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Sep 03. 2024

독일의 무인판매, 양심구매

독일생활 에피소드 

우리가 살던 곳은 인구 2만5천명 정도의 시골동네다. 중심부(Stadtmitte)는 도시다운 모습이지만 중심을 벗어나면 바로 널따란 밭이 펼쳐져있다. 언제 농사를 짓는지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철따라 제철 밭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봄철이면 노오란 유채꽃에 현기증이 나고, 붉은 색으로 온 들을 뒤덮은 양귀비꽃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건강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검은 흙 위에 하얗게 피어난 감자꽃을 보노라면 아주 부자가 된 느낌이다. 한여름엔 땡볕에 반항이라도 하듯 굳세게 버티고 서있는 옥수수가 밭에 숲을 이룬다. 옥수수밭이 아니라 옥수수숲이다. 8월의 추수하기 전 밀밭은 마치 한국의 가을철 논처럼 황금물결이 출렁인다. 그곳에서 뉴욕, 런던, 베를린, 비인, 이런 대도시가 부럽지 않은 시골 생활을 만끽했다. 나중에 런던으로 옮겨간 이후에 독일 시골의 삶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유채밭이 바로 집 밖이었는데 그건 정말 큰 유혹이었다. 슬쩍 몇 포기 뽑아다 김치도 담고, 나물도 무쳐 먹고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더구나 아무도 없는 길, 한 뭉텅이 뽑아내도 전혀 표시가 안 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식물, 이 어찌 유혹이 아니겠는가.

딸기철에는 밭에서 무인 판매를 한다. 자율 판매, 양심 판매라고 해야할까. 무게와 가격을 적은 팻말과 저울이 놓여있다. 포장용기나 봉지는 없다, 소비자가 그릇을 가져가서 직접 딸기를 따고 저울에 달아 돈 상자에 값을 넣고 가면 된다. 물론 넓은 밭에는  CCTV가 없다. 우리 가족도 몇 번 딸기를 따다 먹었는데 여기선 전혀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양심대로 한 치의 거짓이 없이 제 값을 치르고 딸기를 가져갔다.

우리는 전철(S-Bahn)을 타러 딸기밭 옆 길을 지나다닌다. 어느 날 딸기밭에 서있는 팻말을 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있다. Gott sieht alles.” 아마도 주인이 써놓았을 것이다. 다음 날, 그 팻말을 들여다보고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보고있다” 바로 아래에 “용서한다”고 써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 Gott vergibt alles.”

아, 그렇지,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제가 딸기는 양심껏 샀으니 저 유채나물 몇 포기 슬쩍해가도 되겠지요? 용서하시겠습니까?

딸기철이면 곳곳마다 구매자가 딸기를 직접 따가는 판매를 하고 있다. 딸기 뿐 아니라 각종 꽃도 직접 꺾어가고, 사과나 블루베리도 그렇게 밭에서 판매하는 곳이 많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때는 CCTV가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인데 주인도 없이 운영되는 곳이 많았다. 판매하는 요일과 시간을 공지하고 그 때만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감시하는 사람이나 장치가 없으니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다.

우리 문화에 '서리'라는 것이 있다. 물론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지금은 서리가 용납되고 용서받는 세상이 아니다. 엄연한 도둑질이다. 수십년 전 문화에서 우리는 '서리'를 '넉넉한 인심'이라며 일종의 놀이로 여겼었다. 어쩌면 그것은 '배고픔, 허기짐'에 대한 공감이 아니었을까? 먹어도 속이 든든하지 않던 시절, 언제나 배가 출출하고 입이 궁금하던 시절, 누구나 그 사정을 아는지라 서리를 도둑으로 몰지 않았던 것 같다. 주로 아이들 여럿이 몰려다니며 하는 장난끼 있는 놀이로 서리의 대상은 작은 먹을거리고,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밭주인은 알고도 묵인해주고, 들키면 오히려 서리한 과일을 몇 개 거저 주기도 했다. 독일 밭에도 우리의 '서리'와 같은 문화가 있었는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남의 물건을 주인 모르게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다. 지금 세상에 서리를 놀이라고 하면 큰일난다.


밭에서 꽃을 꺾고 카쎄Kasse라고 쓴 상자에 돈을 넣고 가면 된다. 종류별 가격이 적혀있으니 스스로 셈을 하면 된다. 가격표 아래에 "값을 지불한 꽃만 가져가세요."라고 쓰여있다.


남편의 비즈니스 미팅에 따라나선 길에 겪은 일이다. 북부의 브라운슈바익 Braunschweig에 있는 사업 파트너의 집을 방문했다. 남편들이 사업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내들은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안주인이 감자를 사러가는데 함께 갔다. 감자밭 한 켠에 있는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무인판매 창고였다. 모양없이 거칠게 매달린 선반에 감자를 한 무더기씩 분리해놓고 가격을 적은 종이를 옆에 두었다. 다른 벽면에는 분류한 감자대로 가격을 적은 메모판이 매달려있었다. 가격표 아래엔 돈상자와 저울이 있었다. 당연히 CCTV는 없었다.

