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47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엄마는 내 글을 읽고 연을 끊겠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쓰는 이유

by 챗언니 Mar 05. 2025



주문한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송 조회를 눌러보지만, ‘포장 중’이라는 문구만 떠 있다.

언제 오는 걸까?

아... 나는 언제쯤 책을 구매하면 바로 오는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러다 며칠 전, 엄마가 불쑥 던진 말이 떠올랐다.


“내가 예전에 써둔 시들 있잖아. 그거… 책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엄마가 글을 쓴다는 건 알고 있었다.
틈틈이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어두는 걸 봤고, 어쩌다 한 편씩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들을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엄마가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엄마도 자랑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거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오빠도 나도, 엄마가 자랑할 만한 자식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리를 위해 살아왔고,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진 걸까?

혼자된 이후, 엄마는 점점 바깥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세상과 단절된 듯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고,
그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제 엄마도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려는 걸까?
어떤 이유든, 그것이 반가웠다.
엄마가 세상에 보이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글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엄마는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그 감정을 견디기가 버거운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마음을 보살펴주지 못했다.
아빠와의 관계 속에서 지쳐 있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도 힘든 사람이었다.

무너진 가정 안에서, 나는 유난히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아팠을 것이다.
엄마도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무너져버린 삶 속에서, 엄마는 그저 버티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원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쉽게 상처받는 아이였다.
사랑이 많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는, 가족들은,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글을 썼다.
처음엔 학교에서 내준 숙제였고,
그다음엔 다이어리였다.

엄마에게 혼난 날은 그 이야기를,
오빠와 싸운 날은 억울한 감정을 적었다.

나는 다이어리에 열쇠를 채우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다이어리를 열어보지 않았다.

나는 봐주길 바랐다.
내 글을 읽고, 내 감정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글을 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 혼자 아파하고, 나 혼자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서툴게 마흔이 된 어느 날,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냥 마구 써 내려갔다.

그동안 쌓여 있던 속마음이
글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홀가분하게 웃고,
또 울고,
다시 울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야 나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을 써야
내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쓴 나의 첫 번째 책 "마흔 살의 나비" 를 내면서,

나는 엄마가 이 글을 읽고 힘들어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와 연을 끊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책이 나온 후, 엄마는 한동안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격렬한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썼어?”


엄마는 분노했다.


“우리가 널 그렇게 만들었어?”
“네가 그렇게 아픈 게 다 가족 때문이라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연 끊자."


엄마는 그렇게 분노한 채로 나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다시 연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엄마가 카톡을 보냈다.


“어린 딸에게 상처 준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온 세월.
나 진정 너무너무 가슴 아프다.”


엄마는 책을 읽고,
통곡했고, 원망했고,
그리고 마침내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다가 내 딸에게 그런 상처를 주었단 말인가."

"딸아, 다시 내 아가 되어주면 내가 다 해 줄게."


엄마가 나에게 보낸 이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이번 두 번째 책이 오고 나면 엄마의 책을 만들 것이다.


잘해 준 것도, 잘난 것도 없었던 딸이
이제야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평생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줄 수 있는 한 가지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라도,
칭찬받고 싶다.


"우리 딸, 참 잘했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이전 09화 네 번의 반려에도 결국 출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