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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씨 Feb 16. 2022

입술-4

넷째 날, 7월 10일 화요일


넷째 날, 7월 10일 화요일


 오전 7시, 알람이 소스라치게 울린다, 지옥과 같다. 연차의 종료와 함께,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단테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나를 지배한다. 출근하는 날의 나는, 내가 아닌듯하다,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정신 속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꺼내며, 바꿔 갈아 낀다. 웃어야 하며, 친절해 야 한다,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사회비판을 마다치 않고, 내가 손해를 볼지언정, 그들만을 위한 노래를 불러주어야만 한다. 내가 타인과 살아가는 방식이다. 지옥과 같은 출근임에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느낀다, 글을 쓰며, 세상의 회전을 직접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추악함을 비판할 수 있으며, 사회의 역겨운 구석을 활자에 옮겨, 마녀를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워 버린다. 이를 통해, 내 욕망에 대한 출구를 발견하며, 개 같은 자본주의와 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된다. 나는 돈에 대한 해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예들과 다르다, 나는 자주적이며, 그들과 다르게 결단력이 있으며 행동할 수 있다. 그들은 오답이고 나는 정답임이 분명하다. 이원론적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단언한다.


 출근용 양복을 입고, 맥북을 담은 가방과 함께, 지하철을 향해 걷는다, 오늘의 해는 어제와 다르게 나만 을향해웃어주고 있다, 해에 대한 소유권을 찾아왔음에 만족하며, 안심된다, 영영 그에 대한 사랑을뺏 기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한편으로는 했던 것 같다. 붉게 타오르는 레드카펫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우아하게, 눈에 띄게 걸음을 걷는다. 사람들은 나를 경외심과 함께 쳐다본다, 나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자연처럼 두려워하며 동경한다. 이들의 시선은 늘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들에게 받는 사랑과 공포감 역시 기분이 좋다.


 회사에 도착한다. 동료와 아무런 영양가와 경제성이라고는 눈곱만큼이라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이용하여 웃으며 나눈다. 휴가동안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날이 덥지 않느냐라는말에 반응해주고, 그들에게 나와 대화를 할 기회와 동시에 대답을 들을 수 있는 큰 영광을 준다. 자리에 먼지가 가득하다, 내가 없어 외로워했을 내 공간들에 미안함을 담아 사과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먼지를 털고 물티슈로 그들 위에 쌓인 더러운 자들의 부스러기를 닦아낸다. 이제 나를 받아들일 준 비가 된 공간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전, 인터넷을 켜, 나의 소식이 올라왔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기사를 찾아본다. 제기랄, 없다. 실망감이 내 목을 조른다. 목젖을 누르는 압박감에 눈물이 고인다. 세상은 역 시 낮은 자들을 배척하는 쓰레기와 같은 집단이다. 오른쪽 눈썹을 중지로 쓰다듬는다. 이따위 세상은 없어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옆 동료에게 일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는다. 전화기를 꺼내,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지인들과 경찰관들에게 연락을 돌려본다. 그들에 대한 거짓 존중과 거짓 감탄과 함께 정보들을 얻어낸다. 얻어낸 정보를 통해, 일을 시작한다.


 많은 휴식 뒤에 시작하는 일이기에, 쓰고싶은표현들과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들은섞 이고 엉켜, 자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며, 자신들의 영토를 구축한다. 다만 이 영토의 중심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문장의 힘과 권력은 같다, 그들의 리좀과 같은 모습을 구축해내고 있으면, 머릿속은 어느새 입술의 이미지가 서서히 조금씩, 안개와 같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입술에 대한 집착이 떠나질 않는다, 나 의 입술들도 글들과 같이 모두가 공평하고 아름다우며 공간을 지배함을 바란다. 글들을 적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근처 비스트로에서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를 시작한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에 돈을 지급하며, 끼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에 맞장구를 치며 공감한다. 식사를 마친 후, 그들과 헤어져 커 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알롱제 한잔과 각설탕 4개를 부탁한다. 조금이나마 영적인 휴식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항상 영적인 소비를 재촉하며 옷깃을 잡아끄는 아이처럼 나를 귀찮게 군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른쪽 눈썹을 중지로 쓰다듬으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띠링’이라는 소리와 함께 미간을 부술 듯 찌푸리며, 휴대전화기를 확인한다. 문자를 확인하며 미간의 주름을 풀며 행복 한 웃음을 짓는다, 메스가 도착하였다. 퇴근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는 이 때문임이 분명해졌다. 불쾌 하 기 짝이 없는 하루 중, 우연히 받게 된 깜짝 선물이기에 어린아이 마냥,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노동이라는 계약서가 만들어낸 억압을 빠르게 집어던지고 싶다, 아직 퇴근까지는 4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고통 속의 의지가 더욱 빛나는 법이며 그것이 삶의 의지이며 곧 나타나게될표상이라는것 을 알고 있기에, 고통을 참으며 다시 일할 준비를 시작한다.


