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는 삶의 방식!

2. 해변을 걷자

by 조연섭
동해의 아침은 선택받은 시간
망상해변 걷기, 조정국 한국축제감독회의 회장, 사진_조연섭

동해에서 아침을 여는 일은 선택받은 시간이며 복 받은 장소다. 걷기는 혼자가 좋다. 과거 동해의 명품일출장소 추암이나 전천을 걸을 때 몇몇 지인이 참여한 기억이 있다. 1년 채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춥다, 덥다, 바쁘다 등 일정으로 대부분 쉽게 포기한다.어느순간 걷자고 제안을 해도 걷기는 혼자 걷기가 좋다고 경험을 전하게 됐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나만의 시간과 걷기 계획에 방해가 되고 효과적인 걷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혼자 걷기의 편리함에 익숙

어느 순간 혼자 걷기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뭔가 혼자 한다는 것의 장점은 시간, 속도, 장소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쁜 현대 시대에 누군가와 약속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지인과 친구가 많지만 정작 만나게 되는 경우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먹고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정작 친구들을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만나는 일은 드물다. 가까운 지인 둘이 만나려고 해도 적어도 1주 전에는 해야 하고, 서너 명이 만나려면 한 달 전에는 서로의 일정을 맞추어 봐야 한다. 그렇지만 혼자 바다를 걷거나 산을 갈 때는 나만 시간이 되면 된다. 가고 싶을 때, 시간이 날 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내 체력이 부담되지 않는 전천이어도 되고, 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으면 무릉계나 청옥산으로 가도 된다.

군중사회 벗어나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안전과 성공을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디에 속해 있는가?, 누구와 만나는가?'를 중요시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가?' 를 중요시 여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우리가 인식은 못하지만 우리는 세상이 설정한 틀,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의 틀에 길들여지고 있다. 집단의 도덕, 윤리, 종교교리, 인습, 개념은 우리가 늘 입는 옷처럼 편하게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심지어는 먹고 자고 놀고 하는 행동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이 틀에서 벗어나려면 집단의 사정없는 비난과 탄압이 가해진다. 그래서 현대인은 자유인 인 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의 창의성도 제한된다. 그런데 혼자 걷는 것은 이런 비난을 피하면서 오롯이 잠시나마 개인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집단 속에서의 무기력한 내가 아닌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남들과 함께 하면서 안전함을 느꼈다면, 남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한 날로 늘어나는 사회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걷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조용한 숲길의 새소리 들으며 걷는 것도 좋고,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망상이나 추암해변을 거닐며 마주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어디든 걸으며 나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도 혼자 걷기의 즐거움이다. 혼자일 때, 내가 어디에 속해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사람들이 자유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독을 즐기면서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가장 나답게 행동할 수 있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 가식적인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시간

청옥산을 가거나, 추암해변을 가거나 우리는 늘 혼자 걷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혼자 걸을때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동행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고, 동행의 말에 맞장구치지 않아도 된다. 걸으며 내 생각에 내가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내 속에서 들여오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게 된다. 고독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 사색을 즐기며 걷는 것도 좋다. 자신 속에 깊이 빠져들어 가며 혼자서 걷는 일이야 말로 '고독 즐기기'의 진수라고 하겠다. 혼자서 걷다 보다 무의식적으로 걷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되새기면서 걷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혼자 걷는 것은 걷는 환경 속에 있지만, 그곳이 추암해변이던, 망상해변이던, 두타산 주변이든 오로지 온전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집중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시작해서 나는 누군가로 귀착되는 물음 속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풀리지 않는 대답을 찾는 시간이다.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사유하기 위하여 홀로 걸었던 것이 그냥 이유 없이 한 일은 아니다. 소설 '대지'의 작가인 펄 벅 여사는 자신을 찾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 속으로 자주 들어갔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

저가 살기 좋은 동해에 정착한 지는 약 25년 정도 된다. 동해로 거주지를 옮긴 이유는 종합방송, 케이블 TV가 탄생되던 1990년 중반이다. 직장 문제였지만 동해가 이토록 살기 좋은 지역인지는 미처 몰랐다. 특히 아침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동해에 정착하면서 해파랑길, 추암, 전천 등 다양한 길에서 약 13년 정도 아침을 만났던 시간은 행운이며 가장 소중한 추억들이다. 또 현재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 선택은 해변 맨발 걷기다. 매일 아침 60분 이상을 걷고 있다. 평일은 아침 6시 추암을 걷고 주말은 망상해면에서 걷는다.

혼자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우에니시 아키라의 '혼자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 고독을 통해서 우리는 위로받는다고 했다. 왜 우리는 안 좋은 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으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바로 혼자일 때의 '위로 효과'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내면은 본능적으로 고독이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한없이 바닥을 칠 때 외부의 도움을 얻으려 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때로는 고독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혼자 있기' 또는 '혼자 걷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책의 저자들은 상당수가 현실에 치이고 도피성 또는 위안을 찾기 위하여 홀로 걷는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이처럼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다비드 드 브로통은 그의 책 '걷기 예찬'에서 걷기는 많은 발걸음들에 점철되어 있는 고통은 세계와 느린 화해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삶을 사는 즐거움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자리를 찾게 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는 과잉의 시대이다. 먹는 것은 지나쳐서 비만이 문제가 되고, 사회적 관계가 지나쳐서 자기 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 지나침에 지쳐서 '슬로푸드', '제로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홀로 해변 맨발로 걷는 일도 '슬로 라이프'의 한 방법이며 맨발 걷기는 '삶의 방식'이다.

아치가 선명한 맨발, 사진_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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