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18화

스물넷, 태민

# 흰 패딩이 잘 어울리는 사람

by young

카페를 나와 혼자 걷는 길에, 우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비효율 속에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게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효율만 따지던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길고 긴, 허비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5년의 시간.






유난히 추웠던 스물넷의 1월이었다. 올해만 학교를 다니면 이 지겨운 서울도 안녕이다. 졸업과 동시에 곧장 대구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연고 없는 도시에서 마음 붙일 곳 없이 살아가는 데 진저리가 났다. 뉴스에서는 연일 한파주의보를 보도했고, 매일 아침 울리는 엄마의 카톡은 ‘눈길 조심해라’로 시작했다. 그를 처음 만난 그날도 아주 춥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4학년이 학과 행사를 왜 가.”

“마지막이잖아요. 언니.”

“맞아요. 누나, 올해가 마지막인데 오세요.”


후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참석한 학과 행사는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하는 앳된 얼굴들 사이에서, 나 역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과의 차이라면 필수교양이 세 과목쯤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졸업 요건에 영어 성적이 추가된 것 정도.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겐 난감한 일이겠지만 내겐 다행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이 이어졌다. 뻔한 진행. 뻔한 웃음. 작년, 재작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지루함이 목덜미까지 차올라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회색 철제문이 덜컥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키 큰 남자가 머리 위의 눈을 툭툭 털며 들어왔다. 찬 바람에 붉게 물은 뺨, 자기 피부처럼 하얀 패딩, 까만 머리칼. 그리고 단정한 이목구비. 낯설게도 익숙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흰 패딩이 잘 어울리네.’


그것이 정태민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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