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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3. 2023

Good bye, Gilgit.

현실세계로 복귀하는 날

 여행 마지막 날.

 며칠 더 있고 싶은데 아쉽네...ㅠㅠ


 밤 새 콘센트에 꽂아 둔 보조배터리가 충전이 안 되었다. 으응??? 무슨 일? 어제 비상발전기 가동되는 거 보고 잤는데? 비상발전기는 잠들기 직전 잠시만 가동했나 보다. 어째 밤에 조용하더라 했어... 날이 밝아져서 자연조명으로 실내가 훤해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실내에 조명도 하나도 안 들어온다. 어젯밤 이후로 정전 복구가 안 되었구나.


 화장실에 가서 온수를 틀어봤는데 아침에 온수를 공급해 준다는 약속과는 다르게 또 안 나온다. 전기보일러로 온수를 가동하는 모양이다. 정전이라 그런 거니 뭐, 어쩔 수 없지. 안 씻어. 눈곱만 떼고 머리만 빗고 갈 거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 집에 가는 것 말고 정해진 일정도 없다.



 공기가 맑으면, 모든 세상이 깨끗해 보인다. 마음도 맑아진다. 어디를 찍어도 사진도 예쁘다.

 훈자만큼은 아니지만, 길깃 시내도 무척 깨끗한 공기를 자랑한다.

 그래, 공기가 이렇게 맑으면 정전이 좀 되어도 인터넷이 좀 안 되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



 호텔 이름이 왜 "Park Hotel"인지 보여주는 View. 어제 "주차 빌딩(Parking Building)"이라고 놀린 거 취소. ㄷ자 건물 가운데 예쁜 정원을 가진 호텔 맞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저기서 느긋하게 짜이와 난을 시켜 먹고 힐링하다 왔었어도 좋을법한 깨끗한 경관.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라 아침이슬을 피하기 위한 벤치덮개가 제거되어 있진 않았다.



 호텔 조식당 방문. 우리 여행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영업을 안 하나? 했는데 우리가 들어가는 걸 보고 종업원이 따라 들어온다.



 외부 식당보단 비싸지만, 조식은 싸다.

 녹차 80루피(400원), 오믈렛 200루피(1,000원), 토스트 2장 60루피(300원). 숙박료에 조식값은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3성 호텔급의 깨끗한 식당치곤 매우 매우 저렴한 편이니 만족. 대신, 어딜 가도 커피는 비싸다. 280루피(1,400원)나 한다. 서민들은 짜이를 마시지 커피를 거의 안 마시는 이유이다.



 뷔페식은 아니지만 서빙까지 다 해주는 가성비 넘치는 조식을 간단히 먹고 이제 체크아웃.



 호텔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간이역 같은 길깃 공항.

 길깃 공항은 해발 1,500여 m에 위치한 고산 공항이다. 주변 풍광을 보시라. 주변에 높은 산들이 한둘이 아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절대 만만한 공항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기상 상태에 따라 비행기 결항이 매우 잦은데, 운행 기종까지 매우 노후된 기종이라 기체결함 결항도 심심치 않다.


 어쨌든, 오늘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맑고 깨끗하고 화창하고 바람 없는 날씨. 이 정도면 99% 확률로 집에 갈 수 있겠다. ^_^


 친절한 우리 가이드님과는 여기서 작별인사. 사실, 오늘 일정은 눈 떠서 공항가는게 전부니까 가이드님은 오늘 우리 일행을 가이드 할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결항을 대비해서 이후 일정을 대비하느라 나와주신거다. 계약된 서비스 비용에 모두 포함된 일이긴 하지만 끝까지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고맙다. 진심이 담긴 감사인사와 소정의 팁을 드리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언젠가 다시 또 만나뵐 수 있기를.



 길깃 관광은 처음부터 염두에 아예 안 두고 온 일정이라 관광지도에 안내된 뷰 포인트에서 3개 산맥 합류지점(카라코람 하이웨이 오는길에 봤었다.)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 군데도 가보질 못했다. 스위스 부럽지 않은 자연경관이 뷰 포인트인 건 알겠는데, 영국인 묘지(British Cemetery)가 왜 관광지도에 제1순위로 소개되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일본인 공동묘지가 공항에서 나눠준 관광지도에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느낌?


 익히 알다시피 파키스탄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수탈을 당해온 역사가 있다. 1947년, 자치국가로 독립하면서 식민지배를 청산하였지만 독립과 동시에 영연방에 가입하였고 이후 탈퇴와 재가입을 밥 먹듯 하다가 2008년 이후 연방자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이 때문에 작년 영국 여왕 서거 시에도 국가적으로 공식적으로 일제히 조기를 게양토록 하였다.)


※ 영국 여왕 서거 시 작가가 작성했던 단상 참고

https://brunch.co.kr/@ragony/155


 식민 수탈의 아픔이 있다면 반영감정이 극에 달해있어야 정상일 텐데, 이 나라 국민들 보면 반영감정보다는 영국을 동경하는 감정이 더 강해 보인다. 국가 상용어도 영어이고, 다수의 엘리트 식자층이 해외 취업을 고려할 때 1순위로 고려하는 대상국가가 영국이다.(UAE나 사우디처럼 부자 이슬람국가에도 많이 나간다.) 반세기 식민지배를 당했음에도 제국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고유 언어와 고유 문화를 완벽히 복구해서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해 보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식민살이 경험이 있던 나라는 당시 지배제국의 언어를 버리지 못하고 현재도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된 이유도, 스페인어를 여전히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에 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도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오랜 기간 당했지만 한국인 중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얘기하면 되려 그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소도시 지방공항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깃 공항. 차이점이 있다면 빡센 보안검색이다.


