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 에피소드
43세. 해외살이를 시작한 나이다. 나이 마흔 셋이면 나라를 세워도 세울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당신은 나라를 세웠나요?”
“아니요.”
‘시쳇말’이 교양있고 바람직한 표준어는 아니라지만, 시쳇말로 무식해서 용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누가 지어냈는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던 도전이 많았다. 칭찬받을 만한 도전 정신이라거나 대단한 의지는 아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가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사할 때 하던 대로 하면 되고, 아이들 학교보내는 일도 별 것 아니고, 살림이라고 뭐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곳곳에 암초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해외살이에 대한 몇 가지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 “너는 한 사람의 외교관이다.” “네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에서 ‘애국’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하다. 구체적인 애국관을 가지고 애국적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멀리서 들리는 모국의 소식에 민감하다. 우울한 소식에는 지나치게 염려한다. 모국에 살고있는 국민들보다 더 걱정한다. 국제경기에서 우승하고 금메달이라도 따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뻐한다. 이웃에게 마구 떠들며 자랑한다. ‘애국’이라기보다는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너는 한 사람의 외교관이다.”는 말은 무거운 짐이 된다. 이 짐을 내려놓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일이다. 모국을 얕잡아보는 사람과는 맞서서 싸워야 한다.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왜곡된 인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끈질긴 설명으로 바르게 이해시켜야 한다. 애국심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네가 바로 대한민국이다.”는 말은 일상에서 늘 실감하며 산다. 내가 어찌어찌하는 행동을 보고 이웃들은 나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나 한 사람을 상대해봤을 뿐인데 “한국 사람은”으로 인식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현지인들의 인식 뿐만 아니다. 거주자가 아닌 여행객들은 자신이 경험한 사람은 몇몇일 뿐인데 “ㅇㅇ나라 사람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ㅇㅇ나라에서는”이라는 말로 쉽게 정의해버린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盲人摸象맹인모상)와 같다. 누구는 기둥이라하고, 누구는 뱀이라고 하는 식이다.
나의 길을 밝혀준 한 사람,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독일 공중화장실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한 어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동전을 넣어야 문을 열 수 있는 문고리인데 20페니히Pfennig(Euro화 이전 DM) 동전으로 기억된다. 먼저 들어간 아이가 나오자 아이 엄마는 문을 닫은 후에 다시 동전을 넣고 다음 아이를 들여보냈다. 두번 째 아이가 나오자 다시 문을 닫고 동전을 넣은 후에 엄마가 들어갔다. 뒤에 줄을 서있던 나에게 이 장면은 독일생활의 길잡이가 되었고, 어쩌면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참 어리석은 어머니 아닌가. 문을 꼭 닫지 않으면 동전 하나로 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데 일일이 동전을 따로 넣다니. 동전 한 닢이라도 귀히 여기고 아껴쓰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장면이었다. 나라면 아마도 동전 한 닢 넣고 아이들까지 다 사용하도록 했을 것이다. 나는 알뜰한 주부니까.
아이 엄마는 왜 그랬을까? 동전 한 닢을 하찮게 여겨서? 규칙을 지키는 행동이 몸에 배어서? 어린 아이를 옳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
독일 고속도로 휴게소나 기차역 화장실 입구. 1유로 동전을 넣으면 왼쪽 사진같은 표가 나오고, 입구의 펜스가 열린다. 이 표는 같은 장소에 있는 카페테리아나 편의점에서 물건값 계산할 때 50센트 값어치가 있다. 결국 화장실 사용료는 50센트인 셈이다.
50센트 동전을 넣는 화장실 문이다.
백화점 안의 화장실 입구에는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진처럼 동전을 접시에 올려놓으면 된다. 화장실 사용 가격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 알아서 내면 된다. 주로 50센트를 놓는다. 1유로, 2유로짜리 동전밖에 없다면 거슬러도 된다. 만약 돈이 없다면 잔돈이 없다며 정중하게 미안함을 말하면 된다.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가고 나올 때 동전을 놓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혹자는 독일에서는 화장실에도 돈내고 들어간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꼭 필요할 때 사용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지아니한가. 어떤 때는 1유로, 2유로를 내더라도 제발 화장실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
독일에 거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전넣어야 문 열리는 화장실에서 한 엄마를 통하여 큰 교훈을 얻었다. 편법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뜰함' 앞에 편법이 용납될 수는 없다. 우리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해악을 끼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내게 교훈을 준 사람은 한 여인이다. 여러 독일사람들, 많은 독일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한 사람'의 대표성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한 독일인의 언행이 '독일 사람들'이 되고, 나의 평범한 언행이 '한국사람'의 언행으로 보편화되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외국 생활이다. 고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눈치볼 것없이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은 허울좋은 말이다. 누가 볼 새라 바짝 긴장하며 사는 것이다.
예전에 국내에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딜 가는 중이었다. 교통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렸다. 1980년대 초, 그땐 부끄러운 줄 모르고 편법을 행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경찰에게 면허증을 보여줄 때 지폐(5천원, 만원) 한 장을 함께 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남편은 그리하지 않았고, 경찰은 벌금 딱지를 떼었다. 쉽게 해결하고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느리게 벌금 통지서를 쓰는 경찰과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서있었다. 뒷 자동차에게 원성을 들으며.
어머니 앞에서, 아내 앞에서 어떻게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신 어머니, 평생을 의지하고 인생길을 함께 갈 아내,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대신 돈으로 때우는 그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화장실에서 동전넣은 문을 완전히 닫은 후 다음 아이를 위해 새로 동전을 넣고, 다시 그렇게 또 동전을 넣고 들어가는 한 엄마가 나의 길을 제대로 인도해줬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