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프랑스 파리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프롤로그 포함해서 본 에필로그까지, 도합 110편이나 올렸군요.
여행기 쓰다 말고 한국 복귀명령을 받아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행기가 중간에 좀 끊어지던 시기도 있긴 했지만 애독자님들의 응원 덕분에 무사히 완결할 수 있어 무척 다행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부서장급 중간 간부 역할을 하고 있는 K-직장인입니다.
장 급이 되고 나면 관리범위가 넓고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 많아서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처럼 국가 공식 연휴도 아닌데 무려 13일이나 연속 휴가를 갈 수 있었던 배경은 제가 해외 오지근무 파견 직장인에게만 주어지는 연 1회 국외 전지휴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본 7일에 앞 뒤 토일 붙이면 11일. 여기에 특별히 큰맘 먹고 개인휴가 이틀을 더 붙여서 갔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출발하는 거라면 신혼여행 등 특별히 허가되는 분위기의 휴가를 제외하곤 직장인에게 가능한 일정이 아녜요...
사실 저는 여행 다니는 거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 찐 집돌이 성향입니다.
여행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여행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던데, 저는 그래도 집에 있는 게 참 좋습니다. 나가면 좋은데, 좋은거 알긴 한데, 집에 있는 게 더 좋아서 나갈 엄두를 내기가 매번 참 어려운, 그런 성향의 사람인데요. 그런 제가, 유럽 유명도시 곳곳을 샅샅이 훑고 왔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지요.
여행을 다니면 강제로 공부가 정말 많이 됩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걸어 다니며 읽는 책이라고 표현했던데 그 표현이 참 와닿습니다. 저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 번, 실제 답사를 가서 한 번, 여행기를 작성하며 세 번 공부를 해서 이제 어지간한 곳엔 여행 가이드를 해도 되겠다는 좀 오만한 마음까지 든답니다. 하여간 공부는 정말 엄청나게 했습니다. 안 죽으려고 안 놓치려고 안 까먹으려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자국 문화와 자부심이 너무 강한 런더너·파리지앵들에게 다소 반감이 있었어요. 여행객들에게 불친절하다는 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말이죠. 거기에 두 나라 모두 열강 시절 약소국 등쳐먹고 깡패짓하던 나라들이라 선입견도 무척 안 좋았고요. 그런데 막상 여행을 가 보니 의외로 친절하고(프랑스 바가지 식당 한 곳만 빼고) 서민들 살아가는 모습은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세상 어딜 가든 다 비슷하구나 느끼고 왔습니다. 서민들이 뭔 죄래요. 악행 저지르는 위정자들이 문제지. 그래서, 국가 지도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는 거.
저는 박물관 미술관 매니아입니다. 저도 제 성향을 잘 몰랐는데 여행을 다녀보니 쇼핑 오락 밤문화 이런 거보단 문화유산과 그에 담긴 이야기를 즐기는 게 더 재밌었어요. 세계적 두 도시의 박물관 미술관엘 원도 없이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그만큼 지식도 많이 늘었고 만족감이 큽니다. 확실히 두 발로 걷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와야 많이 남아요.
여행을 다녀온 지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다녀온 곳 중 베스트 여행지 몇 곳을 꼽자면요,
https://brunch.co.kr/@ragony/476
여기가 단연 원픽!
중세 시골마을 감성 100% 그대로인 예쁘디예쁜 마을입니다. 반지의 제왕 호빗 마을의 배경이 되었다죠.
다음에 영국에 가면 요 마을 호텔에서 며칠 묵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죠.
https://brunch.co.kr/@ragony/525
런던 패스 아녔으면 비싸서 안 탔을 거예요. 그랬다면 인생의 큰 경험 하나를 놓치고 왔겠지요.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특별합니다. 인생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주경보다는 스카이 실루엣이 살짝 보이면서 건물에 불빛이 들어오는 해넘이 시간에 가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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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가 무료인 곳이라 별 기대 없이 갔었는데 여느 전망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그리 높진 않았지만 템즈강이 다 보이는 시원한 뷰와 실내 정원이 주는 특별한 힐링의 느낌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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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도착해서 샤요 궁에서 첫 바라본 에펠탑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만큼 강렬한 풍광입니다.
파리=에펠탑. 에펠탑=파리니까요.
