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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03. 2024

철저한 쓰레기 분리배출

독일생활 에피소드 

지인이 얻어놓은 집으로 이사했다.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우리동네 하우스마이스터(Hausmeister). 건물 관리인이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온 할아버지로 영어를 조금 했다. 여러가지 안내, 아니, 교육을 장황하게 하는데 독일어로 말하는 가운데 나를 배려하느라 짧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독일어는 인사말 정도, 영어는 밥 먹고 잘 방법을 찾는 정도 밖에 모르는 나와 하우스마이스터의 대화는 그런대로 통했다. 내용이 거의 주거생활에 관한 이야기므로 살림을 오래해 온 나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독일 생활의 첫 번째 중요한 것은 쓰레기 분리 배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폐기물 재활용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철저히 지켜지지는 않았었다. 계몽기간에 자발적인 참여가 있을 뿐 제도적인 규제는 없었다. 아파트 반상회가 끝난 후 함께 모여 우유팩을 고르는 정도였었다. 

독일에서는 우리보다 좀 더 철저히 분리 배출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연립주택(Reihenhaus/ Reihenbau)이었는데 지붕과 벽과 문을 갖춘 쓰레기집이 따로 있었다. 그곳에 생분해되는 것(음식물 등 유기폐기물)과 소각할 것, 재활용할 것을 분류해서 버렸다. 재활용할 것들은 노란 봉투에 넣는 작은 포장용기 같은 것들이다. 

독일에서는 1985년부터 유기폐기물(Bioabfall) 분리수거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이사 온 우리에게 이런 것을 설명하는 일이 주택 관리인의 의무인 것 같았다. 어느 날, 만약에 음식물 찌꺼기를 담는 통에 일반 쓰레기가 보인다면 아마도 그 누명은 우리가 뒤집어 쓸 것이리라.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제를 1998년에 시행했다.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를 시작하던 1995년에는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함께 배출했었다. 올해 참 놀라운 뉴스를 보았는데 프랑스가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와 분리 배출하는 의무를 2024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뉴스였다. '순환 경제를 위한 폐기물 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2014년에 시행된 제도이다.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보다 선진국이다.


주택가 밖 도로 끝에는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이 따로 있다. 종이(일반 종이, 상자), 병(흰색, 갈색, 초록색), 금속을 버리는 커다란 콘테이너가 있다. 버리는 시간까지 정해져있는데 휴식시간(Ruhezeit)에는 버리면 안된다. 오전 7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7시까지만 버릴 수 있고, 일요일과 공휴일엔 버릴 수 없다. 버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우스마이스터는 휴식시간 설명을 강조했다. 낮 12시부터 2시 사이엔 잔디를 깎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말하는 루에자이트(Ruhezeit)이다. 아파트 생활을 하던 나는 층간 소음에 대해 상식적인 선에서 조심하는 정도였는데 특별히 조용히 해야하는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신기했다. 규정은 내게 불편할 때도 있지만 혜택이 될 때도 있다.


연장(공구 Werkzeug) 공동 사용

나에게 낯선 장소는 연장(공구 Werkzeug) 보관 창고이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가정마다 연장을 다 구비하지 않아도 됐다. 나중에 귀국하여 우리도 이런 곳을 만들자고 주민센터에도 말해보고 환경단체에도 말해봤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백 수천 가구가 입주한 공동주택 단지에 공구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둔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작업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면 가구를 조립하고 수선할 때 얼마나 편리할까. 베란다에서 뚝딱거리며 층간소음을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좋은 방법을 시행하지 않을까. 주민들은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 관리인 없이 자율적으로 잘 운용이 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생각해보니 돈으로 해결하기 쉬운 일이 많다. 작은 수리가 필요할 경우에 해당 일꾼을 부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을 부르는 데 우리는 나름 비싸다고 하지만 독일보다는 싸다. 

독일생활 초기에 아무것도 모른채 전화번호책을 보고 수리공을 불렀는데 나중에 계산서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가 출발한 장소로부터 시간당 비용을 다 포함한 계산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수리공을 찾아야했는데 무지한 나는 전화번호부에 크게 나와있는 곳에서 사람을 부른 것이다. 낯 선 나라에서의 삶이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는 것이다. 


