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노트_ 동쪽여행
출근 후 나의 아침은 늘 일정하다. 바다를 마주한 동해의 공기를 마시며 맨발 걷기로 하루를 열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문화원 찻집 ‘소담채’에서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신다. 습관 같지만, 사실 이 시간은 밤새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모으고, 새로운 하루의 흐름을 정리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동해문화원 원사에 있는 소박한 찻집 소담채는 특별한 온기가 있다. 흔하고 화려한 카페가 아니다. 아침마다 반겨주는 두 분의 직원 누님들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정성 어린 간식을 내어주신다. 때로는 잘 깎은 사과, 때로는 쫄깃한 떡, 따끈따끈 한 삶은 계란, 봄동 메밀 전, 그리고 요즘은 껍질을 벗긴 노란 고구마가 내 찻잔 앞에 자주 놓인다. 온기가 남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면, 단맛과 함께 전해지는 따뜻한 정성이 하루의 시작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영국 런던 문화기반시설에서 얻은 추억
몇 년 전, 정부 지원으로 영국 런던에서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도심이 아닌 외곽 지역을 돌며 문화기반시설을 탐방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도서관, 문화센터마다 북카페와 찻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책을 읽거나 전시를 관람한 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공간들은 사람과 문화가 만나고, 사색과 영감이 오가는 장소였다.
그때 생각했다. 우리 문화원도 이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자연스럽게 문화가 흐르는 공간. 하지만 현실적인 예산, 운영 문제와 인력 배치 등 난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의 모 과장이 문화원이 기업메세나로 조성한 북카페 공간을 활용해 카페를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문화원에는 책방과 찻집을 겸한 ‘소담채’가 들어섰고, 시 차원에서 일자리와 연계한 직원 두 명이 5년간 배정되어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문화원의 새로운 숨결, 소담채
소담채가 자리 잡고부터 문화원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원래 문화원은 행정 업무와 프로그램 운영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커피 향이 퍼지고, 사람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생동감 있는 공간이 되었다. 방문하는 시민들도 500여 명의 문화학교 수강생들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수업도 참여하고, 때로는 문화원도 둘러보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소담채는 휴식의 공간이면서도, 문화를 느끼는 공간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문화적 영감을 얻고,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튼다. 고구마 한 조각에도 담긴 따뜻한 정처럼,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이어지는 소중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찻집이 있는 문화원의 가치
문화예술 공간에서 찻집은 부속 시설이 아니다. 차를 마시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기에, 문화는 더 깊이 스며든다. 빠르게 소비되는 전시나 공연과 달리,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 문화는 더욱 살아난다.
나는 매일 아침 소담채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문화는 결국 머무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찾고, 그 여유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열어갈 때, 문화의 본질은 더 깊이 자리 잡는다.
오늘도 나는 고구마 한 조각과 모닝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연다. 그리고 그 하루는 단순한 업무의 연속이 아니라, 사람들과 문화를 잇는 또 하나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