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생각보다 단단하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 깨져 있는 보도블록들이 있다. 주변의 온전한 블록에 비해 유독 그 부분만 작은 파편으로 깨져 눈에 띄었다. 발로 툭툭 차 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그 조각들은 단단해서 전혀 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근처의 온전한 블록 몇 개는 바닥이 고르지 않은지 금세라도 빠질듯이 덜그럭거렸다.
유난히 여름날의 아스팔트처럼 온 몸이 늘어져 퇴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바닥에 시선을 두고 그 조각난 보도블록이 있는 길을 지나 아주 천천히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또다시 저녁 준비에 집안일이 있다는 생각에 발목에 커다란 쇠덩어리를 달아놓은 듯 했다.
주방에 들어서자 앉을 새도 없이 앞치마를 걸치고 주위를 둘러본다. 싱크대에는 설거짓거리가 가득했고 냉장고 속엔 마땅히 먹을 것이 없다. 바닥 구석에 굴러다니던 먼지와 머리카락은 넘어가는 노을빛 사이로 왜 그리 눈에 잘 보이던지. 거기에 소파 위에 산을 이룬 빨래까지.
우선 세탁기를 돌린다. 보이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밀대로 청소했다. 넘치는 쓰레기를 정리해 봉투을 묶고 고무장갑을 끼고 씽크대 앞에 섰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점점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거품처럼 가슴 속에서도 뭔가 끓어 오르고 있었다.
그때 집에 들어온 첫째 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자기 물건을 누가 건드렸다고 갑자기 짜증을 냈다. 별거 아닌 그 한 마디에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내가 지금 놀고 있는 줄 알아!”
한 번 터진 폭탄은 연료를 다 써버릴 때까지 폭발이 이어진다. 온 몸의 거친 에너지가 밖으로 막 쏟아졌다. 서러움에 북받쳐 올라 그만 눈물까지 나왔다. 소리인 듯 절규인 듯 토해냈다. 그것도 아이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말에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을 아이는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차라리 그렇게 얘기를 하라고.”
창피했다. 아이에게 화가 났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한 마디가 스위치가 되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민망하고 미안했다.
입맛이 없어 가족들 저녁만 챙겨주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 쪽 그 깨진 블록들이 보였다. 발밑에 두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작은 조각들이 어느새 흐려져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라리 그렇게 얘기하라고.’
큰아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교양 있는 듯, 좋은 엄마인 듯 코스프레하며 그저 참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러다 이렇게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고 말았으니 참 부끄러웠다.
깨진 블록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조각만 빠져도 금방 우수수 떨어져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깨진 블록들은 깨진 모습 그대로 그사이를 작은 흙들이 채워주며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온전한 블록보다 더 단단하게 서로를 잡아주듯이. 나도 그래야 했다. 나의 불완전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며 삐걱거려도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했음을, 그렇게 서로의 틈새를 이해와 사랑으로 채워야 했음을, 그 시작은 내가 먼저 솔직해야 했음을.
메세지가 왔다.
‘엄마, 내가 짜증내서 미안해.’
‘아니야, 좀 피곤해서 예민했나봐. 엄마가 미안해.’
조금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제 부족한 나를 그대로 보여줄 용기를 낼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