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들 (2) : 실험해 보기 전에는 모르죠

by 녹차
증거2.jpg Copyright 2021. 녹차 all rights reserved.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리처드 벨리보 박사가 한 말이다.* 그에게는 채식과 건강에 관한 드라마틱 한 증거가 있었다. 암에 걸린 쥐를 식물 추출물로 치료했더니, 종양의 크기가 90%나 줄어든 것이다.


벨리보 박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식물은 싸울 팔도 없고 달릴 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자신을 바이러스나 곤충 등으로부터 보호할까요? 식물들은 파이토케미컬이라는 화학물질을 생산해서 자신을 보호합니다. 수천 개의 파이토케미컬 중 2천 개가 항암 성질을 갖고 있죠." *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파이토케이컬을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에 식물을 섭취하여 그 방패를 얻어야 한다.


천연 방패의 효능을 나라 전체로 증명한 역사가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했다. 독일군은 점령 직후 군대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모든 농장의 가축을 압수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식물성 식품밖에 없었다.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한 기간에 노르웨이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뇌졸중과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률이, 독일군 점령 후 채식을 시작한 1940년부터 수직 낙하한 것이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에 의해서도, 스텐트 시술이나 관상동맥 우회 수술에 의해서도 심혈관 질환 인구가 이만큼 급속히 감소한 역사는 없었다.

전쟁은 1945년에 끝났다. 고기와 유제품은 노르웨이에 다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심근경색 사망률 그래프도 수직 상승했다. 이 이야기는 「Forks over Knives」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한다.


채식의 이점에 대한 이와같은 역사적·과학적 증거는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방대하게 쌓여있다. 하지만 그런 증거들이 현대의 거대 먹거리 산업의 틈을 뚫고 내 귀까지 도착하기는 쉽지 않다.


의학 박사인 마이클 그레거는 이러한 현실에 기막혀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현실을 뚫는 송곳이 되었다. 그는 보석 같은 의학 지식-채식·영양·건강 정보-을 꿰어 보기 좋게 엮은 뒤 사람들에게 제시한다. 그는 영어로 발표되는 전 세계의 의학저널을 읽은 뒤 그중 흥미롭고 실용적인 자료를 모아 비디오와 기사로 만든다. 그것들을 그의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다. 그레거 박사는 이 과정에서 광고나 기업 후원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 How not to die 』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우리나라엔 『의사들의 120세 건강 비결은 따로 있다』라고 번역됨). 그의 책은 그의 영상과 일맥상통한다. 채식과 건강에 연관된 획기적이고 유익한 증거로 채워진 책이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의 모든 수익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을 정말로 순수한 재능 기부로 진행하는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이익 창출도 하는 것인지, 나는 검증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의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의 할머니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레거 박사의 할머니는 65세 때 말기 심장병을 진단받았다. 휠체어에 의지하여 사망선고를 받은 할머니는 그 후 31년을 더 살았다. 여섯 명의 손주들을 보면서, 96세가 되도록. 거짓말 같은 이 역전은 네이슨 프리티킨 의사의 처방 덕이었다. 프리티킨은 채식 위주 식단으로 병을 고치는 이름난 의사였다.


마이클 그레거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Nutritionfacts.org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프리티킨 의사가 자신의 가족에게 베푼 은혜를 자신도 다른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그의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에 가득 쌓인 영상들은, 그가 세운 인생 미션이 얼마나 잘 실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채식과 건강한 삶이 얼마나 밀접한지를 알려주는 과학적 증거이다.


그레거 박사가 제작하는 영상들에 사용된 언어는 당연히 영어이다. 아쉽게도, 영어를 잘 못하는 나는 그 영상들을 술술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보고 싶은 영상들은 사전을 뒤져가면서라도 시청했다. 드물지만, 고맙게도, 한글 자막이 달린 영상도 있다.


한편, 마이클 그레거 박사에게는 유행어가 있다. "You don't know … until you put it to the test." , "실험해 보기 전에는 몰라요."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의 거의 모든 영상에 등장한다. 질문과 증거들의 사이에서, 관용어처럼 되풀이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매일 사과 한 알을 먹는 사람에겐 정말로 의사가 필요 없을까요? 실험해 보기 전에는 모르죠. '사과 섭취와 병원 방문 사이의 연관성'이라는 논문에 따르면…(중략)"**


실험으로 밝혀진 과학적 증거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태도는 TED 강연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단편적 사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과학적 근거들에만 관심이 있어요.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혹은 생사가 달릴 만큼 중요한 문제일 때, 나 자신과 가족에게 무엇을 먹일지에 관한 문제일 때 그러하지요. 그럼 하나의 질문만 남습니다. "지금 현재 가장 확실한 근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근거를 모아놓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The Game Changers」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각의 근거로서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은 대강 이러하다.

