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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너에게 (4)

내가 이렇게 웃고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웃고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근 6개월 만에 우연히 만난 J의 엄마가 울면서 내게 말했다.








어제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창밖으로 지나는 엄마들의 무리에서 웃고 있는 J 엄마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J는 지금 한창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나는 J를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작고 귀여워서 요정 같다고 생각했다.


작고 요정 같은 J는 중학교 입학 이후에 무섭게 변해갔다.

과장된 몸짓과 웃음, 티 나는 욕설, 그리고.......


엄마는 처음 겪는 이 난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대개의 엄마가 그렇듯 처음엔 혼내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심하게 통제했다.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J를 데리고(끌고) 왔다.

그냥 두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거리를 쏘다닐게 뻔했다.

J 엄마는 처음엔 열렬한 전의를 불태우며 사춘기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엄마가 누르면 누를수록 통제하면 통제할수록 J는 더 세게 튀어 오르고 더 세게 뛰쳐나갔다.

전쟁은 전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J 엄마는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답을 주기는커녕 시간이 지나면서는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J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모두 엄마 잘못이라며 그녀에게 손가락을 겨누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단지 아이를 사랑했고 열심히 온 힘을 다해 키운 죄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들도 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나만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세상은 자기 아이와 자기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동정심 없는 이 세상, 정나미가 떨어져 그동안 J 때문에 알게 됐던 모든 엄마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같은 유치원을 보내고 학원을 알아보고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차를 마시던 사이였다.


Y엄마가 더 지독하게 아이를 볶았던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J 엄마는 J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써버렸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오은영 박사라도 나타나서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는 이 일을 해결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맞다. 애당초 J 엄마에게는 그 해결의 카드가 없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녀 자신이 이미 성인 J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J 엄마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나는 J 엄마를 보자마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J엄마는 카페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게로 걸어왔다.

내 심장이 요동쳤다. 왜 심장이 요동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난리를 겪고 있는 J 엄마에게 아무런 해줄 말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만이라 말없이 서로 안았다.

서로 안았다기보다는 내가 J 엄마를 감싸 끌어 안았다.


J엄마는 J처럼 체구가 작았다. 그 작은 체구가 소멸될 것처럼 더 작아졌다.

그동안의 맘고생과 몸고생이 그 작은 체구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J엄마의 그 작은 몸을 놓을 수가 없어서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우린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도 울고 J 엄마도 울었다.


J 엄마는 방금 웃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 어색했는지

울면서 말했다.

"이렇게 웃고 다녀도 되는 건 지 모르겠어요"


나는 소리 내어 대답하지는 못했다.

"웃어야지요. 울면서 죄인처럼 이마에 주홍글씨라도 달고 다녀야 하나요?"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이 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J를 생각한다.

작고 귀엽고 요정 같은 J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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