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민 Jan 21. 2022

밖이 밖인 이유

04 | 두 언어 사이에서

01. 밖이 밖인 이유


  주말 아침 바게트를 먹던 아이가 갑자기 놀라운 걸 발견했다는 듯 소리쳤다.


  -  엄마! 나 알겠어! 왜 밖을 밖이라고 말하는지.

  -  왜?

  -  바게트를 사러 나가려면 밖에 나가야 해서 밖이야.

  -  으응? (5초 정적 후) 아!!


아이에게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넘나드는 아재 개그가 생겼다.



02. 저 놈!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아이의 모래 놀이 장난감을 챙겨 도빌 바닷가로 향했다. 겨울바람이 차가웠지만 햇살도 좋고 파도 소리도 잔잔히 좋았다. 챙겨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바닷가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는 갑자기 볼일이 급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점심시간이라 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앞에서 안내하시던 분이 인원을 확인하다가 동동거리는 윤이를 발견했다.


  -   Jeune homme (저놈, 어린 사람)이 있는 가족은 먼저 화장실 이용하세요.

  -  아빠, 나보고 저놈이래… 히히.


  우리는 저놈 덕분에 빠르게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저놈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03. 꿀


  아이는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새로운 표현을 익혔는지 집에 오는 길 내내 즐거웠다. 저녁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아빠와 레고 만들기를 하였다. 옆에서 아빠가 만든 레고를 보더니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  오! C’est cool (쎄꿀, 멋있다)! 

  -  멋있다고 해줘서 고마워.

  -  아빠! 꿀 알지? 꿀! 꿀이야!


  친구들이랑 놀면서 들은 이 문장에 익숙한 단어가 들어있어 귀에 더 쏙 들어왔나 보다.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달달한 향기가 날 것 같다. 



04.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교 시간. 교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엄마 아빠 품으로 달려간다. 아이도 반갑게 엄마를 외치며 달려왔다.


  -  엄마! 엄마! 나랑 이 놀이할래요?

  -  무슨 놀이인데?

  -  (나무에 기대서서) 1,2,3, soleil (솔레이, 태양)!

  -  아! 이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네!

  -  어? 엄마도 이거 알아?

  -  응! 윤이도 한국에 있을 때 할머니 집에서 종종 했는걸!


  아이는 그랬나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자연스럽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날 이후 아이는 친구들과는 프랑스어로 엄마와 아빠랑은 한국어로 외치면서 두 가지 언어 사이를 열심히 오간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붙인다. 


  -  그런데 엄마 1,2,3, 솔레이가 더 빠르고 편한 것 같아! 힛!


  아이가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둘 다 편하게 사용해 주면 좋겠는데 그건 엄마의 욕심이라는 걸 알아간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언어가 더 재미있을 테지. 아이에게 마음을 담아 한국어로 더 많이 속삭여야겠다.  



05. 그림책 읽는 시간


  요즘 아이와 프랑스어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다. 항상 아빠가 읽어주던 프랑스어 책을 엄마가 읽어주니 뭔가 낯설면서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집에 있는 한국어 그림책들 위에 열심히 프랑스어로 적어서 윤이에게 읽어줬다. 잠자리에 같이 누워 재미있게 읽던 아이가 당황한 듯 묻는다.


  -  엄마, 그런데 원래 책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

  -  (뿌듯해하며) 아니, 엄마가 윤이에게 읽어주고 싶어서 프랑스어로 써서 붙여놓았지.

  -  (갑자기 대성통곡하며) 엄마, 이거 다 떼줘. 

      프랑스어 여기에 붙여놓지 마. 

      이거 프랑스어로 적힌 책 서점에서 봤어. 

      그 책으로 읽어줘. 

      여기에는 붙여놓지 마. 엉엉.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대성통곡하는 아이를 한참 동안 토닥여줬다. 윤이는 뭐가 그렇게 속상했던 걸까. 아이에게 한국어로 적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일까. 알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시리는 밤이었다.



06. 폴


  수요일 오후,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는 길에 빵집 '폴'이 보였다. 아이가 음악 학교에서 새로 알게 된 친구 폴이 문득 떠올랐다.


  - 윤아, 오늘도 폴 만났어?

  - 응! 그런데 폴 아니고 Paul !


  최대한 아이 발음처럼 다시 발음했다.

  - 응. 뽈

  - 뽈 아니고 Paul이야.


  그 발음이 그 발음인 것 같은데 아아 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하나. 지나가다 Paul이 보일 때마다 연습 중인데 쉽지가 않다. 폴뽈뽈. 폴이 어려워.



07. 노래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윤이의 재롱을 보고 싶어 하신다. 


  -  윤아 노래 한곡 들려줘!

  -  Je suis la galette la galette…

  -  윤이 노래 잘 하네. 한국어 노래도 할 줄 아나.

  -  어쩌지 나는 프랑스 노래만 생각나는데….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 어린이집에서 같이 부르던 동요에서 멈춰있다. 지금은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같이 부르는 프랑스 동요가 더 익숙하다. 동요는 친구들과 같이 부르며 쌓는 추억이구나. 가끔 한국어 동요가 생각 안 나 발을 동동하던 아이에게 더 자주 불러줘야겠다. 어느 날 익숙한 한국어 동요가 들리면 아이가 엄마와 같이 부른 추억으로 문득 기억할 수 있게.



#엄마나랑친구할래 #오늘의이윤

이전 05화 그리워할 게 많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