보증금제도 판트Pfand

석회질이 많은 물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여과기를 사용하거나 생수를 사먹는다. 음료수가 담긴 플라스틱 병은 가져다 주면 값을 쳐준다. 판트(Phand) 제도이다. 구매할 때 병값이 보증금으로 포함되어있고 반환하면 값을 돌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리병을 돈주고 파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플라스틱 병에 값이 있다는 것은 생소했다. 

큰 수퍼마켓에는 자동 판트 기계가 설치돼있다. 일주일에 2-3회 기계를 수동으로 청소한다고 한다. 


올해 여름에 독일에서 물을 사먹는데 물병 뚜껑이 떨어지지 않고 병에 붙어있었다. 컵에 따를 때도 불편했고, 작은 물병을 직접 입에 대고 마실 때는 볼에 걸리적거렸다. 알고보니 올해부터는 모든 플라스틱 병뚜껑을 병에 고정시켜야 한단다. 병뚜껑이 분리되어 회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예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란다. 병뚜껑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독일은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그대로 판트(보증금 돌려받기)하기 때문에 뚜껑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같다.  이젠 모든 플라스틱 병에 뚜껑이 고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림하면서 어쩌다가 뚜껑을 쓰레기봉지에 넣고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페트병을 납짝 찌그러뜨리고 뚜껑을 닫아야 그 상태대로 있는데 뚜껑을 안닫으면 병이 되살아난다. 병뚜껑을 챙기는 이유다. 


뚜껑이 고정된 플라스틱 병(Tethered Caps).


2024년 7월 3일부터 병에 고정된 뚜껑은 EU 전역에서 의무화되었다. 독일에서는 그 이전부터 이미 고정된 뚜껑을 사용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2024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병에 담긴 코코아, 바닐라 우유, 케피어(Kefir 유산균음료)에도 판트Pfand 제도가 시행되어 많은 논란을 빚고있다. 유제품을 담았던 것은 위생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약속으로 정부는 시행을 강행하고 있다. 


2024년 여름, 독일을 떠난 이후로도 간간히 드나들 때 사용하던 숙소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물건 정리에 치어 '완전히 떠난다'는 멜랑꼴리한 감정은 뒤로 밀렸다. 값나가는 것이 없으니 누구에게 주기도 망설여지는 살림이다. 침대, 식탁, 의자, 찬장, 서랍장, 소파, 이런 가구들은 자선단체 카리타스Caritas에 기부하기로 했다. 세월은 오래되었지만 상주하지 않아 실제 사용은 얼마 하지않은 물건들이다. 모든 가구는 다 이케아에서 구매하여 우리가 직접 조립한 가구들이다. 조립할 때 나는 소음 때문에 아랫집 할머니가 쫓아올라와 주의를 주기도 했다. 

집을 비우기 며칠 전에 카리타스에서 직원이 나와 기부할 물건 품목들을 적어갔다. 그후 메일로 견적서를 받았는데 또 기절할 뻔했다. 고맙다는 메세지가 아니라 가구 이동하는 운반비용 견적서를 보내온 것이다. 물건을 내가는데 소용되는 시간, 필요한 트럭 사용료, 짐을 옮기는 일꾼들 시간당 임금, 꼼꼼한 리스트를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기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무려 2천 유로(약 300만원). 그럴 줄 몰랐다. 그냥 주면 되는 줄 알았다. 가져가는 사람이 고마워하며 가져갈 줄 알았다. 내가 조금 모자란 사람일까.

독일에는 갑자기 늘어난 난민 가정이 많다. 우리가 기부하는 가구들은 난민가정에 무상으로 나눠주는데 그들은 물건을 가져갈 힘이 없다. 차량이 없을 뿐 아니라 운반비도 없어서 그 비용까지 기부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이해해야지, 이해한다, 좋은 일이다, 마음을 달랬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비용 2000유로에 속이 쓰렸다. 

한 가지 더 놀라운 내용은 우리가 집을 비우고 남긴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1Kg에 0.7유로라는 것이다. 1Kg에 1천원이라는데 놀라서 팔 걷어부치고 직접 처분하기 시작했다. 승용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가득 싣고 리싸이클링 센터를 서너번 드나들었다.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돈을 내고 버리면 힘 하나도 안들고 만사해결. 어림잡아 100만원쯤은 들어야 할 것같은데 어찌 두 손놓고 있는단 말인가. 가져갈 가구들을 제외하고 남는 물건들이 많았다. 누구에게 줘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영어로 쓴 책들은 버스 정거장 벤치에 내놓았다. 금방내 누가 가져갔다. 쓸만한 파일박스와 바인더도 내놓았다. 바로 없어졌다. 인터넷 시대에 벽돌보다 더 두껍고 무거운 종이사전이 금새 없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 독일 사람들은 가져다 읽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랄까. 가져가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걸 쓰레기통에 넣을 수는 없는 마음이라.