400m 달리기에서 2회 우승한 모건 미첼. 전미 사이클 대회 8회 우승자 도치 바우슈. 미국 기록을 보유한 역도 선수 켄드릭 페리스. UFC 세계 챔피언 네이트 디아스. 장사 대회에서 세계 기록을 달성하여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등극한 파트리크 바부비안. 애팔래치아 등산로를 46일 8시간 7분 만에 주파하여 세계 기록을 세운 스콧 주렉(그 등산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겐 5~7개월이나 걸리는 길고 험난한 산길이다). 여기 언급하지 않은 다른 많은 챔피언들도 다큐에 출현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비건(완전 채식인)이다.

이들이 날 때부터 채식을 한 건 아니었다. 채식이 몸의 회복력을 높이고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근거들 때문에 식단을 바꾼 것뿐이다. 그 결과 그들은 더 빠르고 강해졌다.


송학운 씨도 젊은 시절에 운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말기 직장 암에 걸리고, 다행히 채식을 통해 완치된다. 오래전에 그를 담당했던 의사에게 송학운 씨의 건강해진 모습 보여 주었다. 의사는 송학운 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워했다. 식이의 변화로 건강을 되찾은 인과관계를 들은 의사는 송학운 씨의 회복에 대해 납득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살기 힘든 사람이 살았어요."

이 이야기는 「목숨 걸고 편식하다」라는 다큐에 등장한다. 나에게 채식의 힘과 황성수 박사님을 알려 준 첫 다큐멘터리였다.


저 다큐를 시청한 뒤 황성수 힐링스쿨 채널의 영상들도 거의 다 보았다. 현미 채식을 통해 건강이 개선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황성수 박사님이 채식과 질병에 관해 알려주는 영상도 많다. 유익하긴 했으나 그 이야기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실험 사례나 출처를 언급하지 않는 점은 퍽 아쉬웠다.


우리나라에는 마이클 그레거 박사님 같은 사람은 없다. 채식·건강·영양과 관련된 방대한 논문들을 읽고, 선별하고, 통역하고, 분석하고, 요약하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수고를 감당하는 한국인 의학 박사는 내가 알기론 없다. 어쩌겠나. 증거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나도 남이 대령해 주는 근거만 편리하게 누릴 생각은 없었다. 모니터만 켜도 증거는 우글거리니까.


유튜브 채널 Plant Based News, 콜린 캠벨 박사님의 영양학 연구 센터 사이트, 식물성 식단으로 질병을 개선하는 의사들의 비영리 단체인 Physicians Committe 사이트,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 PMC-NCBI 사이트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서 자연식물식 의사들의 이야기, 건강과 영양에 관한 실험들, 비건 보디빌더와 운동선수들의 이야기, 채식 관련 논쟁, 자연식물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의 증언 등을 원 없이 확인했다. 자막과 영어사전, 구글 자동 번역을 동원해서 수많은 페이지를 읽고 영상을 보았다.


재밌어서 그랬다. 증거들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 재밌었다. 아파보니까 그랬다. 쉽고 명쾌한 채식 식단으로 내 몸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소식은 다른 어떤 이야기들 보다 흥미진진했다. 인기 드라마보다, 베스트셀러 소설보다 훨씬 더.


그러다가 문득, 불안해졌다. 나는 주로 채식 관련 책, 채식 관련 다큐멘터리, 채식 관련 사이트와 채널에서 정보를 얻었다. 채식 친화적인 출처에만 내 눈을 고정시킨 것이다. 나는 뒤늦게나마 진실에 반복 노출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지고 있는 걸까.


책이든, 다큐멘터리든, 논문이든, 내가 본 증거들 중엔 오류도 부분적으로 있을 것이다. 내가 살펴본 채식의 증거들이 완전무결한 정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무엇을 먹어야 건강해지는가'라는 질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답이 혼재하는 게 사실이다. 한쪽에선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고 말하고, 한쪽에선 채식이 더 건강하다고 말한다. 의사들도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범람하는 답안지들 앞에서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취하는 대신, 질문에 작은 변화를 줘 보았다. '무엇을 먹어야 건강해지는가' 대신 '건강한 삶은 누린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는가?'라고.


나는 장수학으로 눈을 돌렸다.









*.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분자 의학 연구소장, 다큐멘터리 「암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에서 인용.

**.https://youtu.be/B9WJHjsRitM

***. https://youtu.be/k8hgfXmZSHE







녹차의 일러스트 샵 ▼

https://marpple.shop/kr/nokcha


keyword
이전 03화증거들 (1) : 보편적인 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