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날.
오후 2시의 압구정역. 나는 그 애를 기다렸다. 거리가 막혀 그 애는 조금 늦는다고 하였다. 나는 역내 카페에 들어가 콜드블루를 주문하고 앉았다. 서울의 주말은 인파가 가득하다. 빈자리를 찾기에 겨우 바득 하여 출입문 앞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가는 손님이 많아 가게는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지하층 특유의 냉기와 꿉꿉한 냄새가 들어왔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겨드랑이에 두 손을 찔렀다. 겨울은 춥고, 지하는 냄새가 난다. 그것은 계절이 지닌 성질 (性質)이다.
서울에 깨나 일찍 도착하여 잠시 교보문고를 들렀다. 재작년 좋아했던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이 눈에 들어와 곧 책을 집어 읽었다. 이전에 닳도록 읽었는데 2년 만에 모든 구절이 낯설게 느껴졌다. 다자이 오사무. 헤르만 헤세. 친숙한 이름과 서적이 반가워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당장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신간 코너에는 카뮈의 결혼, 여름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카뮈가 인기 작가가 되기 이전에 쓴 글이고, 카뮈가 기재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나는 카뮈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 책을 읽기로 하였다.
카뮈의 책을 한 페이지도 채 읽기 전에 커피를 금시에 비웠다. 잠이 적당히 달아났다. 어젯밤 J와 전화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J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게임을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다. 관심사가 포개져 질문이 많아졌다. 좋아하는 것을 묻고, 싫어하는 것을 듣고, 싫어했던 것을 알아갔다. J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J는 아팠던 과거를 서술했다. 나는 요거트를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러다 문득 섣불리 공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J가 가여웠다. 하지만 나는 빈말에 재주가 없다. 그래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J는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우리가 나누었던 첫 대화였다.
엊저녁에는 은교에게도 연락이 왔다. 은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신이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 남자애를 조오올라 많이 좋아한다고 했나. 세상에 그런 강조법은 난생처음 본다며 나는 은교를 놀렸다. 가을밤 은교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에 안식을 둔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것은 어딘가 불편해. “ 은교가 말했다. 은교는 그런 이야기에 늘 관심이 많았고, 또 솔직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은 안 하고 싶어. 너는?" 은교의 질문에 나는, 아직 너무 머나먼 이야기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사뭇 카뮈의 구절이 마음에서 삐걱댔다. 충족된 사랑에서 비롯된 내면의 침묵을 음미한다는 문장이, 그곳에서 인간은 충족된다는 문장이. 부조리와 사랑. 나는 짧은 동안에 그 간극을 계산했고 그 둘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 한 명을 책임 질 한평생의 약속이라니. 좀 유치하잖아. “ 그 대상은 마땅치 않으나 나는 사랑과 관계에 원칙을 부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며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에 의미를 담는 것도 왠지 웃긴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관계는 상극을 오가며 유지되는 것 같았다. 온정을 준 만큼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준 만큼 온정을 주거나. 그 근사치에 머무른 이들이 서로를 알아볼 때, 그것을 충족이라고 표하고 싶었다. 주관이 곧 객관이 되는 그 순간이.
나 곧 결혼해. 사촌 누나는 그 무렵 혼인 소식을 알렸다. 나는 누나의 애인을 모른다. SNS로 같이 찍은 사진을 잠깐 봤거나 이모한테 샤인머스켓을 들고 찾아뵀다는 정도. 그리고 그 샤인머스켓을 야금야금 먹으며 결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겨울이 춥고, 지하는 냄새가 나듯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성질인 걸까 하고. 나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씨가 없는 포도가 존재하듯 기존의 무언가에 저항하며 나타나는 외로움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J를 아프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자 카뮈가 기재한 부조리였다.
도착했어. 어디야? 그 애에게 문자가 왔다. 긴장한 탓이었는지 그새에 얼음을 나는 와그작와그작 씹고 있었다. 컵에 남은 각얼음을 입에 꽉 차게 넣자 묘하게 기분이 야릇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카페를 나섰다. 얼음이 서서히 녹자 날이 시리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둔하다. 익숙함과 친숙함을 구분 짓지 못하고 때로는 외로움과 슬픔을 혼동하여 혼용한다. 그것은 글을 쓰는 데에 자주 장애가 된다. 다만 삶에는 얼마쯤씩 변수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사랑일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이윽고 저 멀리 그 애가 다가왔다. 나의 생각은 확신이 되고자 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 애는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 애는 모임이 있었고 나는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삼십 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쉬웠다. 우리는 조금 걷기로 했다. 터벅터벅. 그 애는 귀여운 습관이 있다. 횡단보도의 패턴에 맞춰 총총 걷는다던지. 손을 마주 잡는 것보다도 새끼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게 좋다며 손가락을 쥐고 놓지 않는다던지. 그리고 나는 그 애가 좋다. 그래서 그런 행동마저 좋다.
걸음마다 그 애가 자꾸만 궁금하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한껏 묻고 싶었다. 지난밤, 그 애와 나란히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밤, 나는 그 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품에 꼭 안긴 그 애는 푹신했고 지속적으로 야릇한 샴푸향이 났다. 나는 그 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 애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주관이 자꾸만 객관이 되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시간이 다 되었다며 가봐야 한다고 그 애가 말했다. 그리고 팔을 벌려 안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애를 아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 살피다가 두 번의 키스를 했다. 그 애는 당황하여 눈이 동그래졌다. 그 모습이 살며시 귀여워 나는 웃음이 났다. 나는 마침내 충족되고야 말았다.
그 애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누워서 잠이나 퍼질러 자고 싶었다. 무얼 먹기도, 글을 쓰기도, 잠에 들 여력조차 없었다. 그래도 아직 저녁 약속이 있어 잠을 참았다. 중학교 친구 한 명이 이번에 직장을 얻었다. 치킨을 사준다고 하였다. 뼈말고 순살로, 병맥 말고 생맥으로. 치킨을 사준다니. 밤을 새워서라도 가고야 말겠다. 스물세 살, 만으로 스물두 살. 우리는 알고 지낸 지 10년이 됐다. 시간은 알아서 잘 흘렀고 별다른 노력 없이 우리는 10년 지기가 되어 있다. 아직은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이야기가 잘 굴러갔다. 한 친구는 직장이 빠듯했고 한 친구는 시험이 분주했다. 주말인데도 가게는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치킨은 포크질 몇 번에 금방 바닥났고 우리는 노가리와 황도를 깔짝깔짝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삶이 그걸로 족하다고 느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부자가 목표였으면 좋겠고, 복학생 친구는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 사촌 누나가 택한 사람이 쏙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은교가 그로 하여금 충족되었으면 좋겠다. J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뮈와 커피. 치킨과 콜라. 그 애의 온기. J와의 이야기. 최대한 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쌓고 싶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삶과 대조하며 이야기를 끊임없이 쌓아가는 것. 그것이 사람을 이해하는 수단이자 내 세상을 확장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로 서로를 데웠으면 좋겠다. 차가운 겨울조차 가슴에 서리가 앉지 않게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