 일단, 공항은 항공권이 없는 사람은 아예 입장자체가 안 된다. 배웅하는 사람은 언제나 입구컷. 공항 건물 입구에서 X-ray 수하물 검색을 통과하고 금속탐지기 통과한 후에 실내 들어와서 좌석 발권을 한다. 수하물을 맡기고 발권을 받으면 기내 수하물에 대해 다시 X-ray 검사를 하고 재차 몸수색을 당한 후 비행기 탑승 대기실에 입장이 가능하다.



 넓진 않지만 깔끔한 대합실.



 남녀칠세부동석 사상이 한국보다 훨씬 심한 국가 문화 고려한 여성전용 대기실(Ladies Lounge).



 공공시설물에 빠지지 않는 기도실우두실(기도 전 손발을 씻는 곳).



 작지만 간이매점도 있다.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멍때리기를 하고 있으니 부아아아앙~ 하는 엔진소리가 들린다. 돌아갈 비행기 왔구나!


 비행기 기종은 ATR-42, 48인승 항공기이다. 유럽의 에어버스 계열사 중 하나인 ATR사가 만든 쌍발 프로펠러 항공기이며,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인 CN-235랑 외형이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나무위키 : ATR-42 기종에 대한 아주 자세한 소개]

https://namu.wiki/w/ATR%2042



 작은 항공기라 이동식 계단차량 같은 거 필요 없다. 문 열면 그게 계단.



 자, 이제, 탑승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포토제닉. 내가 찍었지만 참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잘 있어요, 길깃. 언젠가 또 보려나? 인샬라.



 비행기 실내 사진. 2+2 좌석구조. 조금 큰 버스를 탄 느낌과 비슷하다.


 비행기가 몇 년식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여기저기 무척 낡았다. 공기조화장치 송풍구엔 때가 꼬질꼬질하고 식판 트레이에는 잔 실금이 촥촥 가 있는 게 세월의 무게와 흔적이 느껴진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이 파손될 정도의 큰 충격을 받지 않아도 작은 충격에도 살살 금이 가는 현상을 전문용어로 피로파괴(Fatigue)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 때문에 비행기의 기골은 정해진 운영수명시간에 도달하면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한다. 식판 트레이에 금 간 걸 보고 이 비행기 기골도 비슷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이런 결함을 사전에 점검하고 정비하기 위해 비행기는 고장이 나든 안 나든 정해진 운영시간을 달성하면 의무적으로 창정비를 받아 결함유무를 점검하는 절차를 거친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믿고 타시란 말씀.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사실 새 비행기가 좋다.

 그런데, 너무 새 비행기는 설계결함을 가지고 나올 수도 있으니 검증된 모델의 베테랑 기장이 모는 비행기를 골라 타는 게 안전할 것이다. 그렇다고 승객이 기장을 골라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결국 비행기 사고는 하늘의 뜻.


※ 새 비행기가 늘 안전한 것은 아니다...

https://brunch.co.kr/@ragony/225



 이륙하면서 길깃 시내 풍경을 몇 장 찍어보았다.



 비행기 아래로 펼쳐지는 절경들.

 참고로 길깃에서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갈 때는 진행방향에서 왼쪽에 앉아야 대형 빙하나 유명한 봉우리들을 직관할 수 있다. 나는 오른쪽에 좌석이 배정되어 기장님이 간간이 안내해 주시는 뷰 포인트를 못 봤다.



 와, 정상에 올라가도 저렇게 넓고 평평한 곳이 있다고? 지형이 저럴리 없고, 아마도 눈 덮인 빙하일게다. 계곡에 흘러내린 물길이 보인다. 빙하수로 강이 만들어지는 시발점이지 싶다.



 비행기에서 바라봐도 눈 덮인 뽀얀 설산은 봐도 봐도 절경이다.



 약 1시간 남짓한 비행시간이지만, 기내 간식을 준다.


 투박해 보이는 쿠키와 샌드위치. 물, 콜라, 사이다 및 기타 과일주스 중 취향껏 제공해 준다. 스튜어디스는 파키스탄 느낌의 전통복의 특징을 살린 승무원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빙을 해 주셨다. 쿠키와 샌드위치는 탑승객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는데(안 먹겠다고 안 받는 사람이 태반) 의외로 담백하고 고소하고 무척 맛있었다. 내 옆자리 승객도 안 받던데, 내가 대신 받아서 먹을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거의 다 왔다. 고유의 Y자 대형 공항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https://brunch.co.kr/@ragony/35



 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갑갑한 뿌연 하늘, 미세먼지... 당연히 보여야 할 지평선이 안 보인다.

 공기는 원래 맑아야 한단 말이다! 대체 공장도 몇 되지도 않고 총 에너지 사용량도 선진국 대비 지극히 낮은 이 나라가 왜 이다지도 대기질이 엉망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슬라마바드 공항 무사착륙.

 없어진 짐도 없고 다친 곳도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짧지만 강렬했던, 너무나 아름다웠던 파키스탄 훈자 여행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장기간 같은 여정으로 즐겨주신 애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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