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프롤로그
엄마, 나랑 친구 할래?
아이가 25개월이 되던 봄이었다. 춘천 상상마당 잔디밭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내 눈을 바라보며 친구 하자고 했다. 웃는 아이의 얼굴 뒤로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걷힌 파란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가 일렁인다. 이런 영화 같은 순간이라니. 고민할 새도 없이 좋아! 하고 대답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어느 순간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언제 엄마라고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태어난 지 이제 막 한 달 지난 아이가 무심코 던진 옹알이에 엄마라고 한 것 같지 않냐며 호들갑 떨곤 했지만 아이는 음마, 마마, 맘마 같은 단어를 지나며 조금씩 나를 또렷하게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천천히 또렷하게 엄마 그리고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가 두 발로 아장걸음을 내딛던 여름밤, 남편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왠지 이 타이밍에 반대하면 평생 원망을 들을 것 같았다. 아니 내가 후회할 것 같았다. 그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할 걸 하고 말이다. 신랑의 떨리는 눈을 보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날 이후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 자신의 고민을 이어갔다. 여러 달 고민 끝에 신랑은 프랑스에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유학은 여러 시험을 통과해야 갈 수 있고 시험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시원하게 해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원하게 합격할 줄은 몰랐다.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 신랑과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며 술 한 잔을 했다. 신랑에게 아이가 걱정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걱정됐지. 그런데 문뜩 이 아이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어디서든 잘 지내 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 그냥 내 선택을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달까. 우리는 친구잖아.” 몇 달 후 우리 셋은 그렇게 희망 사항 같은 믿음을 품고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낯설고 서툴지만, 우리 셋이 같이 있으면 꼭 한국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우리 셋은 낯선 곳에 도착하면서 일상 하나하나를 모두 같이 겪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많은 감정을 공유해야 했다.
설거지하다가 유튜브의 추천으로 <어쩌다 사장>이라는 예능 프로를 보게 되었다. 영상에 한 엄마와 아들이 나왔다. 아들 엄마가 되고 나니 아들과 엄마가 같이 있는 풍경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다정한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다. 화면 속 엄마는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완전히 기억을 잃으셨다고 했다. 기억 없이 오롯이 혼자였던 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고도 하셨다. 사고 이후 정말 혼란스러웠지만, 기억을 잃기 전 적어놓은 아이들과의 기록들 덕분에 다시 엄마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나도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프랑스에서의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순간순간 반짝이던 아이의 말들도 같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세 살 이윤이와 함께 한 일상들을 남겨두고 싶어졌다. 아이의 말들을 붙잡아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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