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들 (1) : 보편적인 팩트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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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년 가까이 일관된 식단을 유지했다. 그 식단엔 육식이 포함돼 있었다. 육식 단백질을 섭취해야만 건강하다는 생각은 나의 견고한 상식이었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채식을 한다는 건 상상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격하고야 말았다. 완전히 망가진 몸을 현미채식으로 고친 숱한 사람들을. 그들은 실제 하는 현상이었다. 나는 그들의 식단을 내 몸에 실험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게 박힌 육식 이데올로기는 뿌리 깊었다. 삶에 박힌 거대한 패러다임을 수정하기 위해선 반대쪽에 서 있는 거대한 증거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미밥 채식』을 넘어 다른 책들을 읽어나갔다.


낙농업자의 아들로 자란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고기를 좋아했다. 의학교수 초기 시절에는 의예과 학생들에게 영양학을 가르치며 채식주의자의 시각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명백한 사실들 앞에서 결국 자신의 견해를 바꾸게 된다. 그의 이름은 콜린 캠벨이다.


콜린 캠벨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대작을 썼다. 그 책을 쓰기 위해 750권 이상의 책을 참고한 점도 인상적이지만 책의 핵심은 China Study라는 연구에 있다.


China Study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의학 연구 역사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포괄적으로, 식습관과 생활방식에 따른 질병을 연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코넬 대학, 옥스퍼드 대학, 중국예방의학아카데미가 이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연구를 '역학의 그랑프리'라고 불렀다.


China Study는 중국 농촌지역과 타이완에서 질병의 다양한 요소를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조사를 토대로 식습관과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콜린 캠벨 박사와 그의 동료들이 10년간 9만 4천 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이러했다 : 동물성 식품을 많이 먹은 사람은 만성 질환에 자주 걸렸다. 심지어 식물성 식품을 적게 먹은 사람도 나쁜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식물성 식품을 많이 섭취한 사람은 건강하며, 만성질환에도 강한 저항력을 보였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콜린 캠벨 박사님의 또 다른 책, 『당신이 병드는 이유』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음식과 건강에 대한 오늘날의 혼란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영양을 잘게 쪼개어 생각하는 환원론적 입장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연식물식에 대한 논지를 다시금 굳힌다.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공식과 규칙을 원한다. 하루에 녹색 잎채소는 몇 그램 정도 먹어야 하나요? … 우리가 알고 있는 증거들은 자연식물식을 선택하면 이렇게 세세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저 다양한 종류의 식물성 식품을 많이 먹으면 된다. 그러면 당신의 몸이 스스로 이 모든 수학식을 풀 것이다."

『당신이 병드는 이유』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고맙습니다"라고. 진심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대작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책은 존 로빈스의 『육식의 불편한 진실』과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이다.

『육식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떤 식으로 길러지고 처리되는지 하이퍼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이 방대한 책은 페이지마다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그중 '300만 인간 모르모트'라는 아래의 이야기가 내 눈을 붙잡았다.


"과학자들이 육류에 관한 전통 가설들에 처음으로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측은 덴마크에 대해서 수입 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에 덴마크 정부는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에 처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전국의 식량배급 계획을 담당할 책임자로 미켈 힌데드 박사를 임명했다. 미켈 힌데드 박사가 대응한 방식은, 후에 그가 <미국 의학협회 저널>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축류에게 곡물을 먹여 육류를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그 곡물을 국민에게 직접 배급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300만 이상에 달하는 사람들을 놓고 한 일종의 채식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식량 제한이 가장 엄격했던 1917년 10월에서 1918년 10월까지의 1년 동안, 코펜하겐의 사망률을 계산해본 과학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조사가 이루어진 그 어떤 시기보다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이 시기 동안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그 이전 18년간의 평균 사망률보다 34%나 감소했던 것이다."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은 육식과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간과 지구의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밝힌 책이다. 채식 위주 식단이 수명을 늘리고, 암을 예방한다는 이야기 등을 방대한 자료와 유려한 글로 증명했다.

이 책에는 미국 국립 심장·폐·혈액 연구소 소장인 윌리엄 카스텔리의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몇몇 사람이 채식주의자를 조소하지만, 그들이 암에 걸릴 확률은 보통 사람의 4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산다." 또한 이런 내용도 적혀있다. "세계 암 연구기금과 미국 암연구소는 채식 위주 식단과 암에 관한 보고서에서 그 결과를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요약했다. "채식 위주 식단이 암의 발병 확률을 떨어뜨린다.""

암과 멀어지게 하는 식단이 암 환자에게만 좋은 건 아닐 테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


콜드웰 에셀스틴은 클린턴 대통령의 심장병을 채식으로 완전히 회복시킨 의사이다. 그가 고친 사람은 클린턴뿐만이 아니었다. 죽음에 임박한 관상동맥질환 말기 환자들을 채식 프로그램으로 12년간 치료했고, 끝까지 참여한 환자들은 모두 완치되었다. 그는 『지방이 범인』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심장을 살리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다른 수많은 질병(중풍, 고혈압, 비만, 골다공증, 당뇨 등)을 치료하는 음식을 먹는 셈이 된다. … 통곡물과 야채와 과일을 먹고 나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수도 없이 생길 것이다."


