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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이어간 텃밭

작은 흙에서 찾은 나의 숨쉴 공간

by 홍페페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서 도저히 노지 텃밭에 나가 일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엄마만 가끔 밭을 돌보고, 나는 집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차리기로 했다.

당근으로 얻은 화분에 흙과 자갈을 채우고,
텃밭에서 엄선해 집에서도 잘 자랄 것 같은 아이들을 뿌리째 가져왔다.
로즈마리, 바질, 파프리카, 대파…
하지만 베란다는 노지처럼 햇빛이 충분하지 않았고, 습도는 높았다.
작물들은 병에 시달리다 하나둘씩 죽어갔다.
진딧물도 극심해졌다.
결국 겨울이 지나자 살아남은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 사이 아기는 태어났고, 베란다의 화분들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하지만 아기가 두세 달쯤 되어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여유를 되찾자,
나는 다시 화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 치워버릴까 고민했지만 가슴이 답답해왔다.
아무래도 텃밭은 내 힐링 포인트였나 보다.

그때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다.
식물 생장등을 사자고.
생장등을 켜고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키워 먹어도 봤다.
하지만 곰팡이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흙을 전부 갈아엎고, 소량을 정성스레 돌보았다.

지금 우리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오직 이태리 파슬리뿐이다.
하지만 0세 아기를 돌보며 그 정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탁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끔 노지 텃밭을 찾으면 바랭이가 온 밭을 잠식해 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지구의 벗겨진 토양을 조금 덮었고, 탄소 저장에 기여하겠지’ 하고 자축해본다.
여러 곤충이 기어 다니며 작은 생태계를 이루어낸 것을 보며,
‘내가 만든 비바리움 같다’고 위로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들끓는다.
내년엔 여유가 된다면 박스 멀칭을 시도해 볼 것이다.
바랭이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육아로 인해 흙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흙을 그리워하고, 작은 식물 하나라도 곁에 두려 한다.
텃밭은 잠시 쉬고 있을 뿐,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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