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08화

스물, 수현

#기차 안 벨소리

by young

대학교 삼 학년쯤. 그때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곤란해져서, 군복을 입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수현만이 나의 유일한 인간관계였다. 몇 달 전, 조부와 마지막 나눈 대화가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화가 저물어가는 날이었다. 봄이라기에는 너무 추웠고, 겨울이라기엔 포근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마음 같은 기온이었다. 침상에 누운 당신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니 못 본다. 현아. 나는 인제 죽을 기야. 우리 현이. 이제 못 본다.”


나는 그저 아픈 노인의 감성 어린 말이라고 치부하며 어른스러운 척 그를 위로했다. 한평생 조부에게 반말을 했지만 이제 성인이니 존댓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조금 어색한 존대를 섞었다.


“할배. 뭐카노. 병원에서 이제 다 나았다고 했다 아이가. 개안타. 여름 방학에 또 올게요.”


사람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안다고 하던가. 자신이 죽을 거라는 말을 달고 산지 이 개월쯤 지나, 정말로 그는 자신이 태어난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죽음이 열두 시간 남짓 남았을 때 어머니는 전화로 내게 집에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며. 기차든 버스든 빠른 것을 타고 오라, 했다. 나는 우습게도 그때만 해도 당신이 정말로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긴 오만한 젊음이었다.

기차표를 들여다보며 지금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할 것 같은데. 택시가 잡히려나? 고속버스를 타야 하나. 얼마나 걸리지? 6시간? 이런, 버스는 불편한데. 고속버스터미널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어렵네. 따위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내 편의를 생각하는 동안 어머니는 한 번 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차표 끊었나?”

“기차 없다. 내일 아침 첫차 타고 갈게.”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알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꽤 일찍 잠에 들었다. 특기라기엔 그다지 특출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자신 있었다. 4시에 눈을 뜨고 5시쯤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7시 30분 즈음 도착하니, 이 정도면 빠르네. 김천구미를 지나 곧 동대구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동대구. 동대구 역입니다, 하는 한국어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기차 안에 내려앉은 적막이 흩어졌다. 허둥대며 전화를 받았다.






기차 안 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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