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지속 가능할까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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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이 조여오는 기억이 몇 개 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의 사건이 그중 하나이다.


출산은 참 힘들다. 아이를 낳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다. 그러나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팔자 좋은 산모는 드물다. 여느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출산과 회복에만 산뜻하게 마음 쏟을 형편은 못 되었다.


출산한 지 몇 시간 안 된 나에게 가족 A와 B가 번갈아 왔다. A와 B는 서로에 대한 불만을 누워 있는 나에게 와르르 쏟아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이 달랐다. 서로에게 많이 실망한 상태이기도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방금 전까지 피와 물과 아기를 쏟아내느라 진을 뺀 사람 앞에서까지 하소연을 해야만 했겠는가. 그들의 속상함을 이해했다. 이해했지만 힘들었다. "지금 그런 말을 듣고 있으려니 힘들다"라고 그들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냥, 혼자 남은 병실에서 울었다.


며칠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위가 몹시 아팠다. 아픈 배를 잡고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 비싼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면서 위는 차차 회복됐다. 대충 나은 몸으로 조리원에서 퇴소했는데 다시 배가 아팠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끙끙 앓았다. A와 B는 아픈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나는 병원 베드에 누워 링거를 달았다. 누워있는 내 앞에서 A와 B는 소리 높여 싸웠다. 두 사람의 다툼에는 서로에 대한 쌓인 감정도 있었지만, 아픈 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팽팽한 의견 대립도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가 아픈, 링거를 꽂은 나는, 울면서 그들을 말렸다. 눈물이 빨리 그쳐 지지 않아서 며칠 더 흘려야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게 다 내가 아파서 그렇구나. 내가 아파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에게 갈등의 빌미를 주었구나. 앞으로는 절대 아프지 말아야겠다, 라는 허황된 다짐을 가슴에 꾹꾹 눌러 새겼다.


나는 건강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목숨 걸고 편식하다」라는 MBC 다큐를 발견했다. 다큐에 나오는 황성수 박사님의 모습과 영상의 내용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현미, 채소, 과일을 먹고 중병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다큐를 다 본 후엔 황성수 박사님이 쓴 『현미밥 채식』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나도 따라 해 봐야겠다는 충동이 진동했다.


출산 후 몇 개월이 지나자 몸이 꽤 회복됐다. 그때부터 슬슬 몸 관리를 시작했다. 소량의 현미밥과 채소 반찬들, 과일을 식단의 대부분으로 채웠다.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갈아 만든 그린스무디도 매일 마셨다. 하지만 오래된 고정관념 때문에 육식 단백질을 포기하지 못했다. 매 끼니마다 닭 가슴살이나 삶은 계란을 곁들여 먹었고 저지방 우유도 마셨다. 운동은 하루에 한 시간씩 했다. 근처 운동장을 걷든,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든, 무조건 한 시간을 채웠다.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은 꽤 강력했다. 그런 생활을 1년 동안 견인해 줄 만큼 강력했다. 1년 뒤 나는 제법 건강해졌다. 잇몸 붓기나 비염 같은 고질병은 그대로였지만 임신으로 붙었던 군살 10kg 정도가 빠졌다. 몸에 힘이 붙었으며 컨디션도 올라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먹던 음식과 과체중인 몸뚱이로 서서히, 기어이 돌아가고야 말았다.


의지 부족 탓도 있겠지만, 그때의 생활은 나에게 지속 불가능했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유아 두 명을 독점 육아 중이었다. 살림도 주로 내 몫이었다. 프리랜서의 자아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밤잠을 줄여 그림도 그렸다. 그런 와중에 운동시간도 확보해야 했다. 나의 건강식, 둘째의 이유식, 남편과 첫째의 일반식을 각각 하루 세 번씩 차려야 했다. 또한 나는 평소보다 적은 양을 먹었다. 이 모든 걸 계속 해내는 건 버거웠다.


나는 오래된 습관으로 컴백해버렸다. 정제 식품, 육식, 가공식품을 내키는 대로 먹었다. 5년 동안.


그렇게 살다가 건강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순간, 나는 날 건강하게 해 주었던 현미채식의 추억을 떠올렸다. 나를 개선했던 그 음식들을 5년 만에 소환했다. 이번에는 1년 만에 흐지부지하고 싶지 않았다. 1년이 아니라, 사는 내내 건강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먹을 식단은, 몸에 좋은 동시에 지속 가능해야 했다.


황성수 박사님의 현미채식은 번거롭지 않다는 면에서 완벽하게 합격이었다. 방법이랄 게 없었다. 현미밥과 채소와 과일을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으면 되었다. 그게 끝이었다.

거기에 육식 재료는 완전히 빠져있다. 그것만으로도 식단이 단출해질 수밖에 없다. 육식 재료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없으니 설거지 또한 쉽다. 육식을 겸해서 먹었던, 내 멋대로의 현미채식 흉내를 내려놓고, 이번엔 지침을 그대로 따라보기로 했다.

채소는 생채식에 가깝게 먹거나 약하게 조리해서 먹으라고 하셨다. 요리하는데 드는 품이 거의 없는 셈이다. 황 박사님은 이 식단을 건강한 패스트푸드라고 말씀했다. 꼭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다음 문제는 내 입맛과 의지였다. 나는 가공 음식, 달고 짠 음식, 부드러운 음식, 고기와 유제품에 푹 절여져 있었다. 배고플 때뿐 아니라 심심하거나 피곤해도 저런 것들을 먹었다. 화나거나 슬플 때도 먹었다. 잠을 깨기 위해서도 먹었다. 난 먹는 것에 취약했다. 이런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청정하기 그지없는 현미채식을 나 같은 사람이 지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걱정을 하던 중 어떤 영상에 눈이 갔다. 힐링스쿨에 참가했던 어느 노년 여성의 인터뷰였다.* 힐링스쿨은 황성수 박사님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2주간 현미채식을 체험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배우는 곳이다. 그 여성 참가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이 식단을 유지하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자녀들을 언급하며 얼른 의지를 굳혔다. "그래, 나는 엄마니까, 엄마는 뭔들 못 할 거예요? 가서, '나는 엄마'라는 것을 써서 붙여놓고…"


저 말을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전투력이 솟았다. '그래, 나도 엄마니까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 곁에 오래 건강하게 있어주고 싶다. 한다면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세상에 현미, 채소, 과일 말고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해보자. 내 몸에 맞는지 안 맞는지 66일 동안 실험해보자.'


66일. 저 기간은 하나의 행동이 습관이 되기까지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이다. 영국 런던 대학교 제인 워들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이다. 66일 동안 꾸준히 같은 일을 같은 시간에 반복하면 마침내 그것이 몸에 밴다는 이론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66일 습관 달력을 다운로드해 프린트한 뒤 냉장고에 붙였다. 가족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습관 달력을 걸어 놓고 공개적으로 현미채식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 사람(또는 특정한 무리)의 이야기만 듣고 혹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황성수 박사님의 주장(그리고 수많은 힐링스쿨 졸업자들의 놀라운 증언들)만 듣고 식단을 바꾸는 건 무모한 행동일 수 있다. 힐링스쿨 참가자들은 고작 2주 동안 채식을 했을 뿐이었다. 과연 평생 지속해도 괜찮은 걸까. 채식만 하면 부작용은 없을까.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먹지 않는 식단을 내 몸에 적용하기는 처음이었다. 평생 처음 시도해보는 채식 앞에서, 나는 또 다른 이들의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https://youtu.be/kuyYeQsV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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