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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6. 2021

효도의 2가지 타입.

新소녀가장 6

난데없이 태풍 '사라'가 지나간 친정집에 부모님이 계속 거주하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누수 원인은 잡았지만 젖은 집이 자연 건조된 후 무너진 천장을 복구시키고 집전체에 도배도 다시 해야 되기 때문에 집수리를 하려면 짐을 모두 빼내야 되는 상황이었다. 


내 집 같으면 임시숙소를 잡아 짐을 옮겨 살다가 수리를 마친 집으로 다시 들어가겠지만 어차피 월세집인데 그런 수고를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 이사가 시급했다.


친정동네에 유일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았다. 주변에 부동산중개소는 없었고 아파트 입구에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곳에 해당 아파트 매매 광고가 많이 붙어있었다. 휴대폰으로 매물 사진들을 찍고 있으니 경비원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5개 정도 되는 매물들에 대해 아파트 평수와 방향, 주인이 누구인지와 같은 세세한 정보를 설명해주셨다. 


마침 엄마가 원하는 34평, 정남향, 저층에 즉시 입주가 가능하도록 비어있는 집이 있다고 했다. 주인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어 가격 협상을 한 뒤 혹시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매도하시기를 원하시는 거냐고 여쭈어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셀프등기를 해본 적은 있어도 공인중개사 없이 주택매매거래를 해본 적은 없어서 살짝 겁이 났지만 매도자 아주머니께서 원하신다고 하니 이 동네는 이게 관례인가 보다 생각했고 공인중개사 없이 매매계약서를 쓰기로 합의했다.


전화를 끊고 '공인중개사 없이 매매계약서 쓰기.'라고 폭풍 검색을 해보았다. 매매계약서 양식도 온라인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계약서 작성 후에 구청 직접 방문 혹은 국토교통부 사이트에서 '부동산 거래 신고'만 제대로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오후 매도자 아주머니께 바로 계약금 선금을 보냈고 3일 후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잔금 납부까지 동시에 진행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저녁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매도자 아주머니의 따님이셨는데 갑자기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어머니께 전해 들었고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계약서를 쓴다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냐고 물으셨다. 


매도자 아주머니가 먼저 제안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고 하니 '우리 엄마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라고 당황해하시길래 사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제가 알아보니 그렇게 복잡하거나 위험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내가 조사한 내용들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매매계약서를 포함해 부동산 거래 신고에 필요한 서류 등은 우리 쪽에서 모두 준비할 것이고, 매도자에게서 받을 서류가 있으면 확실히 조사해서 따님께 요청드리기로 하고 줄곧 매도자 따님과만 소통했다. 


집을 파는 사람도 엄마고 집을 사는 사람도 엄마였는데 모든 일 처리는 딸들이 맡고 있었다.




부동산을 통했다면 부동산에서 알아서 준비해줬을 익숙지 않은 서류들을 일반인 딸들이 작성하고 준비를 하려니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다. 매도자분 따님도 직장인이셔서 중간중간 나와 연락하고 서류 준비를 하는 것이 번거로우셨을 텐데 친정엄마에게 복비를 선물로 준다고 생각하자면서 서로 다독였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집 저 집에 소녀가장들이 많은 것 같다. 

월요일이던 계약 날. 나는 추석 연휴가 끝나서 경기도 집으로 돌아왔고 고향에 살고 있는 언니가 계약서를 쓰기 위해 엄마와 동행했다. 


매수할 집을 방문하니 매도자 아주머님과 월요일부터 급하게 반차를 쓰고 왔다는 두 따님이 함께 계셨다고 했다. 두 집 엄마들은 딸들을 참 잘 키웠다고 서로를 띄워주면서 딸들이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에 경쾌하게 도장을 찍으셨다. 


친정부모님의 이사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었다. 부동산 거래신고와 소유권 이전신고라는 서류상 절차와 단 한 번도 수리를 한 적이 없는 25년 된 아파트의 올 리모델링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부동산 투자 공부를 해온 터라 관공서와 아무래도 좀 더 친숙한 내가 하루 고향에 내려가서 서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더니 고향에 살고 있는 언니가 방법만 자세히 알려주면 자기가 해볼 테니 괜히 차비 쓰고 시간 쓰고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언니는 나와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며 구청에 들러 부동산 거래신고를 했고 등기소에 들러 소유권 이전신고를 마쳤다. 


남자 친구와 남편 아니면 아빠가 태워주는 차만 타고 다녀도 살아지는 작은 도시라 '환승' 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 없는 우리 언니가 도시 전역을 버스로 이동해가며, 이게 한국말인지 의심이 되는, 말 뜻도 모르겠고, 당최 왜 하는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정부수입인지'를 사고 '국민주택채권'을 매도해가며 셀프등기를 마쳤다. 출산 후 7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언니에게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다. 


심지어 내가 깜빡한 서류가 있어 첫날은 허탕을 치기도 했다. 총이틀에 걸쳐 전업주부인 언니는 공인중개사 업무와 법무사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했다. 이틀 동안 언니는 '일당백'을 거뜬히 소화한 거다. 

 


이제 언니는 엄마 집의 인테리어를 도맡아 하고 있다. 타일과 욕실 도기를 고르러 매장들을 방문했고 붙박이장 디자인을 선택하기 위해 카탈로그를 친정부모님과 함께 보다가 붙박이장을 똥색으로 하고 싶다는 아빠와 싸우기도 하며 인테리어 업자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에 한번 사주를 보러 갔더니 사주 선생님이 효도에는 2가지 타입이 있는데 하나는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입신양명을 하거나 큰돈을 벌어서 부모의 삶을 풍족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부모님을 크게 호강시켜 드리지는 못해도 가까이서 자주 들여다보며 부모님이 우울증 걸리지 않고 치매에 걸리지 않게 세세한 걸 챙겨주는 타입이라고 했다. 


나는 후자이고 싶어서 부모님 가까이로 정착했는데 정작 잘 뵈러 가지도 않고 멀리 살 때 보다 오히려 부모님께 더 툴툴대고 못하는 것 같다고 하니 사주 선생님 왈. 

됐고 너는 그냥 더 큰 곳에 가서 더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돈이나 주라고 하셨다. 부모님도 캐시를 더 좋아하실 거라고. 


"저는 지금 개뿔 돈도 못 버는데요? 도대체 언제 제가 돈을 버나요? 그런 날이 오기는 오나요?"


43세부터 란다. 4년 남았다. 

입신양명하는 딸도 있고 곁에서 세세하게 챙겨주는 딸도 있고 별..... 거는 없지만 신체 건강한 막내아들도 있고 

우리 엄마가 평생 고생했지만 말년운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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