지평선 저 끝까지 오로지 보이는 건 에펠탑 에펠탑. 파리에 오신다면 꼭 여기를 제일 먼저 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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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하고 오페라 가르니에하고 둘 중 하나만 볼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 놓인 분들이라면 저는 오페라 가르니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로비 계단보다 화려한 곳은 세상에 없어요. 이왕이면 비싼 옷으로 한껏 멋을 내어 가시길 추천드립니다. 너무 캐주얼 복장으로 가면 공간에 압도되어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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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먼 베르사유 궁전까지 갔는데도 본궁에서 거리가 좀 멀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왕비의 촌락입니다. 화려하지만 피곤함이 느껴지는 본궁보다 자연경관과 시골집이 잘 어우러진 왕비의 촌락 풍광이 저는 훨씬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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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에는 특별한 시계탑이 두 개 있습니다. 이 특별한 시계는 환상적인 역광 실루엣을 만들어주기에 매우 인기 있는 포토스팟이 되지요. 두 개 시계탑 모두 좋았습니다만, 카페의 시계탑이 좀 더 운치 있고 더 오래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꼭 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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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도 저도 얼마나 맘에 들었으면 짧은 여행일정 중 두 번이나 가 보았겠어요.
몽마르트르 언덕은 보이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주인공이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의 오래된 집들과 언덕길 자체가 주는 아름다운 풍광이 주인공입니다. 인위적이고 지나치게 화려해서 되려 사람이 압도당하고 조금만 오래 있으면 피곤해지는 궁전의 느낌이 아닌 진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포근하고 아늑하고 정감 있는 진짜 프랑스의 속살이 몽마르트르 언덕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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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찡 날 만큼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주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으며 2006년도에 재개관한 신상 미술관이지만 수련 작품의 임팩트 하나만큼은 루브르·오르세 미술관 못지않습니다. 공간을 꽉 채우는 수련 연작은 전 세계 통틀어 딱 여기서만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니 미술작품 좋아하시는 분들은 빼먹지 말고 들르시길 추천드려요.
그거 말고도 베르사유 궁전 앞 대운하의 잔디밭도 참 좋았구요, 영국 켄싱턴 궁전 앞의 백조들이 석양 비치는 호수에 노니는 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웠답니다. 졸다 깨다 보긴 했지만 뮤지컬 라이온 킹 본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고요. 생각 안 나는거 빼고 사실 다 좋았어요. 흑. 다시 가 보면 좋겠다... ㅠㅠ
여행기 쓰다 말고 마리 앙투아네트 역사 소설 쓰느라 잠시 한 눈 판 것도 돌아보면 킥킥대게 됩니다. 제가 애장하는 소설 중 하나가 되었어요. 역시 저는 살짝 비틀어 꼬집고 풍자하는 것에 재능이 있나 봅니다. 어쩜 이리 찰지게 잘 썼을까~ 다시 봐도 잼나네~ ㅋㅋㅋ(자화자찬 중)
https://brunch.co.kr/@ragony/569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저 역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듭니다. 몸으로 익힌 지식은 쉬이 사라지지 않거든요. 유튜브니 넷플릭스니 영상물이 널리고 널린 세상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에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만큼 강렬한 자극은 없는 거니까요. 이번 여행을 통해 밉고 미웠던 영국과 프랑스를 조금은 관대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거기 사는 사람들도 다 소시민들이구나 - 하면서 말이죠.
제가 느끼고 온 바와는 다르게 세상은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다시 국지주의 자국 우선주의 이념 간 대립이 점점 격해지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니 대체 다들 왜 그런대요... 사이좋게 좀 잘 살면 안 되나요. 여행만 잠깐 다녀와도 서로 이해할 고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고등 유인원 중 다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 단일종만 살아남았는데 같은 종끼리 뭐 그리 미워하고 싸우고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말은 그래놓고 저도 마누라하고 맨날 싸웁니다만....)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손들고 파키스탄 지사장으로 자원해서 갔던 일을 꼽겠습니다. 풍족하진 않지만 파견 수당도 좀 벌어와서 가계에 적잖은 보탬이 되었으며, 파키스탄 본국은 물론, 전지휴가를 통해 방문한 많은 나라의 내면을 이해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을 크게 키워왔으니까요. 기회만 다시 주어진다면 해외 파견자리엔 다시 또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어요.
너무 빡세게 일정을 잡아서 몸은 많이 힘들었습니다만 남은 건 영원해질 이번 여행, 분명 흑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행 가이드 하라고 해도 좔좔좔 할 수 있대니깐요-까먹기 전엔 말이죠.
가급적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애썼습니다만, 글의 흐름상 일일이 다 못 쓰고 놓친 것도 좀 있긴 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소매치기당할 뻔한 에피소드를 따로 안 써 놨네요. 다음 편에 못다 한 얘기들 더 풀어보겠습니다.
※ 다음 이야기 : 오늘 작가, 하루에 두 번이나 소매치기에게 간택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