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날.
은교 씨!
이윽고 가을입니다.
무려 작년의 여름
해가 들지 못하는 작은 골방은
궁상맞은 냄새가 속속들이 퍼졌지만
그 냄새엔 젊음이 묻어
나는 그 향내를 젊음의 체취로
착각할지도 모릅니다.
동체 (胴體)의 눅눅한 단향은,
손톱 밑에 칠한 에나멜은,
과연 영악하여 엉겁결에 수시로 욕심이 났고
알코올에 앰버그리스 향을 풀어
그것을 나의 성질이라 속이며
못난 성질을 꽁꽁 파묻었지만
기어코 여름이 끝났습니다!
비가 내린 덕에 기온은 쌀쌀했고
겨울이 한 발짝 가까워졌고.
절기의 언턱을 버티면 끈덕진 추위가 오는데도
뜨거운 태양을 견디지 못한 이는
그만 생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장 도망치고 픈 나의 일상은
시체의 동경 (憧憬) 이자 유년의 공상 (空想)입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밤도 청춘을 채점하였고
그 기준은 항상 타인이었음에,
그간의 아픔과 그 잡념이
어디론가 날 데려다줄 수 있으리라 믿었음에,
나는 문득 엉망입니다.
고로 불현듯 당신이 필요합니다.
신발을 구겨신은 채 모자를 푹 눌러쓰며
밖을 쭈욱 서성이다 인근 정자에 몸을 기대며
하필 가을의 새벽이라며
구태여 지금 글이 쓰고 싶다며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뚜루루 하찮은 수신음 따위를 들으며
나의 머릿속에 내심을 적어 둡니다.
꿈결 속 지독한 첫사랑이었나. 편린 (片鱗) 마저 적잖이 교차하고 싶다. 나는 당신을 중심으로 상극의 단어를 나열하고 인과관계를 기록한다. 초저녁의 섹스. 호프집의 생맥주. 케이크 도너츠. 라디오 헤드. 청춘의 소설집. 하찮고 일관성 없는 단어들. 결국 그런 것들이 남는다.
이 가을을 떠나는 순간 끝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잔뜩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