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애벌레가 번데기가 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 줄 알아? 제로베이스. 유충 피부와 근육조직이 녹아서 그 수분을 오롯이 흡수하는 거야. 완전히 다른 구성으로 재탄생하는 거지, 네가 지금 힘든 이유도 당연한 거야. 괜찮아 최다은 잘하고 있는 거야.
아내인 나의 내적인 여러 변화를 꽤나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기까지 생물학적인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는데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은 '나의 남편이 매우 똑똑하구나!' 10년 넘게 살면서 이제야 남편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것 같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랜 시간 살을 맞대고 함께 한 그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남녀관계의 성장과정을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관계의 첫 단계는 오직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상태이다. 어떠한 문제도 없고 에너지가 넘치며 미래에 대한 기대만 있는 상태. 결혼 전 연인 혹은 시작하는 연인의 시기가 아닐까?
두 번째 단계는 어려움이 시작하는 단계, 서로의 불완전함을 알아차리고 작고 사소한 것부터 다투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낙담하고 서로를 포기하기도 하는 단계이다. 두 사람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있다면 이해와 타협의 기초가 형성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세 번째 단계는 가장 아름다운 단계이다. 진정한 사랑은 여기서부터 출현한다. 소리 지르거나 말다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서로를 존중하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게 되며 함께 성장하며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되는 시기이다.
우리 부부는 지금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의향을 가지고 이해와 타협의 기초를 쌓으려고 방향을 바로 잡아가는 2단계의 어디 즈음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남편은 아내인 나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의 모순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적질을 했으며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아내인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지레짐작하고 스스로 상처받았다. 이런 종류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피로한 일상이 비일비재했다. 나는 꽤 자주, 숨이 막혔다.
물론 나의 언어습관을 고치려 하는 그의 말속에서 내가 보기에는 그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오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냥 넘어가면 싸움이 되지 않았고 내가 따지기 시작하면 큰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괴로움 그 자체였다. 그의 앞에서 나는 항상 잘 못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아내인 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끝끝내 상처만 준 아내를 원망하는 그의 처절한 방어였을까?
2024 봄날의 어느 날, 나의 깨달음으로 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먼저 나에게 깨달음이 왔다면 용기 있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 시점이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전환점이 되었으니까. 나의 사과를 그가 진정성 있게 받아주었고 이후 몇 달이 지나 그가 담담하게 고백을 한다. "나의 자격지심이야 미안해"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지 못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고치려 했던 그였는데 그날도 대화 속에서 나의 오류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나를 힘들게 하던 그에게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내가 그렇다고. 그냥 그렇구나 그렇게 이해해 주면 안 돼?"라는 나의 울먹임에 결국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것이다.
강렬한 갈등은 가치가 있다. 지속적인 결과를 만드는데 필요하다. -칼 구스타브 융-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무모하리만큼, 날 것 그대로 서로를 향해 있었다. 한시도 타협하지 않고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한 시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로에게 과격하리만큼 투쟁했다. 그러한 우리였기에 우리가 부부로 만나게 된 것을... 그 모든 시간이, 그 모든 점들이 선을 만들기 위한 이유였다고. 관계는 결코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의 대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감정의 경계선에서 흔들흔들 불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너와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필사적인 리듬을 함께 타고 있는 것이다. 그 몸부림치는 우리의 박자는 지속적으로 맞지 않고 통일되지 않은 패턴으로 헤맬지라도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임을.. 서로를 고마워하는 만큼, 서로를 존중하는 만큼 우리가 만들어 가는 연주는 앞으로 어떤 음악보다 빛이 날 테니까.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월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이야기]
화. 토 [일상 속 사유 그 반짝임]
수 [WEAR, 새로운 나를 입다]
목 [엄마도 노력할게!]
금 [읽고 쓰는 것은 나의 기쁨]
일 [사랑하는 나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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