립 에셀스틴은 콜드웰 에셀스틴의 아들이다. 그는 채식인이며 철인 3종 경기를 300회나 완주했다. 『배고픈 다이어트는 실패한다』라고 번역된 그의 책의 원제는 『 Engine2 Diet 』이다. 직역하면 '제2 기동대 식단' 정도일 것이다. 소방관이었던 립 에셀스틴은, 소방서에서 함께 근무하던 제2 기동대 동료들과 또 다른 지원자들에게 채식 식단을 적용하는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의 식단은 신선한 통곡물과 야채, 과일과 뿌리 식물 등이었고 먹는 양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동물성 식품과 정제 식품 및 가공식품은 완전히 제외되었다. 4주 후 그들은 평균 7kg를 감량했으며 총 콜레스테롤은 평균 62포인트(30%)가 떨어졌다. 그는 말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부터 푸른 잎채소를 먹어라."


존 맥두걸은 녹말 음식과 채식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이다. 그는 그의 책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에서, 가공되지 않은 녹말 음식(통곡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과 채소와 과일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음식이며, 배불리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논문의 출처를 수록하는 데만 21페이지를 할애했다.


존 맥두걸은 자신의 다른 책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에서도 위와 같은 음식들을 강조한다. 특히 식욕에 대하여 해방과도 같은 선언을 한다. "식욕은 죄가 아니다… 들판을 달리는 어느 말이 풀을 더 많이 뜯어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죄 많은 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올바른 음식이라면 배불리 먹고도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살수 있다는 것이 그의 책의 요지이다.

참고로 존 맥두걸은 고기와 유제품을 과도하게 섭취하다가 18세에 중풍에 걸렸다. 또래보다 20~30kg 더 나가는 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몸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되었고 마침내 채식으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고치게 되었다.


하비 다이아몬드의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도 채식인들에게 유명한 책이다. 그러나 내겐 좀 어수선하게 읽혔다. 주장에 대한 출처를 꼼꼼하게 첨부해놓지 않은 점은 실망스러웠다. 물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내용이 없진 않았다. 예를 들면, 한 끼니의 70% 이상은 수분이 가득한 생과일이나 생채소로 꾸미라는 식이었다. 내 몸의 물질 성분비를 생각해 보면 수긍할만한 주장이었다.


우리나라 채식 의사 14명이 함께 집필한 책도 읽었다. 『채식이 답이다』라는 그 책에서 의사들은 입을 모아 채소, 과일, 콩류, 해조류, 현미(통곡물), 버섯류 등을 권한다. 동시에 동물성 단백질 및 지방 섭취, 흡연, 음주 등을 피하라고 적었다.


내가 읽은 채식 책들은 서로 완벽한 합치를 이루고 있진 않았다. 채식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다. '소금·설탕을 먹으면 안 된다. 아니다, 비정제 소금·비정제 설탕은 괜찮다. 생채소가 좋다. 아니다, 익힌 채소도 좋다. 과일은 무제한 먹어도 된다. 아니다, 과일은 너무 많이 먹진 마라. 견과류는 먹지 마라. 아니다, 좋은 지방이므로 꼭 먹어라. 콩은 조심해서 먹어라. 아니다, 꼭 챙겨 먹어라. 육식은 입에도 대지 마라. 아니다, 극소량의 육식은 괜찮다. 비타민 B12는 영양제로 섭취해라. 아니다, 된장이나 김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합의점에 비하면 저런 의견차는 사소했다. 채식 전문가들은 분명하게 겹쳐지는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고 있었다. 일치된 그 건강식은, 콜린 캠벨의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에 잘 요약되어 있다.

"메시지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가능하면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과일과 채소, 그리고 곡류를 많이 먹어라. 그러면 여러 가지 건강상의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이상의 독서로 나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 채식에 더욱 마음이 열렸다.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채식은 과학적, 영양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인구수만큼 다양한 체질이 있으므로 지구 전체에 예외가 한 명도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어떤 채식을 하느냐도 관건이다. 다만, 채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담배가 몸에 안 좋다는 명제처럼 압도적인 다수에게 해당되는, 임상과 연구를 통해 증명된 보편적인 팩트라는 말은 할 수 있다."


하나의 고정된 시각을 수십 년 동안 고지해왔지만, 산더미 같은 증거들 앞에 나를 노출시키고 나니 더 이상 예전의 지식을 고집할 도리가 없었다. 이만큼 명명백백하고 방대한 사실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복잡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고, 배불리 먹어도 되고,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이 식단을 왜 지금껏 몰랐을까. 억울했다. 이 세계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증거의 부족 때문이 아닌, 뒤늦게 합류한 자로서의 갈증 때문에 채식을 좀 더 탐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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