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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Dec 06. 2024

김장, 김치의 네 가지 숙성단계

1

김칫속과 절인 배추, 겉절이, 김장김치

고춧가루가 버무려진 김칫속의 건조한 풋풋함과 고소함이 남아 있는 절인 배추, 절여진 굴과 생새우, 액젓의 맛들이 채친 무와 갓, 쪽파, 다진 청각, 찧은 마늘, 생강 등의 재료들, 그리고 찹쌀 풀과 육수, 버무려진 고유의 맛이 살아있는 상태. 요, 김칫소 만으로도 요리라 부르기 충분하다. 남은 김칫속을 배춧잎에 수육과 쌈 싸 먹으면서 우리는 김치의 숙성을 기다리지만 익혀지지 않은 햇김치의 매력 또한 놓칠 수 없는 법, 이때에도 각종 국과 찌개, 김치볶음밥까지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의 김치볶음밥은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더 느껴지고, 수분이 적은 상태이므로 밥과 같이 볶았을 때의 꼬들꼬들함과 배추의 고소함이 살아있는 매우 만족스러운 맛! (며칠 전에 해 먹었습니다.)



2

잘 익은 (숙성) 김치

봄이 오기 전까지, 저온에서 보글거리면서 익어가는 김치는 특유의, 시원함이라고 불뤼는, 이건 차갑기도 하고 아삭하면서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육즙이 배어 나오는데 매콤한 감칠맛이 살아있는 어떤 집합소의, 아니 꼭 맞게 융합되어 이제 막 하나가 된 발랄하면서 활발한 상태라고나 할까. 겨울에, 봄에 이런  움직임과 함께한다는 것은, 시대의 풍족함에 바래지긴 했지만 여전하게 살아있는, 얼은 땅 속에서 꺼낸 생동의 기운. 포기김치를 썰어낼 때 알 수 있다, 살아있음을.



3

묵은 김치

여름이 되어서 밭 채소들을 풍족하게 맛볼 때 즈음, 가을이 시작되며 건조해지고 배추 모종을 심을 때, 작년의 묵은 김치는 무척 요긴하다. 짭짤한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따뜻한 한 그릇으로 먹기도 한다. 식탁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서 다가오는 계절을 기약하게 한다. 요즘은 고성능에 열심으로 일하는 김치냉장고에서 오래 보관하니까 아삭 거림도 유지되고 완전히 숙성되어서 환상적인 붉은 루비 빛깔이 났다. 몇 년 묵은 김치를 보관하기도 한다는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4

(폭삭) 신김치

김치냉장고에서 잘 보관되면 이렇게 폭삭 시어지는 김치는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먹을 일이 없었는데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자주 가던 이름 없는 김치찌개집이 폐업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가져오기만 한 2024 김장김치, 윤여사님 제공

김장김치 2주 후 단면

보조만 한 2023 김장김치, 윤여사님 제공

김장김치 8개월 후 단면

 

나는, 나의 작은 냉장고 시스템을 잘 운영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이건 일단 사실이다, 요, 김치에 있어서는 본가의 큰 냉장고 그리고 그 옆의, 같이 큰 김치냉장고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맛있게 사 먹을 수 있는 시장의 김치가게를 찾아낸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당 있는 집을 산다고 해도, 따뜻해진 겨울 기온 때문에 땅에 독을 묻고 김치를 보관한다는 건 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성실하며 똘똘하게 맡은 임무에 과하다 싶게 정성을 다하는 김치냉장고를 보자니 잘한다 싶다가도 적당히 하지, 생각을 하다 보니 참으로 인간적이라는 , 비인간적이라는, 쉴 줄 모르고 멈추지 않는 지나친 성실함이 데리고 가는 모르던 상태에 대해 약간의 경계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건 김치냉장고뿐 아니라 나의 세탁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적당히 필요한 시간 안에만 일하면 좋겠다, 사실 나의 요구가 과한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인공지능아, 세탁 시간을 단축해라!



KIM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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