화분에 기르던 식물이나 가지치기한 나무들을 Grüngut에 버린다. 

Sperrmüll에는 부피가 큰 물건을 버리는데 직원의 안내를 받아 비용부담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우산을 통째로 버릴 때는 비용(5유로, 약7천원)을 내고, 금속과 플라스틱과 섬유로 분리하여 버릴 때는 무료로 버린다. 의자도 목재와 섬유와 충전재를 분리하여 버리면 무료로 버릴 수 있다. 이런 일을 직접 해보면 물건을 살 때 버릴 일까지 따지게 된다. 


사용한 목재 왼쪽 A1,  가운데 A2, A3,  오른쪽 A4

낡은 목재를 버리는데 A1,2,3,4로 나누어 버린다. 


아크릴이나 플라스틱을 버리는 분류번호가 있고, 옆에는 각종 해당품목이 자세히 적혀있다.


금속, 비닐포장재, 옷, 신발, 핸드백, 이불커버 등등 분류하여 버린다. 


냉장고, 텔레비죤, 모니터, 작은 전자제품을 구별하여 버린다.


대형폐기물, 폐목재 등은 직원의 검수 후 배출하라는 안내표지판에 버리는 비용이 적혀있다. 

CD, DVD, 비데오테잎 케이스는 별도로 버린다. 우리는 여행용 트렁크를 버리는데 직원이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버리는 것이다.


유리병은 흰색 초록색 갈색, 색깔별로 버린다. 리사이클링 센터에도 있지만 동네 가까운 곳에도 병을 버릴 콘테이너가 있다. 헌옷과 종이, 그리고 병은 주로 동네에 지정된 곳에 버리면 된다. 


한적한 길에도 주택가에도 공원에도 어디에나 있는 개똥 버리는 통. 빨간 봉지(무상으로)를 꺼내어 개똥을 담아 버리면 된다. 


귀국하여 그동안 게으름으로 미뤄오던 집 정리를 했다. 

우리나라도 폐기물 버리기가 아주 편리하게 잘 되어있다. 주민센터에 직접 가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 종목별로 기록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페기물배출증을 프린트할 수 있다. 버리는 물건에 부착하여 내놓으면 된다. 소형전자제품 버리는 콘테이너가 있는 공동주택에서는 그곳에 넣으면 된다.

이번에 집안 정리하면서 몇가지 물건들을 처분하였다. 카톡으로 접수증이 왔고, 약속한 날 지정된 장소에 내놓았다. 어린이 전동차와 컴퓨터 프린터가 수거해가기 전에 없어졌다. 


독일은 1974년 7월22일 유럽에서 최초로 독일연방환경청(UBA, Umweltbundesamt)을 설립했다. 통일이 된 1990년에는 동독환경보호연구소가 UBA에 포함되어 처음으로 독일 전체를 대상으로 환경조사를 한다. 유럽연합(EU)이 탄생된 1993에는 'EU 환경감사'가 유럽 전역에 도입된다. 2000년에는 재생 에너지 우선순위에 관한 법률(EEG)에 따라 풍력, 태양광 등의 전기에 대한 보조금이 법으로 지원되었고, 이후 여러나라에서 이를 모방한다. 독일은 누가 뭐래도 환경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선도해왔다. 익숙한 것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따르기도 하지만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저항하기도 한다. 독일 정부는 뚝심있게 환경정책을 밀고 나간다. 

분리배출, 분리수거는 여러 환경운동중에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지구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국민들이 아무리 분리배출을 잘해도 행정부에서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특히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대두된 지금 플라스틱 재활용은 중요하다. 

독일 포장시장연구협회(GVM, Gesellschaft für Verpackungsmarktforschung)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재활용 가능 페트병으로 분류된 폐기물 중에서 판트로 수거된 페트병의 재활용률은 97.4%라고 한다. 반면 같은 해 조사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보고서는 한국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이 EU 기준으로 집계했을 때 22.7%에 그친다고 보고했다. 배출과 수거는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 물론 수거와 재활용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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