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삼거리 Sep 05. 2020

부엌

너와 나의


 엄밀히 말하면 나의 부엌은 아니다.


 냉장고에는 어른들이 주신 김치와 시골 된장, 얼린 나물이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넣을 공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것들 없이는 식탁의 김치찌개는 없는 것이다. 김치를 먹기 좋게 썰고 돼지고기, 물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사각어묵을 썰어 넣고 퉁퉁해지면 먹는다. 집에서 담근 김치를 쓸 때 다른 양념은 필요하지 않았다. 시내 갈 때마다 가는 이름 없는 김치찌개 집의 맛, 어묵을 추가한다.


 부엌에서 j는 많은 새로운 요리를 해주고 알려준다. 며칠 전에는 양파만으로 쪄낸 보쌈을 해주었다. 후추와 월계수 잎 정향 향과 양파즙이 베인 촉촉한 보쌈이었다. 보쌈과 점심때 먹고 남은 차가워진 짭짤한 슈크르트 양배추를 같이 먹었더니, 잘 어울렸다.

  j와 나의 요리는 반대 지점에 있다. j는 재료들을 혼합해서 완전히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둘이 만드는 야채볶음을 비교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비슷한 재료들을 볶는데, 맛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되도록 야채들이 자기 온전한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과 순서를 유지하며 볶는다. j는 내가 보자면, 아니 이제 그만 조리해도 될 때를 지난 것 같은데 계속 볶아내어 형태가 무너져 내리는 것들도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의심스럽게 먹어보지만 ‘이건 정말 맛있군.’ 생각한다. 뭔가 새로운 맛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빵칼을 하나 샀다. 적당히 작고 빨간 손잡이가 마음에 드는 무난한 칼이었다. 얼마 전에는 주로 쓰는 칼을 새로 장만하려고 했다. 돌아다니다 이것저것 살펴보던 우리는 조금 작고 가벼운, 손에 잘 잡히는 것을 사서 집으로 왔다. 도마에 놓고 보니 빵칼과 같은 브랜드였다.

 함께 구입한 도구가 하나씩 늘어나고, 서로의 빈틈을 채우면서 솔직해지고 있다. 각자 요리, 맛에 있어서는 어떤 양보나 타협은 없다. 서로의 맛을 존중하고 할 수 있는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면서 식탁의 얘기들을 이어간다.


 나의 부엌이라는 것은 나만의 부엌은 아니고, 공간 영역이지만 그곳에 애정을 가진 나를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이전 22화 할머니의 식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