거기서 내가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다.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만약에 가져가는 감자보다 싼 값을 두고가면 어떡하죠?” 크고 좋은 것을 가져가면서 싼값을 내면 어떡하냐는 질문이었다. 내심 농사꾼을 걱정하는 말이었는데 함께 간 독일 주부의 대답에 어퍼컷을 당했다.

“필요한 대로 가져가야죠.” 그녀는 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택한 대로 값을 치르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 외의 다른 생각은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러니 감자가 크고 좋든, 작고 못생겼든, 필요한 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답을 하는 것이다. 물건의 용도에 방점을 찍는 그녀와 물건의 가격에 방점을 찍는 나의 불협화음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하, 그렇다, 맞는 말이다. 알감자 조림을 하는데 탐스러운 감자를 고를 이유가 없지. 감자채볶음을 하려면 좀 비싸더라도 큰 것을 사야 채썰기가 편하지. 커리요리(카레라이스)를 하려면 못생겼어도 싼 것을 사도 될거야. 매쉬드포테이토를 할거면 역시 못난이 감자도 괜찮고.

주인이 모를 테니 좋은 걸 고르고 제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악한 마음이 내게 있는 건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왼쪽- "Ehrlichkeit(에리히카이트, 정직, 성실, 공정)"한 계산에 고맙다는 글을 벽에 붙여놨다. 현금은 'Kasse"라고 쓴 곳에 돈을 넣고, 크레딧카드는 비치된 기계를 이용하여 결제하면 된다.


"신뢰의 계산" 거스름까지 준비돼 있다. "믿습니다!" 종교의 대상인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다. 구매고객에게 보내는 신뢰의 마음이다.


왼쪽- 빨간색 돈통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반짝 들고갈가봐 걱정하는 사람은 나 뿐인 듯. 주인은 걱정도 안하나보다.

가운데- 농산물 뿐 아니라 소소한 생활용품을 집앞에 내놓고 파는 경우도 있다. "신뢰의 계산"이라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오른쪽-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당신의 생각대로 지불하세요." 모든 사람은 정직한 인격자이다.

왼쪽- 감자무더기보다 돈상자가 너무 작아서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가운데- 한 송이에 50센트라는 팻말 기둥에 매달린 돈통이 돈을 넣는 곳인지 씹다만 껌을 뱉는 곳인지...

오른쪽- 양파, 감자, 애호박, 사고싶은 대로 골라가고 겨우 애호박만한 돈통에 값을 지불하면 된다.

왼쪽- 누가 돈통을 떼어가려해도 나무로 만든 저 닭은 전혀 울지않을 것이다. '이거 가져가면 내가 소리지를 거야, 꼬고댁 꼬꼬!' 닭대신에 물고기를 놓아둬도 될 것이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니까, 눈 동그랗게 뜨고 지켜볼테니까.

오른쪽- CCTV로 감시할 경우엔 CCTV가 설치돼있음을 공지해야 한다. 공지없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다면 오히려 도둑이 주인을 인권침해로 고소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질지도.


감자 자동판매기이다. 농촌의 모습도 슬슬 변해가고 있다. 개성있는 소규모 판매대의 모습이 아직은 밭농장 곳곳에 있지만 머지않아 자동판매기에 밀려날 것같다. 인구감소와 노동력 부족으로 자동화가 시작되었던가? 지금 시점엔 자동화가 인간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문명의 편리함과 사람의 쓸모에 대해 생각이 머문다.


옆집 사과나무 몇 가지가 우리 정원으로 넘어와 있었다. 사과가 열리고, 익어가면서 몇 알 떨어지기도 한다. 떨어지면서 대부분 상처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그냥 버렸다. 어느 날, 옆집 여자가 내게 친절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 떨어진 사과는 우리가 가져도 된다고. 사과의 소유권을 내게 허락하는 말이다. 어휴, 큰 일 날 뻔했다. 허락없이 사과를 내 마음대로 주워 먹었다가는 법정에 설 뻔 하지 않았나. 우리 정원에 떨어진 남의 사과를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내 맘대로 버린 것이다. 먹었든 버렸든 그것은 내 사과가 아니고 옆집 사과였는데. 사리판단이 정확, 적확하지 않고 두루뭉실한 내 성격이 모나지 않아서 좋은 것 아니었나? 선을 분명히 긋고 살아야 했나보다.


독일에도 도둑이 있다. 강도도 있다. 고객을 온전히 믿고 있는 것 같지만 몰래하는 감시장치나 감시자도 있다. 미안한 얘기지만 게슈타포가 있던 독일 아닌가. 그러나 "신뢰의 계산"을 실행하는 판매자나 구매자의 마음이 선하고 순수함을 믿자. 의심은 상대자를 망치기보다는 나자신을 괴롭히는 지름길인 것이다. 나는 독일 시골 밭에 펼쳐놓은 자율구매 판매대를, 신뢰의 계산대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존경한다.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불평하는 사람, 웬만하면 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이전 01화 독일 화장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