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스스로가 만들어낸 무형의 세계를 걸어가고 있는 듯한 감각
진한은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깊은숨을 내쉬었습니다.
발아래의 하늘은 여전히 고요했고, 그 고요함은 그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이 끝없는 반사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스며드는 묘한 감각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땅도, 길도, 어느 하나 방향을 알려줄 표식도 없는 이 세계.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마음속에는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었다는 감각이,
어릴 적 겪었던 낯섦과 그리움이 얽힌 채로 묻혀 있었습니다.
친숙한 집을 떠나 처음 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 느낀 그 불안과 설렘,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온전히 느꼈던 그 순간들이.
그러나 지금 그는 묘하게도 그때의 자신이 사라진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일상의 무감각 속에 갇혀 살아온 나날들 속에서,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진한은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그때의 나를 잃어버린 걸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가 지나온 세계의 한 조각이 발밑에서 비치듯 어른거렸습니다.
고요한 하늘의 표면이 마치 그의 기억을 반사하듯 일깨웠습니다.
그 속엔 일상 속 진한의 모습, 사무실에 앉아 끝없는 업무를 쳐다보는 무심한 표정,
서류에 파묻혀 전화를 받는 피곤한 얼굴, 그리고 바삐 움직이며 어디론가 쫓기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여기에, 그의 발밑의 하늘에 비쳐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공간은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변함없을 것 같았던 이 낯선 장소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을 진한은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둘러싼 고요가 마치 자신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낯선 고요 속에서, 진한은 갑작스러운 두려움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이 낯선 곳이, 어쩌면 내 안에서 만들어진 건 아닐까?"
그의 목소리는 고요 속에 사라졌지만,
그 울림은 그 어떤 외침보다도 강렬하게 진한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곳,
자신도 모르게 억눌러왔던 내면의 세계가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진한은 떨리는 손끝으로 바닥을 쓸어보았습니다.
물기가 느껴지지 않고, 맑은 공기처럼 그저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표면.
진한은 그 속에서 자신의 불안과 욕망, 잃어버린 감정들을,
그리고 자신조차 몰랐던 깊숙한 내면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스스로가 만들어낸 무형의 세계를 걸어가고 있는 듯한 이 감각이
그를 부드럽게 이끌었습니다.