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들 (3) : 장수인이 먹는 음식의 95%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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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명을 바라지 않지만, 장수를 갈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장수인들이 누린 삶의 질은 나도 누리고 싶다. 그들은 주어진 일생을 건강한 날들로 채웠다. 연명치료로 장수한 것이 아니었다. 건강한 일생이 음식으로만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나의 초점은 그들의 식탁으로 향했다. 채식 위주 식단이 몸에 좋다는 과학적 증거들을 모을 만큼 모았는데, 이 증거들이 사실인지에 대해 다른 각도로 검증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 집 식탁의 조종 키를 잡고 있다. 나와 식구들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차림을 내가 지휘한다. 이것은 무거운 짐이면서도 잘 해내고 싶은 도전이다. 내 육체를 올바르게 관리하는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육체에도 기여하고 싶다. 이런 바람을 가진 내게 장수인들의 식단은 좋은 모델이었다.


우리나라 전국 150여 명 백세인의 식탁에는 제철 채소가 항상 올라왔다. 한남대 식품영양학과 이미숙 교수 팀은 백세인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조사했다. 96.8%가 채소류, 90.5%가 콩류를 꼽았고, 가장 낮은 순위가 육류였다. 가장 많이 먹는 반찬은 나물이었고 생채소는 거의 없었다.* 백세인들의 식단 사진도 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소박한 시골 밥상이었다. 밥, 국, 김치, 나물류와 된장·고추장 등으로 꾸려진 식물성식품 위주의 식사였다.**


오키나와 백세인들의 식생활도 비슷했다. 음식의 78%가 채식이었다. 그들은 "매일 일곱 가지 이상의 야채와 과일, 두 가지 이상의 콩류 음식을 섭취하고 있으며, 복합 탄수화물인 고구마와 현미, 섬유질이 풍부한 메밀국수"를 주로 먹었다.*


중국 최고의 장수 지역은 신장이다. 유영겸 신장사회과학민족 연구소 소장은 1989년에 19명의 장수 전문가와 함께 121명의 신장 장수자들을 만났다. 그중 백세인 33명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신장성 백세인들의 식생활 중 가장 특이한 건 과일 섭취량이었다. 신장은 과일 생산량이 많고 과일의 당도도 높아서 '과일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그곳의 백세인들은 매년 200kg 이상의 과일을 먹었다.*


노화 연구의 권위자인 유병팔 교수는 『125세 건강 장수법』에서 지중해 식단을 언급했다. 지중해에 있는 이카리아라는 섬엔 '죽음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건강한 장수 노인이 많다고 한다. 물론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는 수십 개이며 그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메뉴를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중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식생활을 종합해서 분석했더니 유사점이 드러났다. 첫 번째 유사점은 주로 채식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다음으로는 과일, 올리브유, 생선, 매우 제한된 육류, 적포도주 섭취가 차례로 나열됐다.


로마 린다 대학교 게리 프레이저 박사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안식일 재림 교인들의 수명을 조사했다. 안식교인들은 교리 때문에 채식을 한다. 그들은 "다른 캘리포니아 주민들에 비해 남성은 거의 10년, 여성은 평균 6년 정도"***수명이 더 길었다. 게다가 "교인들 중에서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채소를 먹고 일주일에 견과류 다섯 번, 콩은 세 번 이상 먹은 사람들이 수명이 가장 길고" 병에 걸릴 확률도 낮았다.***


남캘리포니아대학 장수연구소 소장인 발터 롱고는 사르디니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사르디니아는 인구 통계학자들이 인정하는 장수 기록을 보유한 곳이다. 이들은 "콩, 통곡물빵, 풍부한 채소 등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발터 롱고 교수는 사르디니아를 포함하여 세계의 장수식을 종합했다. 일본 오키나와,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사르디니아의 작은 마을, 코스타리카, 그리스와 같은 세계적인 장수촌 식단을 분석하여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 "1. 채식을 위주로 견과류와 약간의 생선을 먹는다. 2. 단백질, 당분, 포화·트랜스 지방은 줄이고 3. 복합탄수화물이 풍부한 콩 등의 식물성 음식을 많이 먹는다"***


댄 뷰트너 역시 세계의 장수식을 관찰했다. 그는 평균수명이 유난히 긴 지역을 블루존(Blue Zone)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꼽은 5대 블루존은 코스타리카 니코야반도, 그리스 아카리아섬, 이탈리아 사르디나, 일본 오키나와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마 린다이다.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채식 위주의 식단', 그리고 '소식'. 특히 식탁의 95% 이상이 식물성 식품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결국, '채식 위주 식단이 건강에 좋다'라는 실험 결과들은 진실이었다. 그것은 채식 관련 전문가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각을 고집하여 도출한 결론도 아니었고, 엉성한 유사과학도 아니었다. 세계 곳곳의 장수인들이 지금도 자신의 몸뚱이로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라는 주장에 대고 '왜 그런 편협한 주장을 하느냐'라고 비난하지 않듯, '채식은 몸에 좋다'라는 말을 향해 '균형을 잃은 치우친 주장'이라고 공격할 수는 없다. 물론 줄담배를 피우면서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를 위해 '특수성'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담배를 많이 피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보편이다. 채식 위주로 먹으면 건강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보편이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에 기대기로 했다.


이제 증거 찾는 일은 그만뒀다. 더 이상의 증거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풀어야 할 다른 고민이 있다.


내 몸에 좋다고 해서 그것이 꼭 가장 좋은 수라는 법은 없다. 나를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누군가에겐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오리털 파카는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그 옷을 위해 오리는 학대 당한다. 일회용품은 사람의 노동을 줄여주지만 지구를 망가뜨린다. 혹시 내가 먹으려는 식단이 다른 생명이나 지구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조선일보 공동 기획, 『장수의 비밀』, 조선일보사

**. 박상철·이미숙·이철호·김경철·신동화·박현진·권대영·채수완, 『건강 100세 장수식품 이야기』, 도서출판 식안연

***. 발터 롱고, 『단식 모방 다이어트』(원제는 『The Longevity Diet』로 직역하면 '장수 식단'), 지식너머

****.http://realfoods.co.kr/view.php?ud=20180103000106&pg=11&ret=search&search=%ED%98%84%EB%AF%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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