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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씨 Feb 14. 2022

입술-1

첫째 날, 7월 7일 토요일


첫쨰날, 7월 7일 토요일


 오후 22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나의 심장은 정열적으로 타오르고 있으며 나의 눈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정했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따라가 본다. 파리의 특성상 골목이 많고, CCTV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환경의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 흥분을 멈출 수 없다. 손이 바르르 떨린다. 골목으로 따라 들어가고 있다. 집에서 가져온 망치를 가방에서 꺼냈다. 망치 손잡이 부분의 나무가 나를 진정시켜주는 것만 같았고 망치 의 쇠 부분의 차가움은 나를 냉정하게 만들어 줬다. 이제 시작한다.

 조용히 접근해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친다. 소리가 내 귀의 안쪽으로 흘러들어온다.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비명과 함께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나를 뒤덮는다. 망치에 피가 묻었다. 괜찮다, 집에 가서 깨끗하게 잘 닦으면 될 것 같다. 이제 그를 앞으로 돌린다. 역시나 아까 봤던 그대로다. 그의 입술은 너무 탐난다. 가방에서 가위, 장갑 그리고 유리병을 꺼낸다. 입술을 잘라 본 적이 없어 흉터 없이 잘 자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갑을 낀 후 그의 입술을 잡았다. 빨간색 도톰한 입술을 잡고 자르는 선을 따라 오리듯 가위질을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잘 잘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도 고기인가?? 생고기를 자를 때처럼, 가위가 잘 들지 않는다. 젠장, 입술이 너무 삐뚤어지게 오려졌다. 피 때문인지 더욱 진해진 빨간색 입술이 나를 너무 설레게 한다, 삐뚤어져도 괜찮다, 가지고 싶다. 자른 입술의 덜렁거리며 붙어 있는 살 조각을 가위로 마무리하고 유리병 안에 예쁘게 담았다. 너무 두근거린다. 행복하다, 나는 해냈다. 빠르게 유리병을 가방에 집어넣고 망치는 장갑으로 대충 닦은 후 가방 안에 넣었다. 재빠르게 번화가로 나왔다. 공기가 상쾌하다, 세상이 아름답다, 불빛이 포근하며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왔다. 찬바람을 맞아 몹시 피곤하다. 밖에 나갔다 왔으니 손을 씻어야 한다. 옷을 갈아입은 뒤, 입술을 꺼내 일을 시작한다. 외출복과 잠옷의 경계를 두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오늘 입었던 옷은 버려야 할 것 같다. 핏자국이 많이 튀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잘 버릴 생각이다. 아끼던 옷이었는데, 신중하지 못하였다. 거시적인 첫날이라, 좋아하고 소중한 옷을 입고 시작하고 싶었었다. 다음 작업부터는 입지 않은 옷 혹은 헌 옷을 새로 구매하여 입고 나가야 할 것 같다. 옷을 갈아입었고,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사과 주스를 꺼냈다. 역시 물보다는 달콤한 사과 주스가 바른 판단이었다. 현관에 놓아둔 가방을 열어 망치와 입술을 담은 유리병을 꺼낸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화장실에 들어가 망치 버려 부분에 묻은 핏자국을 열심히 지워본다. 회색의 차가운 망치의 머리와 빨간색의 정열적이며 뜨거운 피의 만남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둘은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내가 그들을 이어주었고 만나게 해줬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 된다.

 그들의 애틋한 만남을 뒤로한 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닦기 시작한다. 피는 콜라와 함께 씻겨 내려져 간다. 콜라는 핏자국을 지우는데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존재를 삭제시킨다. 홀로 남겨진 망치는 더욱더 차가워 보이고 외로워 보인다. 유리병의 표면에 묻은 핏자국 역시 지워야 한다. 피우는 역한 냄새가 난다. 피를 지워야 하는 이유다. 잘 닦은 유리병과 망치를 챙겨 화장실을 나온다. 망치와 유리병을 방에 가져간다. 입술을 꺼내기 전, 손 소독을 해야만 했다. 입술을 만지는데 라텍스 장갑의 방해 따위는 받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의 촉감으로 느끼고 싶었다. 입술의 체온을, 입술의 감촉을, 입술 주름의 들어감과 나옴을 내 손가락, 내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황홀경을 느낀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내 뇌까지 부드럽다는 촉감이 타고 들어온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이 감각은 내 것이 아니지만 내 것인 것처럼 내 안에서 춤을 춘다. 감각의 춤은 선명하고 끊이지 않는다.  붉게 타오르고 있는 입술은  내 눈을 타고 들어와 내 시신경 속으로 침투한다. 사프란의 붉은색이 나를 휘감을 때, 잔잔한 호숫가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있듯이 주위는 고요해진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입술을 방부 처리하기 위해, 책상 서랍 속 아마존에서 사놓았던 방부 처리제들을 꺼낸다. 장갑을 낀 후, 설명서와 함께 입술에 방부처리를 시작한다. 방부 처리제의 냄새는 너무나 지독했고 토가 쏠렸다, 하지만 전야제를 위해 이는 기꺼이 참을 수 있었다. 다행히, 금방 끝났고 우선 이를 먼저 정리했다, 아무래도 깔끔한 게 좋다. 입술을 모으기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검은색 참나무 선반으로 입술을 가져갈 것이다. 검정과 빨강, 이 두 개의 색 조합은 아프로디테 적이다. 이 모습을 본다면, 올림포스의 신들 역시 감동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로써, 첫 번째 칸, 첫 번째 입술이 전시되었다. 오른쪽 눈썹을 중지로 쓰다듬으며 선반을 바라본다. 남은 11개에 대한 미지의 이미지가 나를 자극함과 동시에 자책감이 몰려온다, 사실, 오늘 나의 작업은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입술을 잘라낼 때 단면에 대한 음량도 아름답지 못했으며 균일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침착함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잘라내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은, 이제 잠이 들어야 할 것만 같다. 몹시 피곤하다. 샤워한 후, 데오도란트를 뿌렸고, 향수를 온몸에 감은 채 침대에 누웠다. 이제 잠을 잘 때다. 10일이 남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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