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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22. 2024

버리는 식자재를 주워오다.

독일 생활 에피소드

이것은 흑역사다, 생활의 지혜다, 알뜰주부의 모범이다, 지지리궁상이다, 나라망신이다...

모르겠다. 사실을 가감없이 말하고 쓸 뿐, 해석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낯선 나라에서 살기 위해 먹고살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그 나라 언어를 익혀야 했다. 물론 머리로 익히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식자재를 골라 살 수는 있다. 마트(독Markt)의 광고전단지를 공부하듯 열심히 들여다봤다.  문장은 못만들어도 단어는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며칠 살 것이 아니라 몇 년을 살아야하는데 알 건 알아야하지 않겠나. 독일어 단어들을 익히면서 '나는 참 영어를 많이 알고있네'라고 새삼 느꼈다. 영어로 알고있던 많은 것들을 뒤로 제쳐두고 독일어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독일에 살면서 영어 콤플렉스가 물러나고 독일어 콤플렉스에 주눅들어 기를 못폈다. 훗날 나의 언어는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국어 영어 독일어 단어들의 합성 문장이 돼버렸다. 아, 잔인한 외국어!


대부분의 독일 작은 도시에는 정해진 요일마다 우리나라 5일장같은 장이 선다. 살 것들을 메모해 가지만 돌아오는 장바구니엔 메모에 없던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예상치도 않았던 식자재들을 집어들 때가 많았다. 빛나는 색깔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집어드는 것이다. 빨강 초록 노랑 원색의 채소와 과일들의 유혹이 어찌나 큰 지!

독일 재래시장에서 처음 접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낙과와 달걀이었다. 상처난 사과를 쌓아놓고 파는데 잘들 사간다. 그것으로 잼을 만든다고 한다. 달걀을 바구니에 담아놓고 파는데 사람들이 빈 달걀판이나 그릇을 가져와서 담아간다.  

어느 순간 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앗, 두부다!' 하마터면 입밖으로 외칠 뻔헸다. 두부, 두부라니! 두부를 진열하고 팔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 냉큼 집어들 뻔한 순간 "터키 치즈 Türkischer feta käse"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실망감이란. 먹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살망감이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터키 페타 치즈. 영락없는 두부 모양이다.


장이 선다고 현대식 마트에 담쌓고 사는 것은 아니다. 재래시장에서 살 것과 커다란 수퍼마켓에서 살 것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몇 달 살다보면 이것은 A에서, 저것은 B에서, 그것은 C에서 사는 것이 물건이 좋다거나 경제적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알게된다. 이곳저곳에서 즐거운 에피소드를 만들며 지나왔다.


무청

마트에서 무를 사는데 사람들이 무청을 잘라놓고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아예 무청을 잘라서 진열하기도 한다. 어느 날 용감하게 남들이 잘라버린 무청을 한웅큼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이거 가져가도 돼요?" 나는 한국의 자랑스럽고 용감한 아줌마다. "JA."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간단한 허락의 답이 돌아왔다. 남들이 잘라버린 무청을 공짜로 주워왔다. 얼마큼 집어갈까, 사람들이 흉보지 않을까, 너무 많이 가져가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무청을 데쳐 넣은 된장찌개를 먹는 저녁식탁에서 아이들에게 마치 무용담이라도 들려주듯 의기양양하게 마트에서 공짜로 주워온 이야기를 떠들었다. 만약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갔었다면 아들은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묻지 않았다. 공짜로 가져왔다는 말에 별 반응을 안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창피해 했을 것같다.


독일 사람들은 무청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는가 보다. 가끔 샐러드에 쫑쫑 썰어 얹기도 하지만 마트에서 보면 대부분 무청을 떼어내고 가져간다. 비닐하우스 채소가 있기 이전에 무청 시래기는 우리의 중요한 반찬거리였다. 겨울에 배추, 무, 콩나물 말고는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없었던 시절, 묵나물로 겨울을 나던 시절에 무청시래기의 역할은 대단했다. 물론 배추 우거지도.

집안 남새밭에서 기른 제철 채소를 먹고 자란, 김장 후 빨랫줄에 치렁치렁 널려있던 무청이 눈에 선한 한국 아줌마가 마트에서 버려지는 무청을 어찌 그냥 지나친단 말인가. 마트에서 내 모습을 본 독일인들이 '한국사람들은 참 가난하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그렇다면 내가 나라 망신을 시킨 거네. 어쩌나...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는 무를 이렇게 먹는다. 단순한 소금절임이다.  


어려서 겨울에 생무를 잘라먹었었다. 값비싼 배를 마음껏 먹지 못하던 시절에 겨울 무는 배보다 더 시원하고 달았다. 어른들이 무로 열 두 가지 반찬을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었는데 사실이 그렇다. 무국, 무생채, 무조림, 무말랭이, 무나물, 깍두기, 나박김치, 무청시래기, 무시루떡,  무밥, 무전부침, 무들깨국, 무장아찌, 단무지,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무정과. 이미 열 두 가지가 넘는데 현대의 무쌈말이, 무피클이 또 있다. 지금도 무를 썰다가 몇 조각 집어 먹곤 한다. 어려서 생무를 먹던 버릇이다. 그때만큼 맛은 없지만 무심코 집어 먹는다.


