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가르쳐준 선택과 포기
나는 작물을 키우는 일을 요리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아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적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놓기 아까운 회사를 계속 다니게 되었고, 그 길을 접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만큼은 셰프의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여한을 풀듯 요리를 한다.
국내외 유명 셰프들을 보면 결국 재료가 전부라고 말하며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한다.
아마 그 마음을 닮아 나도 텃밭에 정을 붙였을 것이다.
직접 기른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즐거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란다로 작물들을 옮기자 상황은 달라졌다.
수확량은 너무 미미했고, 먹는 작물일수록 햇빛이 부족해 병들어 죽기 일쑤였다.
결국 남은 것은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야자, 석화, 행운목, 군자란 같은 식물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조금은 아쉽다.
그때 떠오른 한 철학자의 가르침이 있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 에픽테토스(Epictetus)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의지로 불가능한 것은 단호히 내려놓는 지혜.
아마 텃밭은 나에게 그걸 가르쳐 주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 옆에 있는 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나의 수확물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내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나의 최고의 사랑이고,
내가 품에 안은 아기가 최고의 아기,
내 가족이 최고의 가족.
가질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를 가장 쉽고도 멋지게 사랑하는 방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