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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텃밭을 생각하며

비가 오면 행복해지는 이유

by 홍페페

비가 온다.
나는 원래 날씨에 크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텃밭을 시작한 뒤부터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풀린다.

노지 텃밭을 해보니 물이 작물에게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게 됐다.
인위적으로 급수를 하지 않으면 뙤약볕 아래 흙은 금세 갈라진다.
뿌리가 깊고 탄탄한 작물은 버티지만, 막 발아하려는 씨앗은 촉촉한 흙 없이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비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씨앗을 뿌린 뒤부터는 일기예보를 유심히 보게 됐다.
비가 온다고 하면, 흙이 흠뻑 젖어줄 만큼 오래 내리기를 바라게 된다.
빗물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힘 있는 물 주기다.

우리 텃밭에는 급수 장치가 없다.
처음엔 호스로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이 내려주는 빗물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수확량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가족이 먹을 만큼만 나와도 충분하다.

텃밭에 가면 이웃 텃밭분들이 작물을 나눠주시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 텃밭에서 난 것보다 더 많은 수확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받다 보면 나도 나누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즐거움이 이렇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비가 와서 기분이 좋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천천히 배우고 있다.
세상에는 기분이 좋아질 이유가 참 많다는 것을
텃밭이, 그리고 비 오는 날이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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