연어 머리

가끔 뮌헨의 빅투알리엔시장(Viktualienmarkt) 나들이를 했다. 동서양의 온갖 식재료들이 다 있는 곳이다. 동네 마트에서 보기 드문 재료들이 즐비하게 진열돼있다. 주로 그곳에서 생선을 샀다. 참치, 연어, 오징어, 새우, 이런 것들을 자주 사먹지는 못하는데 아이들은 엄마가 빅투알리엔막트에 간다고 하면 그날 메뉴에 큰 기대를 하곤 했다.

어느 날, 생선가게에서 연어 머리를 얻어왔다. 이건 마트에서 무청을 주워온 것처럼 가져온 것이 아니다. 판매원이 얼음까지 넣어 잘 포장해서 무료로 준 것을 받아온 것이다. 주워온 게 아닌 얻어온 것. 난 왜 그렇게 염치없고 뻔뻔한 여자였지? 창피한 것도 모르고 공짜를 밝히는 나였던가.  아니, 무청을 가져온 것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앞 사람이 연어를 통째로 사면서 머리를 잘라달라더니 몸통만 가져갔다. 바로 내 차례여서 다행히(?) 연어 머리는 아직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들어가면 아무리 아까워도 쓰레기통에서 꺼내달라고는 못하지. 급하게 말했다. 연어 머리를 내가 사가겠다고, 나에게 팔라고. 참치와 새우를 사고 값을 치르는데 연어머리 값은 받지 않겠단다. 그냥 가져가라고. 두 말 않고 '고맙다' 한 마디를 하고 신나서 돌아왔다.

연어가 제법 큰 덩치라 볼살도 통통하여 발라먹을 게 많았다. 소고기보다 더 기름진 육수. 공짜라 더 맛있었던가...

앞 사람은 왜 연어 머리를 버렸을까? 어두육미魚頭肉尾를 모르는 사람이었겠지. 독일에서는 생선 머리를 무조건 안 먹고 버리나?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생선머리를 먹는 사람과 안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먹기도 할테지만 주로 애완동물을 먹이는 것 같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연어머리 판매 온라인 상점을 발견했다.

"Lachsköpfe aus unserer täglich frischen Lachs Produktion. Sie sind begehrt in der Gastronomie, oder auch bei Tierbesitzern als Frischfutter. 매일 생산되는 신선한 연어에서 나오는 연어 머리. 케이터링 산업이나 애완동물 소유자가 신선한 식품으로 선호합니다."

연어머리를 버리고 간 앞 사람은 자신이 먹지도 않고, 애완동물을 키우지도 않는 사람이었나보다. 그럼 나는?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지만 연어머리를 먹는 사람이다. 얼음포장을 해준 생선가게 판매원은 내가 연어머리를 왜 가져간다고 생각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개와 고양이나 먹이는 연어머리를 먹으려고 가져가는 가엾은 아시아인? 애완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


'도기 백doggy bag'이라는 단어가 있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것을 뜻한다. 'doggy'라고 해서 개 먹이로만 쓰이는 말은 아닌데 어쩌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은 음식을 개에게 준다고 하면서 싸달라는 말로 통했었다. 체면치례를 중요하게 여기고, 개에게 사료보다는 남은 음식을 먹여 키우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환경을 생각해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조각으로 닦아먹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빅투알리엔시장(Viktualienmarkt)은 식자재 시장이다. 빅투알리엔Viktualien이 독일어로 식료품을 뜻한다.)


할로윈 호박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왜 할로윈데이 행사가 유행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독일로 가던 때에는 그런 행사가 없었다. 잡지에서 얼굴 모양을 우스꽝스럽게 오려낸 호박을 봤을 뿐 실제로 그런 호박을 본 적이 없었다. 독일에 가서야 진짜 할로윈 호박을 보게됐다.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는데 바이오(독BIO 비오)통이 따로 있었다. 생분해되는 쓰레기(비오뮐 Biomüll)를 버리는 통이다. 어느 날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깜짝 놀랐다. 커다랗고 잘생긴 주황색 호박 한 덩이가 쓰레기통을 꽉 메우고 있지 않은가. 어찌나 큰지 쓰레기통 넓이와 같았다. 가지고 간 음식물 찌꺼기를 그 위에 선뜻 쏟아붓지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누가 멀쩡한 호박을 버렸을까, 이걸 가져가면 호박죽을 쑤어 먹을 수 있을텐데, 호박고지를 만들어서 떡도 해먹을 수 있는데... 쓰레기통에서 꺼내갈 용기도 없지만 둥글고 잘생긴 호박위에 쓰레기를 버리자니 망설여졌다. 결국 쓰레기통의 것은 모두다 쓰레기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음식찌꺼기를 쏟아부었다. 무청을 주워오고, 연어머리를 얻어오는 나였지만 차마 쓰레기통 속의 호박은 꺼내오지 못했다. 참 아까운 호박이었다.


독일 사람들도 늙은 호박(Kürbis)으로 요리를 한다. 호박 속을 파내고 고기나 야채로 속을 가득 채워 굽거나 쪄먹는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지만 재미난 일도 많다.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 어색해하면서 서서히 젖어드는 생활이다. 익숙했던 삶에서 살짝 벗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당황하고 황당했던 많은 일들이 기억 창고에서 다시 꺼내질 때는 역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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