다. 깨는 새싹부터 깨이고 바질은 새싹부터 바질이다. 씨앗은 떠내려가다 멈춰서 자라기도 했다.
모종을 심은 상추는 벌써 두장씩 의무적으로 먹고 있는 요즘이지만, 바질은 파종 사기도 늦어져서 아직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지 않았다. 오랜만의 텃밭이라 바질을 많이 수확하고 싶어서 한번 더 빈 곳에 씨앗을 잔뜩 뿌려놓았고, 지금은 많이 싹을 틔웠다.
산더덕을 먹으라고 주셨는데, 몇 뿌리는 먹고 나머지를 밭에 심어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 자라서 놀라고 있다. 주변의 방울토마토가 더덕 때문에 잘 자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지켜보고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더덕을 잡아먹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