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끄트머리에서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넓어진 공간만큼 찾아온 마음의 너그러움. 그것이 주는 행복이 크다. 솔직히 나는 청소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일들을 하게 되면 복잡한 마음만큼 그와 관련된 책이나 물건들로 주변이 어지러워진다. 책상 위나 바닥의 여백이 줄어들수록 인내의 한계치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치워야 되는 때를 맞이한다.
8살, 10살 두 딸아이가 있다. 아이들이 어지른 것은 직접 치우게 한다. 정리를 하면 잘하는 아이들이지만 노느라 치우기를 미루더니 몇 개월이 누적되자 자기들도 치우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시로 치우라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물건을 내 마음대로 치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도 치우기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질러진 상태를 직시하지 않고 외면했다.
지난 연휴가 되어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일까. 연휴 마지막 날 '오늘 대청소하자'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정리하고 청소했다. 중간에 쉬거나 다른 일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정리하는데 쏟았다. 곳곳에 쌓여있는 아이들 책을 책장의 자기 자리를 찾아 만들며 꽂았다. 굴러다니는 종이, 클레이, 블록, 비즈, 인형 등을 버리거나 제자리에 놓았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청소기를 돌리고 닦고 나니 넓어진 책상과 바닥의 공간만큼 마음의 크기도 넓어진 듯했다.
그동안 어질러져 있어 '정리하라'라고 말로만 아이들을 통제했었는데 정리 후 맞이한 어제는 아이들도 나도 오랜만에 깨끗해진 집을 좋아하며 통제가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깨끗한 상태를 좋아하지만 청소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몰아서 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피곤함과 힘듦 때문이다. 이번에 같이 청소를 하며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한다. '놀고 바로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정리가 쉬워지잖아. 그러면 이렇게 힘들 필요가 없어.' 청소가 싫으니 가능한 어지르지 말자와 비슷한 맥락이다.
육아 휴직하고 집에만 있으면서도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몇 개월 만에 대청소를 할 정도로 나는 게으르다. 초등학생 때 매일 써야 되는 일기 쓰기가 가장 힘들었던 숙제였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 하는 것'에 있어서도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쓴 이후로 '꾸준히 하는 사람',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런 나의 꾸준함을 부러워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꾸준하거나 부지런한 분야가 다른 것일 뿐이에요.
글쓰기나 오디오 채널, 새벽 기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꾸준히 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또 다른 영역, 자신만의 영역에서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잘하지 못하지만 정리정돈, 청소를 매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역시 꾸준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남의 꾸준함을 부러워하기 이전에 나는 어떤 영역에서 꾸준함을 발휘하고 부지런해지고 싶은지 내 마음부터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 자신이 발휘하고 있는 영역과 하고 싶은 분야가 일치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자신이 꾸준히 하고 싶은 분야를 진심으로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