 오후 18시, 일이 종료되었다,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고, 사람들과 아주 어색한 안녕을 건네고 내일 하루를 약속하며 나의 보금자리를 향한 경쾌한 발자국과 함께 회사를 나온다. 오후의 태양은 화려하고 역동 적으로 타올랐던 자신의 불꽃을 조금씩 이불 안으로 집어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친 몸에 따뜻하고 감 동적인 빛의 조각들이 박힌 채로 집에 도착한다. 피곤이 쓰러질 듯 몰려온다, 긴 시간의 노동과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하지 않았던 외부와의 접촉이었기에, 내 몸의 기계들은 내가 주인이 아닌 것처럼, 명령을 듣지 않는다. 집 앞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옷을 정리한 후, 소파에 앉아 택배를 열어본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듯, 아주 조심스럽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천천히 상 자를 연다. 상자 속, 잘 포장된 메스가 보인다, 설명서와 상자는 잘 정리하여, 쓰레기통에 처박아 둔다. 메 스는 무섭게 서늘했지만, 태양이 주는 빛의 반사로 따스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동 시에 스며들어오는 극단적인 감각에 의해 언어를 잃어버렸지만, 메스를 해부하고 훑어보는 눈과 손은 멈추지 않는다. 눈은 메스의 날카로움에 난도질당했으며, 날을 만지려던 손가락은 이미, 따뜻하고 아름 다운 진홍색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선반에 위치시킬 결핍된 입술이 욕구를 생성한다, 동시에 새로운 물질이 욕구를 끊임없이 강한 세기로 자극함을 관찰할 수 있었다.


관찰의 종료와 동시에, 배고픔이 몰려들어 왔다. 생명의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절망적으로 배가 고프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장을 보러 나선다. 퇴근 후, 도시는 일에 대한 해방으로 생명력이 꿈틀 거리며 도시를 헤집고 다닌다. 수백 개의 입에선 다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 녹색의 끈적끈적한 늪과 같은 불쾌한 목소리와 연 분홍색의 살랑거리는 연기와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함께 섹스하고 있다는 것이 이내 짜증을 유발한다. 내 앞에 걸어가는 육중하고 못생긴 남자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입술을 오므 리고 열며, 쩝쩝거리는 메스꺼운 소리와 함께 샌드위치를 씹어먹는 중이다, 입가엔 샌드위치의 부스러 기들이 붙어있고, 소스의 흔적들과 더럽고 냄새나는 침들이 엉켜 입술 위에 앉아있다. 저 이의 입술은 필 요도 없으며, 어떠한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제발 내 눈앞에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입 술이라는 같은 물체임에도, 생김새와 기능은 이렇게 다르다, 저들의 입술은 역겹기 짝이 없고, 내가 선 택한 입술은 에로 테스들의 합창처럼 감미롭다. 나의 행위와 강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에 대해 인식하고, 못생김을 배척하며, 미학에 대한 수준이 높아짐과 기준이 생성될 것을 확신한다. 열등들은 우 등이 탈출한 공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노력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하늘 위에 안착한 우등 들은 공허를 탈출하려는 미천한 것들을 보며, 발길질하며 올라오지 못하 도록 노력할 것이다. 양극의 치열한 싸움으로 보편적인 미의 기준은 올라갈 것임이 분명하고 이는 모든 이에게 공평한 영광의 찬가가 될 것이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보니, 공간과 시간에서 잠시 멀어짐을 느꼈다, 제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마트의 감 시자는 오늘도 무뚝뚝한 말투와 인사로 나를 반긴다. 재빠르게 저녁거리를 골라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와문을염과 동시에, 외부의 역겹고 이질적임이 섞여있는 냄새와 내부의 하나의 층층이 쌓여 있는 아름다움의 퇴적에 대한 냄새가 구분된다. 내부의 냄새는 외부의 냄새를 강하게 밀어내고 내 몸에 어있던 냄새들을 먹어치운다. 손을 씻은 후, 장바구니를 정리한다. 오늘의 저녁은 파스타다, 노동 후의 요리는 무기력한 과의 전쟁이다. 옷을 갈아입은 후, 파스타를 만들기를 시작한다, 면을 삶고 소스를 만든 후, 이 둘을 합친다. 요리를 접시에 옮김과 동시에 설거지를 한 후,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입술은 면을 만나고 조용히 재료들을 해체하고 잘게 잘게 쪼개며, 단맛과 짠맛 그리고 신맛의 소용돌이가 벌이는 축제 속에서 혀는 춤을 추며, 재료들의 질감이 주는 즐거움을 지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재료들의 에너지를 체내로 흡수하며 식사의 막을 내린다. 깔끔하게 접시를 비운 후, 책상을 정리하고 블루스 음악을 틀어 설거지와 청소에 대한 즐거움을 증폭시키고 무기력한 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한다. 방의 청소를 시 작하려 하니, 입술들의 시선을 느낀다, 무엇을 외치고 있는 걸까, 나에 대한 고마움일까 혹은 더 많은 입 술에 대한 부탁일까, 그들에게서 말을 한다는 기능을 제거해버렸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에게 요구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아이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부모에게 칭얼대듯이 나에게 애원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잊어버린 채, 그들을 원망한다.


 오늘의 하루가 마무리되었을 때, 시계는 오후 23시를 가르친다. 샤워하며 많은 외부인으로부터 박힌 유 리 조각들을 빼낸다. 살 깊이 파고들어 피가 흐르지만, 그들의 추악함은 익숙하다. 샤워를 마친 후, 방으 로돌아가, 내일의 일을 구조화한다. 입지 않은 옷을 준비하고, 정답이 될 메스, 망치 그리고 유리병을 가 방안에 가지런히 넣어둔다. 내일은 퇴근 후, 일을 시작할 계획이다, 옷을 갈아입은 뒤, 저녁은 먹지 않은 채 찾아 나설 것이다. 저녁을 먹는다면, 몸은 무거워지고 머리는 게을러지며 나태의 숲에서 길을 잃어버 리고 말 것임이 분명하다. 공복일 때, 나침반은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계획을 마친 뒤, 침대로 향한다. 해답을 찾은 하루인 만큼, 상쾌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1주가 남았다는 긴장감과 압박감 속에 잠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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